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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신뢰와 불신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 <분노> 이상일 감독과 와타나베 겐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분노>는 신뢰와 불신이 진실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부부가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괴한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경찰은 공개수사 TV프로그램에 용의자의 몽타주를 공개하고 용의자를 수배한다. 한편 무인도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모리야마 미라이), 도쿄에서 만신창이가 된 뒤 고향에 돌아온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와 그녀의 아버지 요헤이(와타나베 겐) 부녀의 일상에 끼어든 남자 다시로(마쓰야마 겐이치), 게이 유마(쓰마부키 사토시)와 우연히 만나 동거하게 된 나오토(아야노 고) 세 남자의 일상이 번갈아가면서 펼쳐진다(세 남자와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을 합쳐 세 그룹이라고 표기하겠다). 각각 독립된 세 그룹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된다.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2013)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상일 감독과 배우 와타나베 겐에게 불신이 빚어낸 분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분노>를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이상일_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는데 어떤 감정 때문인지 잘 모르겠더라.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많은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왔는데 말로 표현이 안 됐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보고 싶어졌다.

-원작의 어떤 점에서 영화화 가능성을 보았나.

이상일_ 이 이야기의 중심축은 신뢰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뢰란 얼마나 어려운 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으면 감사할 일이다. 상대방이 나의 신뢰를 의심하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신뢰와 불신이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려내고 싶었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에게 일일이 사연을 부여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세 그룹의 일상을 중심으로 압축됐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8개월이나 걸릴 만큼 고생했다고 들었다.

이상일_ 초반부, 관객은 범인이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미스터리 구조로 서사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가려내고, 범인을 어떻게 찾아 나서는지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구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건 세 그룹의 운명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데 정말 힘들었다.

-다나카, 다시로, 나오토, 세 남자가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도, 경찰이 발표한 용의자 몽타주와 하나같이 닮았더라. 활자로만 존재하는 소설을 읽을 때는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이상일_ 세 남자와 얽힌 사람들에게 용의자 몽타주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세 남자의 얼굴과 비슷한 몽타주를 각각 한장씩 만든 뒤, 세 남자가 각각 등장할 때 그 얼굴과 닮은 몽타주를 보여줬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몽타주 사진이 조금씩 다르다. 총 4장의 몽타주가 사용됐다. 그래야 세 남자와 얽힌 사람들이 몽타주를 보고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가 살해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니까.

-모리야마 미라이, 마쓰야마 겐이치, 아야노 고, 세 배우는 분위기가 꽤 비슷하더라.

이상일_ 일본에서 유행하는 단어인데, 소금형 얼굴이 있고, 소스형 얼굴이 있다. 소금형은 가세 료같이 담백한 얼굴을, 소스형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을 뜻한다. 세 배우는 소금형 얼굴로 캐스팅했고, 그들과 얽히게 되는 인물들은 전부 소스형 얼굴로 캐스팅했다. 와타나베 겐이나 쓰마부키 사토시가 소스형 얼굴이다. (일동 폭소)

-왜 소금형 얼굴이어야 했나.

이상일_ 의중을 파악하기 힘든 얼굴이어야 주변 사람들이 몽타주를 보고 세 남자를 의심하게 되니까.

-와타나베 겐의 어떤 면모가 아이코의 아버지 요헤이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이상일_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찍으면서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인간적으로) 약한 면모를 본 적 있다. 요헤이 역을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할 때 ‘그때 그 순간’의 와타나베 겐이 떠올랐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요헤이는 어떤 남자로 다가왔나.

=와타나베 겐_ 카리스마 있는 성격에다 선두에 서 있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반면 이 영화의 요헤이는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역할은 다소 거리감이 있었지만, 요헤이를 마주하니 내가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싫어하는 모습들이 자꾸 새어나왔다.

-쓰마부키 사토시는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아야노 고와 촬영 전 함께 생활했고, 모리야마 미라이 또한 무인도에서 살다온 뒤 촬영현장에 합류했다고 들었다. 요헤이에 접근하기 위해 어떤 준비 작업이 필요했나.

와타나베 겐_ 소설에는 아야코와 요헤이, 두 부녀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나. 반면 영화는 이같은 전사(全史) 없이 상황을 곧바로 보여주는 까닭에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 둘 사이에 어떤 공기가 흐르는지, 아이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런 생각을 떠올려보니 요헤이와 아이코 사이에 어떤 끈 같은 게 연결됐다.

-타지에서 고생하다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딸을 오랫동안 붙잡고 싶지만 새로운 남자에게 보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이 안타까웠다.

와타나베 겐_ 부모로서 당연히 가지면 안 되는 감정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안한 딸에게서 드디어 벗어난다는 해방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표현’한 게 아니라 마그마처럼 아주 깊숙한 곳에서 새어나왔다.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당신이 요헤이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와타나베 겐_ 아마도 쉽게 선택을 못해서 고민을 오래 할 것 같다. 아, 요시다 슈이치 작가가 해준 얘기가 있다. 요헤이는 부녀에게 일어난 일 전부 어깨에 짊어지진 못하는 남자다. 대신 껴안고 살아갈 것 같다. 내 생각에도 그게 요헤이의 최종 목적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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