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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짝사랑한 작가 스티븐 킹의 작품세계

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자주 영화화되는가

<샤이닝>

스티븐 킹을 약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이 지금까지 만들어진 스티븐 킹 영화 중 최고 걸작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지난 몇 십년 동안 큐브릭의 <샤이닝>이 얼마나 형편없는 영화인지 온갖 통로를 통해 꾸준히 설명해왔다. 심지어 그는 큐브릭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미니시리즈 리메이크 버전 <샤이닝>의 제작과 각색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결과는? 미니시리즈 버전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큐브릭의 영화는 여전히 걸작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스티븐 킹의 기가 꺾였느냐? 당연히 아니다. 난 종종 최근에 나온 <샤이닝>의 속편 <닥터 슬립>도 큐브릭의 <샤이닝>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쓴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작품이 미니시리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 작품은 큐브릭 영화에 대한 스티븐 킹의 또 다른 복수가 될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질지 몰라도 요리사 할로런 캐릭터가 초반에 등장할 거라는 데 50원을 걸겠다. 킹은 큐브릭이 이 캐릭터를 영화에서 죽인 걸 정말 싫어한다. IMDb에서 스티븐 킹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작가로서 이름을 걸친 작품이 자그마치 239편이나 된다. 대부분 원작자이고 종종 자신의 작품을 각색했고 가끔 오리지널 각본을 썼으며 <킹덤 호스피털>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원작을 각색하기도 했다. 여기엔 엄청난 양의 저예산 단편 각색물이 포함되는데 어쩌자고 저렇게 허가를 쉽게 해주는지 모르겠다.

올해 나온 스티븐 킹 각색물들을 세어보자. 그의 에픽 판타지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다크타워>, 이미 90년대에 한번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진 적 있는 <그것>의 영화판, 영화로 한번 만들어진 적 있는 <미스트>의 TV시리즈, 추리소설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TV시리즈 버전, 스티븐 킹의 캐릭터들이 그가 만든 허구의 마을에서 총출동하는 <캐슬록> TV시리즈…. 물론 IMDb에 이름만 올라와 있는 정체불명의 단편은 다 뺐다. 이들의 결과가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일단 <다크타워>의 비평적 성과는 형편없고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평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 역시 스티븐 킹답다. 그의 이름은 완성된 각색물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이렇게 자주 영화화되는가. 그의 작품에 특별히 영화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일까? 이 질문은 “왜 토머스 핀천의 소설은 영화화되는 일이 드문가. 그의 소설에 영화화되기 어려운 문학적 특징이 있기 때문인가?”와 비슷한 질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질문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이렇게 자주 영화화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70살 생일을 앞둔 지금에도 엄청난 다작을 자랑하고, 작품이 재미있고 선정적이며 줄거리만으로도 잠재적인 관객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전한 소재에 목마른 할리우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이건 그의 소설이 가진 영화적 특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훌륭한’ 스티븐 킹 영화의 리스트를 짜보자. <캐리>(1976), <샤이닝>, <스탠 바이 미>(1986), <쇼생크 탈출>(1995), <미져리>(1991), <그린 마일>(1999), <돌로레스 클레이븐>(1995) 정도가 떠오른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리스트이고 취향에 따라 더 추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스티븐 킹의 각색물 수를 생각해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여러분은 <드림캐쳐>(2003)가 어떤 영화인지 기억하는가? <나이트 플라이어>(1998)는? <파이어스타터>(1984)는? <슬립워커스>(1992)는? 킹이 직접 감독한 <맥시멈 오버드라이브>(1986)는 어떤가? 이 리스트는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영화화하기 쉽지만 좋은 영화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일단 그는 두꺼운 책을 쓰는 작가다. 킹의 소설이 가진 재미는 문장 속에, 디테일 속에 있다. 이를 요약해 줄거리만 남겨버리면 영화는 원작이 가진 매력을 많이 잃어버린다. 그리고 줄거리만 본다면 킹의 소설은 의도적으로 느껴질 만큼 평범하다. 호텔이 귀신 들렸다. 자동차가 귀신 들렸다. 초능력 소녀가 자신을 괴롭힌 학생들에게 복수한다. 시골 마을에 뱀파이어가 이사 온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킹의 최고 장점이 아니며 독자들도 그를 기대하지 않는다. 킹의 고정독자들은 그 익숙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킹 특유의 질감을 가진 이야기로 완성되는지를 보기 위해 그의 책을 읽는다. ‘성공적인’ 스티븐 킹의 영화들은 이 익숙한 게임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의 원작은 비교적 짧은 편으로 원작의 매력을 날려버리는 불필요한 압축의 과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져리> <돌로레스 클레이븐>은 단순한 장르 게임이 아니다. <캐리>의 경우 풋내기였던 스티븐 킹보다는 브라이언 드팔마의 개성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큐브릭의 <샤이닝>으로 돌아간다면, 왜 킹이 이 작품을 꾸준히 싫어하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킹은 알코올중독에 빠졌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 하지만 큐브릭은 이 소설을 이루는 그 인간적인 감정 대부분을 지워버렸다. 큐브릭의 <샤이닝>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정한 영화로 좀 AI의 내면 속 가상현실 같으며 영화 속 캐릭터들에겐 언캐니 밸리의 오싹함이 느껴진다. 킹이 이 버전에 질겁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돌로레스 클레이븐>

하지만 킹의 <사이닝>을 꼼꼼하게 다시 읽는다면,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분명 인상적인 심상은 존재하지만 독자들을 공포와 연민으로 몰아가는 인간적 드라마 대부분은 이미지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큐브릭은 이를 억지로 이미지화하는 대신 자신의 차갑고 엄격한 스타일에 킹의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당연히 킹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가 나왔지만 큐브릭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는 최상의 영화가 나온 것이다. 원작에 충실한 영상물을 만들려던 킹의 시도는 큐브릭이 옳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슬픈 시도였을 뿐이다. 그건 가장 스티븐 킹스러운 소설은 생각만큼 영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건 킹이 그렇게 좋은 영화감독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연결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의 소설은 계속 영상화되고 있으며 할리우드는 그를 각색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내고 있다. 이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그렇게까지 영화적이지 않아도 여전히 각색되고 있고 종종 훌륭한 영화로 완성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방대한 양과 끊임없는 시도는 결국 길을 찾아낸다.

킹의 각색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TV의 부상이다. 원래부터 스티븐 킹은 영화만큼이나 TV드라마로 많이 각색되었었다. 위에 언급한 <샤이닝> 미니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고 <세일럼즈 롯> <그것>같은 시리즈는 성공적인 킹 각색물 중 하나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의 한계 속에서 이들은 대부분 고만고만한 결과를 맺었는데(<토미노커스>나 <스탠드>를 기억하는가?) TV에서 보다 융통성 있는 표현의 자유와 러닝타임을 허락하는 최근의 경향은 킹의 각색에 새로운 영역을 제공한다. 2부작 이상으로 영화를 끊어도 관객이 기다려줄 것이란 확신이 선 지금은 <그것>의 극장판과 같은 영화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킹과 관련해 최근에 나온 진짜로 흥미로운 작품은 스타일과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식한 오리지널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다. 이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스티븐 킹의 세계가 작가의 손을 떠나 계속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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