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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물의 감옥>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6-12-20

<물의 감옥>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 전은경 옮김 / 비채 펴냄

“슈티플러, 과거가 당신을 잡으러 왔어.” 경험 많은 형사 에릭 슈티플러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 온다. 발신자의 목소리는 낯설지만 번호만큼은 익숙하다. 에릭의 내연녀, 아나벨의 번호다. 전화를 받자마자 찾아간 강가에서 에릭은 온갖 부유물들과 함께 널려 있는 아나벨의 시체를 발견한다. 희생자의 배 위엔 에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에릭은 그날로 강변 살인 사건의 수사팀을 꾸린다. 경찰대를 갓 졸업한 25살 신입 경찰관 마누엘라 슈페를링은 서장의 지시로 팀에 합류한다. 패기로 똘똘 뭉친 마누엘라는 자신을 따돌리는 마초적인 동료들과 뭔가를 숨기는 듯한 에릭을 벗어나 홀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려 분투한다. 며칠 후, 에릭의 전처 카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익사한 채 발견된다.

독일의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사라진 소녀들> <창백한 죽음> <지옥 계곡> 등 순수한 악과 생존 본능을 대변하는 이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 소설을 써왔다. 전작 <지옥 계곡>에선 험준한 겨울산이 주 무대였다면 이번엔 욕조, 호수, 강 등을 배경으로 물이 자아내는 원초적 공포를 활용한다. 잠수에 능한 살인마는 스스로를 ‘물의 정령’이라고 일컬으며 물귀신처럼 희생자들을 깊은 곳으로 잡아끈다. 한 여인이 자신의 욕조에서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서두부터 독자들은 제목처럼 물의 감옥에 갇힌 듯한 압박감과 함께 사건을 따라가게 된다. 소설은 첫 살인 사건 후 5일 동안 펼쳐지는 경찰들의 수사과정이 중심이다. 수사팀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사는 물론 사건과 무관해 보이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동시적으로 전개된다. 상황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이다 보니 사건 전개가 빠르진 않다. 하지만 세 페이지 정도를 기준으로 인물과 상황을 바꾸는 전개, 간결하고 흡인력 있는 문체로 독자들을 매혹한다.

물이 자아내는 원초적인 공포

반짝이는 은색 구슬 같은 기포 몇개가 여자의 입에서 올라왔다. 입에 다시 넣고 싶은 기포였다. 몇초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산소, 지금 이곳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게 해줄 산소였으니까. 제멋대로 날뛰던 경련이 서서히 느려졌다. 여자는 자신이 물을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물속이라 작아지고 비틀린 그 소음은 소름 끼치게 비인간적이었다. 쿵쿵 울리는 죽음의 메아리가 머릿속을 채웠다. 공포보다도, 삶을 향한 외침보다도 더 큰 소리였다. 여자는 마지막 숨을 쉬었다. 침묵이 찾아왔다.(11쪽)

그의 가설에 따르면 택시운전사들은 누구나 승객과 그들의 삶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지만, 신중해서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모든 택시운전사의 정보를 한데 모은다면 아무도 모르는 세부사항까지 포함하여 한 사람의 완벽한 인생사를 알게 된다는 거였다. 프랑크는 그때 울프가 하는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승객들, 특히 술을 마신 사람들은 택시를 타면 말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꺼냈다. 택시운전사들은 어떤 장소, 도시의 어떤 구역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를 아주 깊은 구석까지 알게 되곤 했다.(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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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물의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