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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시절을 질료로 삼다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6-09-20

9월 북엔즈에 꽂힌, 한 시절을 생생히 묘사한 작품 네권

‘시절’에는 ‘세상의 형편’이란 뜻이 있다. 그 의미를 곱씹어볼 때, 시절은 서사에 더없이 훌륭한 질료다. 픽션으로만 구성된 9월의 북엔즈에는 한 시절을 생생히 묘사하는 작품 네권이 꽂혔다. 허영만 화백의 신작 만화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는 커피 한잔에 위로받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그려낸다. <셜록 홈즈 전집 장편 세트>에서는 셜록 홈스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생활상이 묻어난다. <미니어처리스트>는 사치와 투기 광풍이 불었던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참담한 빛>은 사회적 참사가 개인의 고통으로 치환되는 현실을 담고 있다.

한국 만화계의 대들보 허영만 화백이 도박, 관상, 팔도의 음식을 거쳐 주목한 소재는 커피다. 커피 장인으로 통하는 주인공 박석은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커피뿐”이라는 말과 함께 가난한 예술가,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노숙자 등 카페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정을 담은 커피 한잔을 권한다. 그들 각자의 사연에는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고 실력보다 자격증을 우선하는 사회 풍토 등이 녹아든다.

의사 아서 코난 도일은 병을 진단하기 위해 관찰과 추론을 반복하던 경험을 토대로 셜록 홈스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탐정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1887년 첫 작품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1927년 단편 모음집인 <셜록 홈스의 사건집>에 이르기까지, 셜록 홈스의 모험담은 40년 동안 계속된다. 총 네권의 장편과 56권의 단편에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1차대전 시기까지 영국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장편 네편만을 모은 <셜록 홈즈 전집 장편 세트>에서는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해설과 부가자료들을 덧붙여, 홈스의 모험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소설가 제시 버튼의 데뷔작 <미니어처리스트>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한다. 투기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으며 결혼과 같은 제도가 억압적으로 작동하던 시대의 상황이 작품 속 다양한 관계를 구축하고 캐릭터들의 비극적인 사연들을 만들어낸다. 캐비닛을 가꾸는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취미를 소재로, 소설은 화려하고 정교한 생활에 가려진 부유층과 당대 사회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백수린의 두 번째 소설집 <참담한 빛>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참사들이 개인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일본의 사린가스 테러, 9•11 테러, 알프스 터널 화재,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같은 참사에 얽힌 비극은 고스란히 개개인의 비극으로 이어지지만 작품 전반에는 옅은 연대의 기운이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