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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 코스터 3집 [absolute]
2002-04-04

내가 누구인지 아는 자의 자신감

벌써? 벌써 세번째 음반이다. 한해에 한장씩 차근차근. 롤러 코스터가 홈스튜디오에서 차분하게 세번째 결과물을 내놓았다. ‘애시드 팝’이라고 불러달란다. 애시드 재즈 그룹이라고도 불린다. 딱 좋은 이름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작은 성공에 흐트러지지 않고 구력이 쌓일수록 점점 일관된 자기 스타일을 잡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3집에서는 내친 김에 전작에 비해 ‘가요 감성’도 꽤 떨어냈다. 그 자신감도 좋다.

좌우전후로 명멸하는 키보드 사운드와 <Copacabana>에서 따온 귀에 익은 멜로디로 음반을 연다. 나른한 봄날 화아∼ 하는 청량감이 느껴진다. <라디오를 크게 켜고>는 쭉쭉 지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이나 째깍째깍거리는 기타소리가 흥겹다. 롤러 코스터가 하고 싶어하는, 잘 만들어진 하우스라는 음악이다. 하우스는, 복잡한 설명이 골치 아프다면, 시종일관 변함없이 쿵딱쿵딱하는 정박의 디스코 비트에 일렉트로니카(테크노)적인 여러 가지 효과를 넣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원래는 댄스를 위한 음악이지만 롤러 코스터는 그보다는 일상의 무드를 조율하는 데 신경을 쓴다. 그래서 흥겨우면서도 나른하다. 자기 스타일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네번째 트랙이 귀에 쏙 들어온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타이틀곡이다. <Last Scene>은 기본적으로 역시 차가운 하우스를 바탕으로 하되 무언가 아련한 애상을 담았다. 버스-코러스의 극적인 구성으로부터 나오는 감정의 과잉이 아니다. 무표정한 익명의 도시의 거리 같은 데서 문득문득 느끼는 대상이 없는 아련함이다. 비누방울처럼 공기중에 흩어지는 듯한 조원선의 목소리가 그 알싸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감정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그 수많은 방식 중에서 롤러 코스터가 찾아낸 자기만의 효과적인 전달 방식이다.

조원선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강렬한 감정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모름지기 ‘일렉트로니카 디바’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솔의 풍부함, 훵크의 역동성이 없다. 한번 시원하게 내지르는 적도 없다. 비난일까? 아니다. 자기 스타일이 ‘핫’보다는 ‘쿨’임을 잘 파악하고 있는 현명함에 대한 칭찬이다. 그녀에게는 대신 포크의 촉촉함이 있다. 후반부의 미들 템포 곡들에서는 좀더 차분한 포크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결합시켰다. 취향에 따라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답답한 비음이라는 약점은 이런 식으로 메워진다. <그녀이야기>는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낯선 효과음과 세 박자의 정겨운 리듬이 공존한다. 장필순을 다시 한번 연상시키는 어쿠스틱 포크 <겨울은 가고>에서 사용된 멜로디 혼도 재치있다. 파격적인 실험, 거창한 예술얘기까지 꺼내지 않더라도, 얼핏 보기에 모순적인 것들, 서로 다른 것들을 어울려놓아 깜짝깜짝 놀라게 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올해 만난 반가운 음반 중 하나는 이미 냉냉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 물론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이 음반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꽤 궁금해진다. 아침 출근길 버스 안 라디오에서도 흘러나오긴 하던데. 사실 궁금보다는 걱정이다. 10만장 팔리는 음반 만드는 걸 100만장 팔리는 음반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워하는 게 한국의 음반시장이니…. 이정엽/ 대중음악웹진 <weiv> 편집위원 evol21@weppy.com(http://www.wei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