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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③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 일디코 엔예디 감독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7-05-08

단언컨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은 우리가 2017년 관람할 수 있는 월드 시네마를 통틀어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작품 중 한편일 것이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가 같은 꿈을 매개로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서사를 누구와도 같지 않은 독창적 스타일로 시각화한다. 이 작품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미디어 아티스트로 경력을 시작해 영화감독, 영화과 교수 등 다양한 활동을 경유한 예술가다. 그녀는 데뷔작 <나의 20세기>(1989)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헝가리안 시네마의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무려 18년 만에 이 작품으로 국제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이 매혹적인 시네아스트의 영화를 목도할 기회를 놓쳤다. 지금이야말로 일디코 엔예디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때다.

-<마법사 시몬>(1999) 이후 장편 극영화를 만들기까지 18년이 흘렀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투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처럼 국제적으로 촉망받던 감독이 그렇게 오랜 시간 투자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다.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거장 감독조차 투자를 받지 못하고, 그에 따른 충격으로 자살 시도까지 하지 않았나. 영화감독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간이 내 경우는 유독 더 길었을 뿐이다.

-이번 영화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초봄이었을 거다. 화창한 날씨에 산책을 하며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하나같이 공허한 얼굴을 하고 있더라. 하지만 그 텅 빈 얼굴 속에서도 타인과 교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으면서도 온전히 보이지 않는, 거리의 얼굴들로부터 받은 인상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가 같은 꿈을 통해 교감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칼 구스타브 융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도 융의 생각과 비슷한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문화가 각기 다른 세상 속에서,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적 배경으로부터 시적인 신비로움을 이끌어낸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영화의 시각적 컨셉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처음 이 영화를 구상하며 촬영감독에게 강조했던 말이 있다. 기존의 어떤 영화와도 다른 비주얼을 보여주되, 그 영상은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타오르는 열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인터뷰 장소에 놓여 있던 <화양연화> DVD를 가리키며) 바로 이 영화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운 좋게도 지난주에 홍콩에서 왕가위 감독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내 영화를 보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줘 무척 행복했다. 더불어 영화 속 꿈의 공간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기보다 실제적이고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싶었다. 마치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공간처럼, 현실감 있는 장소로 표현하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남녀가 처음 만나는, 영화의 주요 공간을 가축 도축 공장으로 설정한 이유는.

=멋진 현대사회에 숨겨진 잔인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살장의 모습도 더럽고 무섭고 끔찍하기보다 최첨단 기술을 갖춘 문명화된 장소로 설정했다.

-마리아와 앙드레의 꿈에 등장하는 사슴의 연기가 굉장하다. CG는 아니었나.

=직접 촬영한 것이다. 우리는 사슴의 행동양식을 관찰하고 그들의 세계를 인지하기 위해 천천히 시간을 들여 촬영해야 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이 사람만을 위한 시리즈 다큐멘터리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동물 트레이너를 고용했는데, 그가 말하길 우리 영화의 스탭들이 자기가 만나본 크루 중 가장 인내심이 많고 평화로운 집단이었다고 하더라. (웃음) 강요에 의한 연출이 아니라 사슴의 퍼스널리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마리아와 앙드레, 도축장의 가축, 두 남녀의 꿈속 사슴의 표정은 마치 하나의 캐릭터처럼 종종 서로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라고 생각한다.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 아닌가. 이 영화를 통해 관찰자로서 동물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동물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길 바랐다. 마치 소의 입장에서 인간의 말소리를 듣고, 인간이 햇빛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소가 하늘을 응시하는 것처럼.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종족과 성별, 문화와 정체성의 다름 속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건 당신의 전작을 아우르는 중요한 관심사인 것 같다.

=내가 고민하는 소통의 문제는 비단 타인과의 교감에 대한 것뿐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닫아놓고 사는 것 같다. 난 늘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온전히 충만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내 아내의 이야기>(가제, The Story of My Wife)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건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세기를 배경으로 상하이에서 찍길 바라고 있다. 투자가 잘되어야 할 텐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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