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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이예지 2017-01-09

지난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에서 강간 신이 상대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동의 없이 촬영되었다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인터뷰가 전세계의 공분을 샀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쏟아지는 비난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버터를 윤활제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설령 합의하지 않은 것이 소품 사용 여부였을지라도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연기로 성적 수치심을 주었다면 그것 역시 성폭행이다. 마리아 슈나이더는 생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촬영 당시 수치심을 느꼈으며 말론 브랜도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모두에게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고 밝혔던 바 있다.

감독이 베드신 혹은 노출 신을 촬영하면서 여배우에게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노출을 유도하며 압박해온다거나, 여배우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인 연기를 하는 일은 한국영화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얘기이다. 최근 한 한국영화에서도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 여배우 A는 15세 관람가의 휴먼 멜로 장르로 노출 신은 없을 것이라는 제안을 받고 모 영화에 출연을 결정했다. 문제는 강간을 암시하는 가정폭력이 있는 신의 촬영현장에서 발생했다. 당초 시나리오와 콘티에는 바지를 찢기로 되어 있었지만 감독은 현장에서 바지를 상의로 변경했다. 여배우 A는 남배우 B가 상의를 잡아당겨 멍 분장을 한 어깨와 등의 윗부분까지만 드러날 것이라고 전달받은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감독은 남배우 B에게 따로 “마음대로 하시라니까. 미친놈처럼. 한 따까리 해야죠. 죽기보다 싫은 강간당하는 기분을 만들어주셔야 된다”고 지시했다. 남배우 B는 연기 도중 여배우 A의 상의뿐 아니라 브래지어까지 찢어버렸고, 여배우 A는 전치 2주에 해당하는 좌상 및 찰과상을 입었다. 여배우 A는 남배우 B의 손이 속옷 하의 안까지 들어오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말했고 남배우 B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촬영이 끝나고 여배우 A는 남배우 B를 강제추행치상죄로 고소했다. 검사는 5년형을 구형하였으나 법원은 피고인인 남배우 B의 행위는 ‘업무로 인한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결, 무죄를 선고했다. 여배우 A는 이에 불복해 현재 항소를 진행 중이다.

살인자 연기를 하는 배우가 연기를 하다가 실제 살인을 한다면, 그것은 단지 연기일 뿐일까?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합의와 통제하에 만들어진 세계다. 관객이 보고자 하는 것은 스너프필름이 아닌 영화이고, 상대배우의 동의 없이 행한 연기는 연기가 아닌 폭력일 뿐이다. 감독과 배우 사이, 배우와 배우 사이 합의를 통해 이것이 ‘연기’임을 전제하고 촬영에 임하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원칙이며, 허구의 세계에서 가장 엄밀히 지켜져야 할 윤리인 셈이다. 이것이 연기라는 특정 업무의 차원으로 해석되고, 영화적 특수성 같은 말로 용인된다면 우리가 사랑해온 영화는 더이상 영화가 아니게 될 것이다.

<씨네21>은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총 10번의 대담을 진행하며 현장을 비롯한 영화계 각계각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아카이빙해왔다. 그중엔 여성배우들이 겪어야만 했던 폭력적인 상황들도 다수 있었다. 여성 혐오적 서사 안에서 여성 캐릭터는 성적으로 소비되기 일쑤였고, 카메라 앞에서 여성의 몸은 빈번히 대상화됐다. 프레임 밖에서도 ‘여배우는 현장의 꽃이다’라는 온정적 여성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번 사건은 지금도 영화 현장에 여성 혐오가 만연해 있으며, 여성배우가 얼마나 위험한 업무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씨네21>은 이번 사건의 엄중함과 심각성을 고려해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좌담회를 개최한다. 정하경주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 조인섭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 손희정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 배우 김꽃비, <씨네21> 이예지 기자가 참석해 이번 사건에 대한 논의와 함께 영화계 내 성폭력의 실태를 진단하고 방지하기 위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1월16일 홍대입구역 인근의 가톨릭청소년회관 3층 바실리오홀에서 오후 2시에 선착순 무료입장으로 진행되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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