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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연상호의 <인랑> 영화 안팎의 고민들
연상호(영화감독) 2016-09-07

<인랑>

내 인생의 영화를 한편 꼽는다면 단연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이다.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그간 일본의 여러 전설적인 작품들의 메커닉 디자인, 캐릭터 디자인, 원화 등을 해왔던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 <인랑>이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12년이나 지난 후 직접 각본과 감독을 한 두 번째 작품인 <모모에게 보내는 편지>(한국 개봉 제목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를 내놓았다.

<인랑>은 아주 느린 첩보액션영화다. 가상의 6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여러 권력기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인 러브 스토리다. <공각기동대>처럼 화려한 SF 액션이 있지는 않지만 <인랑>의 느리고 정적인 액션은 품격이 있다. 거기에 이 영화의 남녀주인공은 영화에서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한 이 캐릭터들은 마지막에 도달해서야 오열하고 감정을 토해낸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이 화려한 색감과 그래픽을 바탕으로 과장 연기를 하며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종합엔터테이먼트로서 산업의 중심이 되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실사영화 이상의 미학을 마지막으로 쥐어짜내 토해내듯 만든 애니메이션이 <인랑>이다.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제작비 70억원에 육박하는 이 거대 프로젝트를 2000년대 초반에 당시는 거의 쓰지 않았던 셀 방식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냈다.

2D애니메이션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도 셀이라고 불리는 투명한 셀로판지에 물감으로 컬러링하는 방식을 쓰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종이에 작화를 하고 그것을 스캔받아 컴퓨터로 채색하는 방식을 썼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종이에 작화하는 방식이 아닌 컴퓨터로 직접 작화를 하고, 그마저도 옛날 기술이 된 요즘은 거의 3D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산업이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첫 감독작을 맡게 된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데뷔작인 <인랑>을 전통적인 방식의 2D애니메이션 방식인 셀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더이상 쓰지 않는 셀로판지에 물감으로 컬러링을 해서 필름으로 찍는 방식의 애니메이션을, 지금까지 그 작업을 오랫동안 해서 그 기술력이 정점에 오른 스탭들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다.

어떤 영화는 그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그것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역사에 남을 만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인랑>이 그렇다. 이 느리고 우울한 애니메이션은 마치 진지한 애니메이션 시대의 종말을 알고 있다는 듯하다.

영화처럼 시대 변화에 따른 거대한 권력기관의 이해관계에 따라 쓸모없어진 남녀주인공의 비극과, 애니메이션 산업의 변화에 따라 일본 애니메이션의 심장이었던 철학적인 내용의 애니메이션의 종말, 그리고 디지털 기술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2D애니메이션의 종말이라는 영화 내외적인 요인들이 모여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

<인랑>은 내 인생의 영화다.

연상호 감독. 스튜디오 다다쇼 대표. 장편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을 비롯해 올해 최고의 흥행작인 장편 극영화 <부산행>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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