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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그 배우, 더 이상하다
2002-04-06

김지운, 이상한 감독 박찬욱을 만나 <복수는 나의 것>을 논하다

김지운: 여담이지만 <복수…>에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 녹음하려고 1시간 반 차 타고 양수리 가서 2분 녹음하고 다시 1시간 반 차 타고 집에 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음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 <정말로 이상하다>의 주제곡 <정말로 이상하다>입니다.”라는 말 녹음하겠다고.

박찬욱: (미안한 듯) 믹싱할 때는 들리게 했는데 극장이 이상해서 그래.

김지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연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영화에서는 표현된 적 없는 인물의 기이한 행태가 기주봉 선배를 비롯한 76극단 멤버들의 조연을 중심으로 많이 보인다. <어둠의 자식들> 끝내고 영화를 안 했던 기주봉 형을 <조용한 가족>에 불렀는데 처음부터 다른 배우와 달랐다. 세트장에 나타나자마자 “내가 나그네 입장에서 저 밑에서부터 그냥 올라와봤어.” 하는데, 예전 76극단 선배들과 의사소통하던 특이한 방식이 되살아나면서, 이런 형한테 내가 연기주문을 한다는 것이 무참했다. 전혀 통제가 안 되는 분들이다. 야외촬영장에 데려다놓으면 들로 산으로 꽃이나 꺾으러 다닐 사람들한테 무슨…. (웃음)

박찬욱: 76극단원들은 첫 테이크 돌아가면서부터 전 스탭이 긴장해야 한다. 언제 최고가 나올지 모르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까. <복수…>에서 테러리스트로 분한 오광록이 뒤에서 송강호를 찌르는 연기는, 이런 말 미안하지만 전 출연진을 통틀어 최고의 순간이다.

김지운: 아마 이번 영화에서 송강호 연기가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혼동되는 관객이 많을 거다. <복수…>에서 내가 생각하는 송강호 연기의 백미는 이거다. 송강호가 형사와 봉고차 안에서 온갖 비장감에 충만한 상태로 ‘아우라’를 관장하며 이야기하는 장면 있지 않나. 그런데 이 형사가 차에서 막 나가 전화를 받으면서 김을 빼는 거다. 그때 송강호가 “아이, 씨발” 하면서 걸어나오는 연기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거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송강호가 고양된 상태로 형사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형사가 분위기를 깰 때 그의 판타지는 무너진 거다.

박찬욱: 자세가 안 나오는 거지.

김지운: 폼은 잡는데 밋밋하다는 느낌이 관객에게 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송강호는 속으로 온 우주의 절망을 다 안고 가는 건데.

박찬욱: 알고보면 자세가 망가진 사람의 좌절인 거지. 난 송강호가 최 반장을 매수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여기서 송강호는 딸의 유령을 만난 직후다. 그는 뭔가 달라진 거듭난 사람이라는 느낌, 정말 밥맛 없는 부자라는 느낌을 풍긴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서 헛기침하는데 그 부분이 정말 송강호답다.

김지운: 배두나를 린치하고 숨을 고르면서 머리 넘기는 장면을 보자. 실제로 아마 그 상황과 입장에서는 그 동작 외에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송강호 연기는 사실 그런 각도에서 논의돼야 한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생략되는 시간의 리얼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조하게 표현하는 능력 말이다. 신하균, 배두나, 오광록, 기주봉 등의 연기는 짐승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짜 에너지를 느꼈던 영화는 드물었다.

박찬욱: 나는 아무래도 “이 영화를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가 아니라 “이 인물들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에 가까운 감독인 것 같다. 예컨대 송강호가 테러리스트를 만나기 전에 어떤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였고 그 과정에도 많은 번뇌가 있었지만 일단 끝난 이상 자수성가한 자본가로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잘못 걸렸다고 끊는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새출발의 순간에 결국 돌연히 ‘끝’이 찾아오니 억울해서 웅얼거리고 갸웃거린 것이 아닐까.

▶ 제 1장 그 감독, 이상하다

▶ 제 2장 그 영화, 이상하다

▶ 제 4장 리얼리즘, 그것도 이상하다

▶ 제 5장 이상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