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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의 덕통사고] <마인크래프트>가 <닥터 스트레인지>에 하고픈 말
송경원 2016-11-10

<마인크래프트>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게임 불감증을 고쳐준 건 스웨덴 게임개발자 마르쿠스 페르손의 <마인크래프트>였다. 이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게임으로 날밤을 새운다는 경험을 몇년 만에 한 기억이 있다. 직업으로 삼은 뒤 시들해져 가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새삼 상기시킨 건 픽사 애니메이션 <>과 <월·Ⓔ>였다. 실사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분명 재미있고 매끈한 영화다. 하지만 슈퍼히어로영화에 대한 내 피로감을 씻어주기엔 조금 역부족이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세 번째 페이즈의 문을 열기에 손색이 없는 완성도였음에도 극장을 나선 순간 무감각하게 휘발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아쉬움을 달래려 오랜만에 <마인크래프트>를 꺼내 플레이해본다.

<닥터 스트레인지>

상상한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놀라울까. <닥터 스트레인지>의 그래픽 이미지를 보고 ‘놀랍다’는 경탄이 터져나오는 건 반사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영화의 특수효과를 구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숱한 그래픽 전문가들이 갈려 들어갔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덕분에 편안하고 재미있었지만 흥미를 자극하진 않았다. 이미 봤던 이미지들의 세련된 조합들이었기 때문이다. 미러 디멘션을 통해 공간을 창조하는 에이션트 원의 오프닝 시퀀스는 <인셉션>이 떠오르고, 허공을 딛고 날아다니는 모르도의 애크러배틱 액션은 <매트릭스> 속 네오의 몸놀림을 닮았다. 런던 생텀의 기발한 마법 아이템과 고풍스런 디자인은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를 연상시킨다. 도르마무가 속한 다크 디멘션의 세계가 <앤트맨>의 마이크로 세계와 겹쳐 보이는 건 내가 이미 MCU의 노예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CG는 기술의 어떤 정점을 구현하고 있지만 정확히 내가 상상한, 혹은 목격한 것 이상을 보여주진 않는다. MCU 테마파크는 흔쾌히 표를 끊고 입장할 만큼 재미있고 구체적이되 신기하진 않다.

생각해보면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 영화들은 꽤 있다. <쥬라기 공원>을 보기 전엔 공룡의 울음소리를 상상하지 못했고, <터미네이터2>를 보기 전엔 액체인간이 어떻게 움직일지 몰랐다. 이미지는 힘이 세서 때론 상상력을 넘어서기도 하고 반대로 가두기도 한다. 일단 눈으로 본 구체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서 전혀 다른 상상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을 중학생 때 읽었지만 내 꿈에 간달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난 이후다. 그 뒤론 아무리 소설 속 묘사를 뒤져봐도 내 머릿속의 간달프는 이언 매켈런이었다. 상상이란 실제 하는 정보들의 조합이며 우리는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곤 하지만 CG로 어떤 세상이든 그려낼 수 있게 된 지금 타인의 상상력이 나의 이미지가 되는 일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상상력을 압도해버린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종종 게으름에 빠진다. 한동안 내가 게임 불감증에 빠진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이미지는 강한 자극과 중독성을 동반하는 법이라 한번 정교한 이미지를 접하고 나면 다음에는 더 놀라운 이미지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게임 회사들도 플레이어들의 이러한 심리를 공략하고자 더 놀라운 기술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다. 끊임없이 더 높은 화질의 그래픽을 구현하려는 갈망 때문에 지금의 기술력까지 도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놀라운 구경거리를 제시하고 정작 게임 구성 자체는 시시해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게임의 규칙이 비슷비슷해지고 유사한 방향성에 기술력으로 포장만 열심히 하는 게임들을 반복하다보면 조금씩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마인크래프트>를 만난 건 그즈음이다.

<마인크래프트>를 처음 접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세번 놀란다. 베타 버전이 잘못 출시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조악한 그래픽에 놀라고,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에 두번 놀라고, 어느새 이 세계에 푹 빠져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한번 놀란다. 기본적으로 광물을 캐어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컨셉의 이 게임은 일종의 레고 놀이와 유사하다. 개발자가 정해놓은 흐름, 제시해놓은 그래픽의 완성된 세계를 따를 수밖에 없던 기존 게임과 달리 <마인크래트프>는 거대한 놀이터를 제공할 뿐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수는 무한대의 자유도를 플레이어가 체감할 수 있게끔 돕는 조악한 그래픽에 있다. 그래픽의 행간을 비우고 단순한 픽셀을 조합해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이미지를 투영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순간 세계는 일변한다.

<툼레이더> 게임

<마인크래프트>는 한없이 실재에 가까운 그래픽으로 실제를 흉내내는 게 아니라 아예 가상현실이라고 선언한 뒤 그 안에서 뛰어놀도록 유도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미지가 덜 구체적일수록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끼어들기 쉽고 가상세계에 익숙해질수록 네모 반듯한 사각상자를 뒤집어쓴 것 같은 그래픽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각자의 상상이 개입할 틈을 만들어주는 것, 타인의 상상된 이미지에 기대지 않고 내 머릿속의 상상력이 뛰어놀 장소를 허락해주는 것이야말로 <마인크래프트>가 인디 게임의 성공신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걸 ‘본다’는 것에 치우쳐가던 주류 게임의 흐름에 반하여 내가 ‘한다’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상기시킨 것이다.

<툼레이더> 게임

사실 초기 영화의 마법도 그렇게 희미해져가는 중이다. 게임이 ‘한다’의 마술이라면 영화는 ‘본다’의 마법이었다. 관객은 말로 전달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포착된 이미지로 쌓아올린 경이로운 마술이었다. 하나의 몸짓이라 해도 좋은 움직임들, 창의적인 동작들은 그것만으로도 관객을 도취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거나 재현할 필요 없이 그저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또 하나의 세계와 조응하는 체험의 영역이다. 이 경이로운 마법이 엉뚱한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은 현실을 의식하고 흉내내기 시작하면서다. 재현된 이미지가 한없이 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혹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놀람을 선사하기 위해 한정된 화면 안에 더 많은 자극을 쏟아붓는 선택을 한 순간 초기 영화들이 품었던 마법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초기 영화들이 진즉에 도달했던 마법을 부활시킨 영화들을 지금도 가끔 만난다. 가령 픽사의 <월·Ⓔ>가 놀라운 건 한번도 보지 못한 그래픽으로 세계를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목소리를 덜어내고 로봇의 움직임과 율동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무성영화의 활력이 거울이 되어 보는 이의 상상력을 투명하게 비추는 놀라운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상상 이상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이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행간을 비워놓는 것이다. 모두 전자를 향해 달려가는 요즘엔 쉼표가 좀더 절실한 것 같다. 게임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 속 라라 크로프트의 얼굴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으로 구체적이지만 가끔은 20년 전 <툼레이더>의 표정 없는 라라 크로프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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