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trans x cross
[trans x cross]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안 되게 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들” - 단편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 출간한 배명훈 작가
이다혜 사진 최성열 2016-12-01

‘주의: 식사 시간을 피해서 읽을 것’이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단편 <예술과 중력가속도>의 주인공은 현대무용을 한 은경씨를 만나 그녀에게 푹 빠진다. 은경씨는 원래 달에서 춤추던 무용수였다. 지구와는 중력이 달라서 점프의 높이가 완전히 달랐다. 어느 날 달과 화성의 중력으로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은경씨는 주인공을 초대하는데, 주인공은 중력이 바뀌는 데 적응을 못하고 구토를 시작한다. 당장 경험 가능한 선에서만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SF라는 장르가 그런 경험을 선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SF장르에 대한 은유가 되고, 배명훈 작가의 말을 빌리면, 백령도 여행길에 배 위에서 구토를 하며 떠올린 이 이야기는 “어떤 장이 어떤 예술을 발생시킬 수 있고 그게 안 이루어질 때 왜 예술가는 괴로워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SF의 기본 구조 중 하나다. 내가 뭘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게 하는 무언가. 국제정치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해 배명훈 작가를 만나 들어보았다.

-신간 축하한다. 당분간 바쁠 것 같은데.

=소백산 천문대에 들어갈 예정이다. 12월 초 정도? 왔다갔다 하겠지만 두어달 있을 듯하다. 천문대는 추울 때가 한가한 것 같아서. 제일 좋은 시즌은 아닐 것이다. 원래는 가을쯤 가려고 했는데 바빠서 못 갔다. 2009년이 세계 천문의 해였는데 그때 SF작가들과 처음 가봤다.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천문학자들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뭔가 애지중지하는 느낌이 있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은, 오늘 밤에 관측을 해야 해,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든가.

-데뷔작 <스마트D>(2005)는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부문 당선작이었지만 처음으로 책에 실었다. 원래의 원고에서 얼마나 달라졌나.

=문장을 고쳤다고 하니까 김중혁 작가가 ‘그건 반칙이잖아요!’라고 하던데(웃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11년 전 글이고 데뷔작이었으니까. 그땐 어렵게 썼더라. 그래서 읽으면서 안 걸리게,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고쳤다.

-SF장르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선입견이 있다. 우주에 나가 전쟁을 한다든가 모르는 기술이 나온다든가 해야 SF라는. 그런데 당신 작품들에서 가장 좋은 이야기들은 (행성간의) 정치적 긴장에 대한 이야기다.

=전공이 국제정치학이라 그렇다. 원래 소설 쓰는 건 취미였고, 직업으로는 생각을 안 한 상태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면 개인의 비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국가도 중요하지 않다. 개인이 아니라 체제가 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희한해 보일 수는 있다. 순문학에서는 인물을 중요하게 본다. 작품 분석이 곧 인물 분석인 경우도 많고. 그 관점에서 보면 나는 되게 멀어서, SF쪽에서 먼저 발탁되는 게 맞았던 것 같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국제정치학의 어떤 요소들이 반영된 이야기다. 주인공들의 내면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밖에서 일어나는 무언가를 쓰고 있다. 이런 것도 SF에 포함된다. 과학이 중심이었던 때가 있지만 지금은 사회과학, 인문학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SF는 이래야 해, 라는 틀이 좀더 깨져야 하는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한국말로 창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김중혁 작가의 <나는 농담이다>를 보면, 본인은 SF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가 한국 SF 창작자들과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우주비행사가 나오잖나. 등장인물에게 한국 이름을 주고 한국어를 하게 하는 것. 쓰는 경험이 축적되면 쓸 수 있게 된다. 나는 한국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쓴다. 그러면 한국 사람이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SF를 오래 읽은 분들은 그 부분이 걸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 소설에 대해 ‘일상’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한다. 소소하다든가 하는 식으로. 일례로 정소연 작가 단편집(<옆집의 영희 씨>)을 보면 전혀 소소한 이야기들이 아닌데 한국 사람 생활이 들어가니까 그걸 일상이라고 해버린다. 그런데 미국 사람이 쓴 것도 미국 사람 생활이 안 들어갈 수가 없잖나. 그걸 안 쓸 수가 없다. 삶이라는 것. 한국어로 말을 할 때의 느낌, 이름이 불렸을 때의 느낌. 한국 사람이 썼는데 미국 사람의 삶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인물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되곤 한다.

-국제정치를 가지고 SF가 아닌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나.

=그런 건 누군가가 쓰고 있다. 나와 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국내 유일의 SF소설 시상식인 SF어워드가 논란을 빚었다. 심사위원 선정, 후보작 선정부터 결과까지 기준을 알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누가 SF소설 전문가인가 하는 문제도.

=심사평이 아직 안 나왔는데…. 그래서 심사평을 보고 싶은 것이다. 기준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미 읽은 좋은 소설들이 아예 제외되었는데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소설부문 심사위원에 포함된 사람들(광고회사 임원 등)이 SF소설의 전문가로 불릴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고. 심사위원을 미리 발표하지 않는다거나 공식 심사평을 내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들. (심사위원이든 수상작이든) SF를 쓰고 읽는 사람들이라면 뽑지 않을 구성이 되어버린다. 여성 심사위원이 아예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다. 요즘 SF에서는 페미니즘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다 배제되어버린다. 일단 행사에 여자가 없다. 과학자와 SF작가가 같이 하는 행사가 전부 남자로 채워진다. 창작자들의 경향과 차이가 생긴다.

-‘배명훈 월드’라는 표현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기존 비평의 틀에서 ‘잘은 모르겠는데’라는 뜻으로 쓰는 말인 것 같다. 이런 식의 표현을 들었을 때 어떤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세 가지 종류의 말을 많이 듣는다. 전쟁 이야기를 많이 쓰니까 ‘복잡한 군사적 지식’. <타워>는 ‘복잡한 정치학적 지식’. 그런 식으로 또 ‘복잡한 과학적 지식’도 있다. 비평을 보면 복잡한 뭐뭐뭐적 지식이라고 한 다음에 들어가면 내용이 없다. 안으로 안 들어간다. 그리고 인물 분석을 해버린다. 그러면 포인트가 너무 다르다. <청혼>은 우주전쟁 이야기인데, 축이 크게 세 가지다. 그중 두 가지는 복잡한 군사학적 지식과 복잡한 과학적 지식으로 더 설명이 없고, 인물 분석을 하면서는 로맨스만 이야기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이유는, SF작품들이 (신인상이나 문학상 등에) 잘 발탁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해서다.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보니까 그외의 개성과 장점에 가산점이 하나도 없다.

-제일 많이 나간 책은.

=<타워> 아닐까.

-다시 안 내나(절판되었다.-편집자).

=<타워>는 계속 쓰려고 생각한 소재였다. 다음 작품을 쓰면 같이 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안난다. <타워>가 제일 좋았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당장 다시 내고 싶지는 않다. <타워>가 성공했으니 그런 걸 계속 쓸 수도 있지만 그러면 금방 망한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그렇게 안 썼으니까…. 나도 분명 좋아하는 글이지만 <타워>가 그렇게 강조되는 건 좋지 않다.

-여자주인공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는 ‘은경씨’ 얘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할 때, 보통은 작가와 같은 성별이나 주인공인 경우라고 하지만 은경씨는 희한한 방식으로 배명훈의 페르소나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주인공의 옆자리에 늘 있는. 읽다보면 ‘아, 은경이가 등장할 차례군’ 같은 느낌도 들고. 은경이 주인공이고 나이가 든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본 적 있나.

=쓰고 있다. 단편집 뒤쪽에는 윤희나라는 주인공이 나왔다. 은경이를 대체한 것처럼. 여자 영화배우들이 나이 들면 젊은 여자배우들로 교체되고 자리가 없어지는데 나도 은경에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은경이가 실존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가면서까지 은경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여자배우들이 배역에서 탈락하는 과정 중 하나 아닌가. 말도 안 되는 구설. 그래서 그러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다시 쓰고 있다. 은경이가 내 소설에는 계속 나오고 있고 많이 나올 것이다.

<예술과 중력가속도>

북하우스 펴냄

<스마트D>는 작가 배명훈의 공인된 데뷔작이었지만 그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예술과 중력가속도>에 최초로 수록된 이 소설은, D(한글로 ㄷ)라는 문자를 인공지능이 검색하고 요금을 부과하고 검열하는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D를 쓸 수 없는 사람의 소설 투고는 어떻게 될까. D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열이 불가하고 테러리스트로 몰린다면? <티켓팅 & 타겟팅>은 아이돌 팬이 티케팅에 실패하는 이유와 성공하는 비법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소설로 풀어냈다. JYJ의 팬인 지인의 티케팅을 도와준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이 소설은 속도와 진정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놓치기 아까운 10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