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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키워드로 보는 <군함도> 제작기
장영엽 2017-07-26

지옥을 체험하라

지옥섬을 재현하다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18km 떨어진 섬, 그곳에 지옥이 있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는 일제강점기였던 1945년,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로 징용됐던 하시마섬을 영화의 주요 무대로 삼는다. 섬의 외양이 군함을 닮았기에 ‘군함도’라고도 불렸던 이곳은 탄광산업이 기반이었고, 석탄 채굴에 동원된 수백명의 조선인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거나 목숨을 잃었다.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온몸이 두들겨맞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대로, <군함도> 제작진의 최우선 과제는 1940년대 영문도 모른 채 이 지옥 같은 섬에 당도했을 조선인의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제작기간 1419일, 6만6천㎡의 세트, 300~400여명의 출연진. ‘스케일’로 따지면 2017년 국내 극장가에서 선보일 한국영화 중 가장 거대할 <군함도>의 규모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조성민 프로듀서) 세트를 제작해보기로 의견을 모은 뒤, <군함도>의 제작부는 강원도부터 전라도까지 “바다를 끼고 있으며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장소를 찾아 전국을 누볐고 강원도 춘천이 낙점됐다. 거주지역과 탄광지대가 산을 경계로 나뉘어 있던 군함도의 외관을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춘천 부지에 “해상용 컨테이너 120개를 쌓아올리고 시멘트를 다져”(이후경 미술감독) 20m 높이의 인공산을 만들었다. “군함도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콘크리트 건축물이 존재했던 섬이다. 그런 특징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공적이고 기형적인 느낌과 군함을 닮은 실루엣을 최대한 살려보고 싶었다.”(이후경 미술감독)

계급과 계층을 반영한 수직의 이미지

“조선에서 아주 훌륭한 인재들이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하시마 광업소의 시마자키 소장(김인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함도에 당도한 조선인을 맞이하는 건 일본인의 무자비한 구타와 멸시 그리고 조롱이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군함도라는 공간 속에서 조선인이 처한 계급적, 계층적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직의 이미지들을 프로덕션 디자인에 반영하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함도에서 일본인은 9~10층 높이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에, 조선인은 바닷물이 침투해 언제나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는 아파트 지하실과 보일러실 등에 머물렀다고 한다. 계단이 가파르고 많은 ‘지옥계단’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삶의 터전을 구분하는 수직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구조물로, 군함도를 조명한 역사 자료에 자주 언급되는 곳이라고 이후경 미술감독은 말한다.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군함도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자료에 따르면 2.5m 정도였다고 한다)을 6m로 증축해 만든 것도 <군함도>의 미술팀이 구현한 위압적이고 두려운 수직의 이미지다.

지옥 중의 지옥, 탄광 시퀀스

<군함도>의 제작진이 입을 모아 구현의 어려움을 얘기했던 장면은 탄광을 주요 무대로 하는 석탄 채굴 시퀀스였다. 군함도의 조선인은 해저 1000m의 수심에 달하는 깊이의 ‘막장’(광산에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갱도의 막다른 길을 일컫는 말)에서 채탄 작업을 벌여야 했고, “사람 한명이 간신히 기어들어가 채탄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굴이라 하여 ‘개미굴’이라 불렸던 군함도 탄광의 비좁은 공간들은 영화에서 여과 없이 재현됐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석탄과 연탄을 활용해” <군함도>의 드넓은 제작 공간을 온통 ‘검은색’으로 만드는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한다. 군함도 조선인 노동자들의 채탄 환경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군함도> 미술팀은 인도 등 노동집약적인 국가의 채탄 과정을 참조하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영화 속 탄광의 모습을 재현했다. 한편 개미굴에서의 채탄 작업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도 촬영팀에는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공간의 협소함과 답답함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며 몸을 숙이고 굽히고 때로는 엎드린 자세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던 촬영팀의 고군분투를 전한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특정 배우의 단독 클로즈업숏이 거의 없는 영화. <군함도>는 그야말로 ‘군중의, 군중에 의한, 군중을 위한’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개별적인 사연을 소개하는 장면에서조차 수십명의 주변 인물이 늘 함께했다. “클로즈업과 풀숏의 느낌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숏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게 류승완 감독의 일관된 주문이었다고 이모개 촬영감독은 말한다. “그런 방식을 유지해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에서도 군중이 모두 잡히는 숏을 감독님이 끝까지 고집했던 건 그때 그 시절 군함도에 있었던 조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고 이모개 촬영감독은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군함도>의 촬영팀은 페루 탄광의 광부들을 조명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흑백사진을 주요 레퍼런스로 삼았다. “전경과 중경과 후경에 위치한 인물들의 레이어가 다채롭다”(이모개 촬영감독)는 이유에서다. 촬영에 사용되는 카메라의 수를 현저하게 줄이고(<군함도>는 알렉사 XT와 알렉사 미니로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와이드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한대로” 긴 호흡의 촬영을 이어가는 방식은 <아수라> <마이웨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규모의 상업영화를 통해 강렬한 시각적 참신함을 선보여온 이모개 촬영감독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무겁고 어두운 잿빛 섬

<군함도>는 흑백 화면으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맺는다. “전작을 통틀어 가장 색보정을 많이 한 작품”으로 이 영화를 꼽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말대로,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영화적 색감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건 <군함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경성의 색감이 화려하고 붉다면, 처음 영화에서 선보이는 군함도는 색감이 빠져 있는 느낌이다. 목탄 느낌이 나는 잿빛 컬러라고 할까. 그러다가 조선인이 탈출을 도모하고 결국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색감은 블루를 거쳐 보랏빛이 도는 마젠타 컬러로 변한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플래싱’(미리 특유의 색을 입힌 필름으로 촬영하는 방식) 기법을 사용해 한국 대중상업영화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독특한 질감의 컬러를 구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언제나 검은 연기가 굴뚝을 뒤덮고 있는”, 탄광산업의 요충지로서의 군함도를 표현하기 위해 조선인 거주지역 전반에 무겁고 어둡고 거친 톤의 색감을 사용했다고. 반면 이처럼 인공적이고 투박한 환경 속에서 식물들이 귀하게 취급되었다는 데에서 힌트를 얻어 일본인의 공간에 종종 사용했던 컬러는 그린이었다.

45일간의 지옥도 탈출

죽느냐, 혹은 죽음을 무릅쓰고 사느냐. <군함도>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건 수백명 조선인의 목숨을 건 탈주 시퀀스다. 딸(김수안)을 지키려는 악단 출신의 아버지(황정민),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한 광복군(송중기), 조선인 광부들의 ‘오야붕’으로 군림하던 주먹(소지섭)과 일본인에게 유린당하던 여성(이정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군함도에서 벗어나겠다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질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군함도>의 탈주 시퀀스는 장면의 규모도 규모이거니와, 영화적 시간으로도 밤부터 다음날 낮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기에 구현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제작진은 말한다.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해가 떨어진 뒤에는 촬영을 할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데이 포 나이트’로 낮시간에 촬영하는 것이었다. <글래디에이터> 초반부의 전투 신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해뜨는 풍경 등 어스름한 시간대를 다룬 상업영화의 명장면들을 참고했지만 아무리 봐도 우리와 비슷한 조건의 레퍼런스는 없더라.

결국 시각특수효과 전문업체인 디지털아이디어가 CG 작업으로 시간대에 따른 하늘의 변화를 표현했는데 놀랍도록 리얼하게 구현했더라. 전적으로 팀워크에 의해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점이 뿌듯하다.”(이모개 촬영감독) 조성민 프로듀서 역시 모든 스탭들이 함께 “슛”을 외치며 결의를 다졌던 탈출 시퀀스를 인상적인 순간으로 꼽으며 “여백 없이 꽉 들어찬 화면을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이후경 미술감독은 탈출 시퀀스를 찍을 때 시원섭섭함이 컸다고. “6개월 동안 만들었던 섬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마음이 허전하더라. (웃음)” 늘 300~400명의 스탭이 현장에 상주했던 <군함도> 촬영이 끝나던 날, 제작진은 현수막에 마치 영화 속 군함도를 탈출하던 조선인들처럼 다음과 같은 유머러스한 문구를 넣었다. “이제 다 끝났다. 돈도 없고, 춥고, 열정도 죽었다. 이제 우린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이 군함도에 남겨두고 온 것을 영화에서 확인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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