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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솔로몬의 위증> 어떤 연상작용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읽거나 이를 원작으로 삼은 한국판 리메이크를 볼 때 느끼는 가장 큰 이질감은 사회나 조직 안에서 통용되는 견고한 매뉴얼에 관한 것들이다. 범죄자도 피해자도 사건을 추적하는 이도 모두 사회 시스템의 영향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야기가 한국 배경으로 옮겨지며 맥락이 소거된 채 사건과 반응만 남아 앙상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동급생 사망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교내 재판을 벌이는 JTBC <솔로몬의 위증>은 어떨까?

미야베 미유키 원작 속 조토 제3중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대부분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매뉴얼은 학생을 보호하는 한편으론 책임의 선을 긋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는 외면하는 심리의 방패가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체계가 있는 원작의 학교와 달리 드라마 속 정국고등학교는 학생 사망사건과 사고처리에 허둥대기 일쑤고 학교 재단의 법무팀장이 지시하는 ‘대응 매뉴얼’은 재단의 이익을 지키고 비밀을 감출 때만 작동한다.

진실을 밝히는 데 소극적인 학교가 미덥지 못하고, 학교와 학생을 이용하는 선정적인 미디어에 반감을 품은 원작의 후지노 료코가 기획한 교내 재판이 학생 자치활동의 확장으로 보였다면 고서연(김현수)과 친구들은 학교를 견제하고 재판을 기정사실로 하기 위해 방송을 이용하며, 진상규명 과정을 외부로 공유하는 고발의 성격을 띤다. 학교 현장과 운영에 대한 이해로 비교하자면 KBS <학교 2013>쪽이 훨씬 꼼꼼하고 성실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겪었고 국가의 조직적인 진실 은폐를 목격한 우리가 학생의 죽음을 학교의 이야기로 한정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지금 여기, 한국의 맥락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