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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로건>의 깊이와 힘
허지웅(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민소원(일러스트레이션) 2017-03-06

휴 잭맨은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울버린을 끝내야 했다. 한편의 영화만 남았다. 대개의 배우들은 자기가 맡을 캐릭터의 여정에 관해 개입할 수 없다. 그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럴 권한이 있다. 특히 울버린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휴 잭맨이 아닌 울버린은 관객도, 폭스도, 심지어는 휴 잭맨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이제는 더이상 할 수 없다. 그는 너무 늙었다. 새삼스럽지만 피부암 문제도 있다. 끝내야 할 때다.

그런데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휴 잭맨은 오늘도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와인 한잔을 마신 뒤 잠이 들었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게 새벽 4시였다. 꿈을 꾼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았다. 온통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건 다른 것이었다. 갑자기 모든 게 명확해졌다. 그는 곧바로 녹음기를 움켜쥐었다. 전원을 켜며 그는 마지막 울버린 영화의 키워드가 될 세 가지 영화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소리내 내뱉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더 레슬러> 그리고 <셰인>.

<로건>은 폭발적으로 외연을 확장해내가고 있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크기와 볼거리 이외에도 깊이에 기대할 것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다. 물론 슈퍼히어로 장르는 쉽게 오해받는 것과는 달리 늘 깊이를 향한 탐구를 계속해왔다. 이를테면 <엑스맨> 시리즈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것을 어떻게 박해하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주면서 다수가 소수에게 쏟아내는 공포와 증오를 우화적으로 다루어냈다. <슈퍼맨>과 <배트맨> 시리즈는 모던 에이지 이후로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정의라는 것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 꾸준히 질문해왔다. 수많은 슈퍼히어로 텍스트들이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들로부터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건>이 특별해 보이는 건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의 확장성이 아닌 독립적인 본연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한 깊이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매우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영화 <로건>을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연장선 위에서 읽으려는 노력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영화는 울버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의 독립적인 이야기다. 코믹스로 따지자면 흡사 칼 엘이 캔자스가 아닌 소비에트연방에 추락했다면 어땠을 것인가를 다루는 <슈퍼맨: 레드 선>처럼 별개의 평행우주 에피소드로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이야기다. 영화 <로건>의 원작은 마크 밀러의 <울버린: 올드맨 로건>이다. 이 코믹스에서는 “다른 뮤턴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영화 <로건>이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로건은 늙었다. 치유 능력도 거의 소실되었다. 엑스맨은 더이상 없다. 자비에 영재학교도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뮤턴트는 거의 없으며 새로 태어나는 뮤턴트도 없다. 찰스 자비에는 늙고 쇠약해졌으며 정신도 온전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로건의 보호 아래 거의 가두어진 상태로 살아간다. 로건은 리무진을 운전하며 돈을 번다. 돈을 모아 요트를 사고 바다 위에서 찰스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게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목표다.

그런 그에게 어린 소녀 로라가 맡겨진다. 로라는 뮤턴트다. 그것도 로건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뮤턴트다. 그녀는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뮤턴트고, 로건을 유전자적인 아버지라고 믿고 있다. 찰스는 이 아이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로건을 설득한다. 아이들을 병기로 길러내기 위해 뮤턴트로 만들었던 자들은 로라를 비롯한 남은 아이들을 쫓는다. 로건은 찰스, 로라와 함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휴 잭맨이 마지막 울버린 영화의 키워드로 꼽은 게 <용서받지 못한 자> <더 레슬러> 그리고 <셰인>이었다. 회한으로 가득 찬 남자가(<용서받지 못한 자>), 마지막으로 가족과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고(<더 레슬러>), 끝내 공동체에 평화를 찾아주는(<셰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는 매우 적절한 세 가지 태그라인이다. 특히 <셰인>의 “더이상 총이 필요 없는 계곡”이라는 대사는 영화에서 여러 번 인용된다.

그러나 만약 휴 잭맨이 게임 팬이었다면 분명히 저 리스트에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끼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영화 <로건>과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굉장히 닮은꼴이다. 과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걸 망쳐버렸던 중년의 남자가 생판 모르는 소녀를 엉겁결에 보호하게 되어 유사 부녀 관계를 가지면서 그녀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갖는다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실제 작품 안의 감정이나 질감들이 고스란히 닮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로건>이 <더 라스트 오브 어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걸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거의 완벽한 굿바이 메시지로 보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휴 잭맨이지만 결국 가장 큰 역할을 해낸 건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다. 영화를 프랜차이즈의 또 다른 한 줄기가 아닌 독립적인 이야기로 완전히 통제해내고, 서부극의 정서로 잘 조율해낸 노력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읽힌다.

제임스 맨골드의 출세작은 <아이덴티티>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영화는 <3:10 투유마>다. 크리스천 베일과 러셀 크로가 등장하는 이 서부영화는 심약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온전한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는 위대한 이야기를 별다른 결점 없이 완벽하게 다루고 있다. 유독 서부극 스타일의 영화에서 자기 능력 이상의 거대한 비전을 실현해 보이는 감독들이 있다. 제임스 맨골드가 그렇다.

사실 나는 <로건>의 성공보다 제임스 맨골드의 명예 회복이 더 반갑다. 그는 <더 울버린> 이후 거의 영화를 찍지 못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더 울버린>이 가장 지워내버리고 싶을 벌칙 같은 흔적이라면 <로건>은 그에 관련한 훌륭한 고해성사로 손색이 없다. 처음 제임스 맨골드가 <더 울버린>에 이어 마지막 울버린 영화도 연출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팬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배경이 일본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영화에서 일본이나 사무라이를 등장시키면서 동시에 촌스럽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로건의 마지막 대사를 듣고 울지 않을 관객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나는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내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 가장 근사한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그건 돈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기술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일 것이다. 로건에게 그것은 더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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