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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터/액트리스] "맡은 역할로만 기억되는 배우였으면 한다" -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이유영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6-11-08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하 <당자당>)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유난히 밝고 발랄하게 느껴진다면 대부분은 이유영의 공이다. 영화 속 민정은 천연덕스러운 건지 완벽하게 거짓말을 잘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를 혼란스러워하는 건지 알 수 없게 그려진다. 누가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 비어 있는 캐릭터는 한편으론 의뭉스럽고 한편으론 한없이 투명하다. 이유영은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이 모호한 캐릭터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소화한다. 아니, 배우가 캐릭터를 소화한 건지 배우에게서 캐릭터를 뽑아낸 건지조차 헷갈린다. 개성 넘치는 역할들을 도맡아오던 그녀는 이번엔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여인이 되어 영화 한가운데 서 있다. 발랄함을 풍기면서도 화면 전체를 잠식하고 있는 존재감은 그녀를 배우 이유영이 아니라 <당자당>의 민정으로 만든다. 적어도 20대 여배우 중 이만큼 자신을 지우고 역할로 기억되는 배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데뷔작 <>부터 현재 작업 중인 <원더풀 라이프>까지 5편의 작품을 거칠 때마다 새로움에 도전해왔다. 이번엔 홍상수 감독의 <당자당>이다. 매번 의외의 선택을 하지만 그게 또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장으로 달려갔고 지금도 뭘 하고 왔는지 잘 모르겠다. (웃음) 홍상수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 없이 역할을 맡았다. 작품과 만날 때 특별한 기준을 세워두고 고르는 건 아니다. 고른다는 단어가 왠지 이상하게 들린다. 차라리 만난다는 표현이 좋겠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마음이 끌리는 작품들이 있었다. 각각의 작품을 결정한 이유가 다르다. 이번 경우엔 홍상수 감독님이다. 감독님의 전작들을 다 봐왔고 그 사실감이 항상 좋았다. 이번엔 그것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웃음)

-이제껏 경험한 현장과는 많이 달랐을 텐데.

=이제까진 완성된 형태의 시나리오를 받고 머릿속에 캐릭터를 그려오는 식이었고 그게 몸에 익숙한 방식이다. 알다시피 홍상수 감독님 영화엔 시나리오가 없다. 현장에서 즉석에서 나눠주신다. 우선 어려운 건 그걸 그 자리에서 다 외워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민정은 대사가 꽤 많은데. (웃음) 그건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 다른 선배들도 어려워하시더라. 두 번째 어려움은 전체 시나리오가 없으니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제까진 캐릭터를 완벽히 머릿속에 만들어왔던지라 전체 지도가 보이지 않으니 처음엔 막막했다. 하지만 감독님이 편하게,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고 다독이고 이끌어주셔서 안심하고 연기했다. 어떻게 연결될지는 몰라도 매 장면의 감정에 충실했다. 괴롭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알려주실까 기다려졌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 현장에서 그렸던 감정이 잘 전달된 것 같나.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각 장면을 찍을 때 내가 머릿속에 떠올렸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여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진 않다. 그동안 모든 걸 이해하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그 부분을 많이 내려놓은 기분이다. <그놈이다>를 찍을 때도 시나리오만 읽고 나름대로 캐릭터를 구상해서 갔더니 감독님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온 것 같다며 당황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웃음) 때론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해야 하는 영화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는 불필요했다. 나는 순간 어떤 감정을 쏟아내고 감독님은 그걸 연결시켜 이야기로 만드셨다. 나도 관객의 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연기하고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어서 즐겁다.

-현장에서 본인이 이해한 민정은 어떤 인물인가.

=이해가 불가능한 사람? (웃음) 굳이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 영화를 보고 나선 거울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보려고 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본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바라는 바를 투명하게 비춰주는 인물인 것 같다. 현장에서는 나 나름대로 상처가 있는 인물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남들에게 말 못할 상처가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방어하는. 물론 모든 장면에서 그랬던 건 아니고 필요한 상황에서 감독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장면마다 연기 지도를 엄격하게 받은 편인가.

=홍 감독님은 그날의 분위기, 상황, 배우의 기질에 맞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 같다. 다만 중심이 되는 전체적인 톤은 일관되게 가져가신다. 예를 들면 민정의 말투는 정확하게 알려주셨다. 어미가 조금만 바뀌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말투만큼은 감독님이 직접 연기하면서 알려주시는데 정말 잘하신다. 특히 여자 연기를 더 잘 하시는 것 같다. (웃음) 사실 조금씩은 틀리고 버벅거린 장면이 많았는데 감독님이 ‘모든 걸 다 알았으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거다’라고 해줘서 후반에는 내려놓고 편하게 연기했다. 다른 영화가 미리 다듬어간 걸 꺼내놓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순간순간의 반응을 담은 셈이다. 그게 홍 감독님 영화가 사실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다른 현장을 체험할 수 있어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다.

-민정은 계속 말을 바꾼다. 처음엔 황당한 거짓말인가 싶다가도 보다보면 정말 쌍둥이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심이 느껴지게 말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민정이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연기를 할 땐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지금 상황이 어떤 건지도 몰랐으니까. (웃음)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정의 심리를 따라가려고 한다거나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는 건 이 영화에선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아마 전체 그림을 알려주지 않으신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매 장면 진심으로 연기했다. 울 때는 진짜 서럽고 복받쳐서 울고, 억울할 때는 나를 믿어주지 않는 상대가 너무 밉고, 애정을 표시할 땐 정말 사랑스럽고. 매 순간이 진짜였는데 차례로 이어붙이니 다른 의미가 생겨나 놀랍고 신기했다.

-주변에 어떻게 보였으면 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평가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이유영은 어떤 배우로 인식되길 바라나.

=강하고 날카로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데뷔작 <>부터 과감한 선택을 했고 연이어 <간신>의 노출이 부각되면서 약간의 선입견이 생겼다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이미지를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품들을 고르진 않는다. 굳이 비교하면 <>의 민경이 평소의 나랑 닮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일부분이고, 결국 연기는 연기다. 배우 이유영이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의 얼굴이 떠오르는, 맡은 역할로만 기억되는 배우였으면 한다. 사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길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사는 편이 아니라서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금은 난감하다. 그렇다고 없는 걸 억지로 꾸며내고 싶지도 않고. (웃음) 오히려 영화가 나오고 이렇게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번씩 점검하게 된다. 당장 다음에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또 그다음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만나고, 매번 지금처럼만 하자는 다짐을 한다. 그런 시간들이 가능한 한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봄>

순간을 사는 연기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때 날씨가 어땠는지도.” 배우 이유영이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는 비결은 순간에 모든 걸 쏟아붓는 집중력에 있다. 촬영현장의 공기, 배우들과의 호흡, 머릿속에 그렸던 캐릭터까지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모두 쏟아붓고 비워낸다. 그런 그녀에게도 데뷔작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내 몸이 예쁠 때 그걸 예쁘게 찍어주실 거란 확신이 들어서 <>을 선택했어요. 예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쁜 게 좋아요. 최근에 본 <캐롤> 같은. 예쁘게 남는 것들에 마음이 끌려요.”

영화 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2015 <미스터 쿠퍼> 2015 <그놈이다> 2014 <간신>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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