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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시간 여행자
김혜리 2016-11-23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리에타>

지금 극장가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자는, 스트레인지 박사만이 아니다. 두 배우가 한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연기하는 <줄리에타>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수건 한장으로 삶의 반환점을 표현한다. 비극적 사건으로 무력해진 줄리에타(아드리아나 우가르테)는 아기처럼 10대 딸(프리실라 델가도)의 보살핌을 받는다. 소녀가 엄마의 머리칼을 말리던 수건을 거두면, 거기에는 중년의 줄리에타(에마 수아레스)가 있다. 순간 에마 수아레스는 50대를 연기하는 장면에서보다 오히려 더 지치고 나이들어 보인다. 그러나 이 점프는 비탄이 여인에게서 젊음과 미를 앗아갔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장치는 아니다. 젊은 줄리에타와 늙은 줄리에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다. 단, 인생에는 소중한 무엇이 영원히 사라지고 그 자리는 빈 채로 다른 표정이 깃드는 시점이 있는 것이다.

10/26

<닥터 스트레인지>의 엔드 크레딧 마지막 줄은 “운전 중 한눈팔기는 매우 위험합니다”라는 경고다. 엘리트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교통사고로 손이 부서져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마법사로 전직하게 된다. 유능하지만 이기적이었던 주인공이 커다란 사건을 맞아 각성하고 세상을 위해 싸우게 된다는 영웅 기원담이다. 그냥 공식의 재활용 같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콧 데릭슨 감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서진 인간들이다”라는 노래 가사를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멋들어지게 인용하기도 했다. 그렇다. 부서진 곳이 하나도 없거나 한때 부서졌다 회복한 흔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감상은 됐고, 사고 후 스티븐이 자신처럼 우월한 인생이 부서질 수 없다고 떼를 쓰는 과정에는 매우 독한 대사가 등장한다. 문병 온 전 애인이자 현 동료인 크리스틴 팔머 박사(레이첼 맥애덤스)가 “삶에는 의사로서의 일 말고 다른 것들도 있어”라고 위안하자 그는 “예를 들어 뭐? 당신? 내가 비로소 너를 필요로 하게 되니 기분 좋아?”라고 이죽거린다. 물론 환자의 화풀이지만, 여기에는 상대의 아픈 곳에 메스를 찔러 넣는 잔인한 쾌감마저 희미하게 어려 있어서 영화가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밉상으로 만들어놓고 후반에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 구경꾼으로서 걱정이 들 정도다.

한데 이렇게까지 의사로서의 업에 집착하고 철저한 에고이스트였던 주인공이 영화 후반 내리는 결단은 거의 성자의 그것에 가깝다. 스티븐은 홍콩의 생텀이 파괴되고 포털이 열리자, 인피니티 스톤이 지닌 시간 조작의 힘을 이용해 어둠의 세력 도르마무에게 도전한다. 계속 시간을 되돌려 온갖 방식으로 수천번 죽임을 당함으로써 상대도 봉인된 시간 안에 가두는 것이다. 스티븐은 <사랑의 블랙홀>을 본 게 분명하다. “난 널 이길 수 없지. 하지만 영원히 패배할 수는 있고 그동안 세상은 멸망하지 않아.” 도르마무는 끝내 항복한다. “날 좀 풀어줘. 뭘 원하나?” 매번의 죽음이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스티븐은,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준 죄로 영구 재생되는 간을 독수리에게 매일 뜯어 먹히는 벌을 받았던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군대 대 군대의 경쟁적 파괴가 도시 하나를 초토화하고 세상이 망하기 직전에 포털이 닫히는 수순을 반복했던 기존 마블 영화들의 클라이맥스에 비하면, 주인공이 단신으로 열린 포털 너머로 건너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일대일의 정신적 대결을 펼치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결말은 확실히 참신하다. 문제는 영화의 중요한 장점인 클라이맥스 전개를 그때까지의 캐릭터 발전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컨대 “언제부터 스트레인지씨는 이렇게 그릇이 커졌나? 우리가 지켜본 경험 가운데 어디쯤에서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라는 사고의 대전환을 이뤘나?”라는 궁금증이 영화를 두번 봐도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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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을 나눠줄 메인 히어로의 머릿수가 많다보니 조연 캐릭터가 풍부해질 여지가 적다는 점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의 공통된 약점이다. 아무리 그렇다손쳐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레이첼 맥애덤스는 심한 배우 낭비로 보인다(또 다른 동료의사로 출연한 <시리어스 맨>의 마이클 스털버그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신경외과 의사로 설정됐음에도 닥터 크리스틴 팔머는 다친 스티븐을 수술하고, 말 상대를 해주고, 면도를 해주는 일 외에 극중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기네스 팰트로, <토르> 시리즈의 내털리 포트먼에 비교해도 처진다. 이 세 여성이 뉴욕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속풀이 토크를 하는 쿠키 영상이 나온다면 대환영이다.

한편 <닥터 스트레인지>는 캐스팅과 관련해 촬영 전부터 구설수에 올랐다. 원작 코믹스에서 아시아인으로 설정된 에인션트 원 역으로 백인 여성배우 틸다 스윈튼을 선택했고 비슷한 시기에 <알로하>와 <공각기동대>가 각각 에마 스톤과 스칼렛 요한슨을 아시안 캐릭터에 캐스팅한 사례와 묶여 할리우드의 ‘화이트 워시’ 사례로 당연히 비난받았다. 영화계 다양성이 증대됐다지만 아직 아시아인 묘사까지는 미치지 않는 것인가라는 탄식도 높았다. 더군다나 에인션트 원을 티베트계로 재현하지 않은 선택이 중국 시장을 눈치 본 카드 아니겠냐는 이유 있는 혐의도 더해졌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생각은 다소 복잡하다. 일단 <닥터 스트레인지>는 원작부터 미국인들이 동양의 정신문화에서 대안을 찾았던 1960년대의 산물로서, 아시아를 백인 영웅의 내적 자아 발견을 위해 존재하는 신비로운 땅으로 바라보는 타자화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훨씬 긴 세월 수련한 아시아계 인물들과 흑인 모르도(치웨텔 에지오포)의 공력을 1년도 못 돼 특별한 백인 영웅 스티븐이 추월하는 패턴도 많이 보던 바다. 말하나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바람직한 길은 에인션트 원을 아시아계 배우가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연기하는 카드다. 그러나 에인션트 원 캐릭터 자체에 심어져 있는 ‘동양의 도사’라는 오리엔탈리즘적 프레임을 각본에서 아예 거둬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과제는 차선책 모색으로 넘어간다. 그럼 주윤발이나 양자경 같은 스타가 에인션트 원으로서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우주의 무한함을 설파한다면? 그것 또한 하품 나오는 인종주의적 캐리커처의 반복일 것이다. 결국 비아시아인을 캐스팅한다는 조건 안에서 틸다 스윈튼이라는 여성배우는 사실상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백인 중의 백인 같은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현세적 카테고리를 초월한 것 같은 이미지와 영화 밖의 코스모폴리탄적 행보 및 차별에 반대해온 행보가 일종의 면책권을 발부하는 형국이다. 동시에 유일하게 중요한 아시아인 캐릭터인 웡(베네딕트 웡)의 역할은 마스터의 일원으로서 원작보다 적극적으로 해석됐다(코믹스에서 웡은 차를 준비하는 것 같은 일을 했다고 한다).

다분히 절충적 캐스팅을 받아들여 틸다 스윈튼이 보여준 연기는 최선에 가깝다. 그녀가 형상화하는 최강의 고수 에인션트 원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유머감각 없는 고강한 권위자와 다르다.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카리스마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자기도취적 진지함에 매몰되는 지루한 사태를 피한다. 그녀의 해탈은 그녀가 보여주는 액션과 비슷하게도 가볍고 우아해서 “세상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차의 맛을 음미할 줄 알고, 죽음 전의 마지막 찰나를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데에 쓰는 이 인물은, 진리가 아니라 덧없음을 통달한 존재다. 틸다 스윈튼은, 다분히 예측 가능한 영웅 서사와 마블 공식을 컴퓨터그래픽 아트로 업데이트한 이 영화를, 실체보다 덜 진부하게 체감하도록 만드는 비급(秘笈)이다.

<신비한 동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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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휘젓는 귀여움

오소리와 두더지의 사촌 같기도 하고 오리너구리도 많이 닮았다. 호주 같은 신대륙에 살 법한 외모인데, 뉴트 스캐맨더가 집필한 <신비한 동물사전>에 따르면 영국에서 서식한다. 반짝이는 물건을 보면 사족을 못 쓰고 긁어모아 배 주머니에 쟁여넣는 니플러는, <신비한 동물사전>에 등장하는 비스트들 가운데 단연 비중이 높은 준조연이다(<해리 포터> 시리즈 4권에서 해그리드의 마법 동물 돌보기 수업 시간에 등장한 적이 있다). 뉴트 스캐맨더의 가방에 담겨 뉴욕에 당도한 니플러는 은행에서 본능을 누르지 못함으로써, 주인공들을 연결하고 모험의 시동을 건다. 도둑으로 오해받건 말건 욕망에 충실한 니플러는 도망 경험에서 터득한 임기응변 또한 뛰어나 극중 가장 유쾌한 슬랩스틱 신을 뉴트 스캐맨더와 함께 만들어낸다. 원작에 표기된 니플러의 위험도는 중간치인 3등급. 웬만한 마법사라면 다룰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니플러의 치명적 귀여움을 계산에 넣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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