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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햄릿>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6-12-20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설준규 옮김 / 창비 펴냄

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햄릿 아니면 돈키호테다. 그가 본 돈키호테는 이상에 대한 애착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견딜,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인물이다. 반면 햄릿은 분석적이고 꼼꼼히 따지는 태도와 자의식의 상징이다. 그외에도 독일의 대문호 괴테, 실존주의의 선구자 니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등 숱한 지성인들은 <햄릿>에 대해 저마다의 주석을 달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처럼 시대별로 수많은 비평과 분석을 덧입으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50번째 작품 <햄릿>에는 <햄릿> 속 캐릭터와 극적 장치들에 대한 고전적 비평이 실린다.

부록이 아무리 탄탄해도 가장 중요한 건 본문이다. 역자는 주요 판본 중 하나인 해럴드 젱킨스가 편집한 <아든 셰익스피어: 햄릿>에 다른 판본의 내용을 종합해 원문을 풍부하게 구성했다. 시대적, 상황적 맥락을 내포하고 있거나 어감이 중요한 대사들에는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대표적인 것이 햄릿의 독백 “to be, or not to be”에 대한 해석이다. 이 독백의 첫행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라는 번역으로 익숙하지만 역자는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라는 문장으로 옮겼다. 독백 후 이어지는 질문이 삶과 죽음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포함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 그러니까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를 비롯한 20세기의 평자 몇몇은 햄릿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에 주목했다. 괴테를 비롯한 19세기 낭만주의 평자들은 거친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기에 너무 여렸던 햄릿의 내면에 집중한다. 역자는 다양한 비평을 건너 최하층민에게도 소탈한 모습으로 응대하고 타락한 궁정 사회에 대해 나름의 경멸을 담은 대응을 보였음을 주목하기를 바란다.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 죽는 것-잠드는 것, 그뿐. 육신이 상속받은 가슴앓이며 수천가지 타고난 고통을 한번 잠들어 끝낸다고 한다면, 그것은 간절히 원할 만한 대단원. 죽는 것, 잠드는 것-잠들어, 혹 꿈이라도 꾸면-그래, 그게 걸려. 이 뒤엉킨 삶의 결박 풀어 던졌을 때, 저 죽음의 잠 속에 찾아들 꿈 떠올리면, 우리는 망설일 수 밖에-그런 까닭에 이리도 긴 인생이란 재앙이 빚어지는 것. 누가 견디랴 세상살이 채찍질과 멸시를, 압제자의 횡포, 세도가의 오만불손을, 홀대당한 사람의 아픔, 느려터진 법집행을, 관리들의 방자함, 인내와 덕 갖춘 이가 하찮은 자들에게 당하는 능멸을, 벌거벗은 단검 한 자루면 만약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 누가 견디랴 무거운 짐, 고단한 삶에 짓눌려 툴툴대며 진땀 흘리랴, 다만 죽음 뒤 그 무엇, 저 미발견의 나라, 국경 넘으면 길손 돌아오지 못하는 저 나라가 두렵기에, 의지는 갈피를 잃고, 미지의 고초를 향해 날아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겪는 고초를 견딜 따름. 하여, 심사숙고 탓에 우린 모두 겁쟁이 되고, 하여, 결단의 타고난 혈색 위로 사념의 창백한 병색이 드리우며, 드높은 뜻 품은 중차대한 계획도 이런 까닭으로 물길 틀어져 실행이란 이름을 잃고 마는 것.(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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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햄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