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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이병헌 - 시대의 울림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7-09-19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추위와 배고픔으로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47일간의 전쟁. 이조판서 최명길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조(박해일)를 향해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라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건 직언을 한다. “영웅이 되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소신 하나로 죽음을 무릅쓴 충신 명길은 이병헌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언어로 강렬한 힘을 얻는다. “아껴두는 마음에” 미리 영화를 보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사회를 기다린다고 할 만큼, 이병헌은 <남한산성>이 가진 영화적 가치와 무게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황동혁 감독이 “김훈 작가 원작의 강렬하고 묵직한 대사를 재연하려는 마음에, 배우들이 대사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 나는 반대였다. 오히려 예스러운 말투와 약간은 생경한 단어가 캐릭터나 상황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 그 시절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인물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 느낌이라 대사들이 주는 묵직함이 오히려 좋았다.

-원작이 가진 묵직한 무게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나리오다. 감정을 몰아가거나 드라마틱함을 주기 위한 장치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깔끔하게 완결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김훈 작가님이 격려차 현장에 오셨는데, “각색이 힘든 책이었을 텐데 시나리오가 참 좋다”고 말씀해주시더라. 황동혁 감독님의 실력이다. 사실 영화 찍으면서 이렇게 모니터링을 하지 않은 게 처음이다. 보통 영화를 찍으면 배우들이 이 감정, 저 감정 상상해서 가고 그 몇 가지를 다 해보는데, 감독님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정확하게 안다. 그러니 초반 촬영 하고 나서 “한번 볼게요” 하는 이야기를 더이상 안 하게 되더라.

-최명길은 당시로는 입에 담기 힘든, 실리적인 의견을 내놓아 주변의 미움을 얻는 인물이다. 변화와 각성을 하는 캐릭터보다 초지일관의 소신을 가진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이 영화에는 한 인물의 생각이나 소신의 변화보다 훨씬 더 큰 게 있다. 그는 남들이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여기는 말을 영화 끝까지 굽히지 않고 외쳐대는 인물이다. 명길이나 상헌(김윤석) 둘 다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데, 이 부분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관객이 어느 한 캐릭터에 감정이입해서 따라가도록 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딱 50 대 50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게 해준다. 그게 이 시나리오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큰 매력이지 싶더라.

-최명길이 가진 소신이 지금의 관객에게도 울림을 주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딱 한번,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던 명길이 “백성을 살리자”는 직접적인 대사를 한다. 감독님에게 그 대사를 넣자고 청했다. 나는 그 신의 그 말을 하는 명길이 가장 크게 보이더라. 나는 명길이나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이 무언가를 제시하거나 영웅이 되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의 말, 생각이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본다. 두 의견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최근 한국 장르영화를 향한 피로도 성토되고 있다. 여배우의 작품 기근 현상도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특정 장르의 유행은 시대를 반영한 결과다. 범죄 액션물에 비리 관련 이야기가 많고, 장르가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남성의 역할이 많아지고, 왠지 한국에는 여배우들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생겨버린다. 최근 이주영 감독과 함께한 <싱글라이더>나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윤여정 선배님과 함께한 <그것만이 내 세상>을 작업하면서 그런 시나리오들이 너무 반갑고 좋더라. 또 그런 시나리오가 온다면 외면하고 싶지 않다.

-할리우드 활동 계획은 아직 미정이다.

=이상적으로는 여기서 반, 할리우드에서 반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안 된다. 스튜디오 미팅을 다녀보면 거기서 살고 있는 배우와 간혹 한번씩 오는 배우와는 대우가 다르다. 아시아 배우들이 한번 출연하면 아예 거처를 그쪽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지켜보니 이해가 되더라. 기왕 시작한 거 가서 한번 부딪쳐보라는 충고도 있고, 나도 한번 부딪쳐볼까 싶기도 한데 그러기에는 자국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다. 결국 모든 게 내 선택이겠지만, 욕심내서 억지로 끼워맞추거나 압박감을 갖지 않고 판단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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