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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②] <유포리아> <빛나는>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곽민해 2017-10-02

<유포리아> Euphoria

리사 랑세트 / 스웨덴, 독일 / 2017년 / 98분 / 월드 시네마

에밀리와 이네스. 오랜만에 조우한 자매는 함께 여행을 떠난다.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로브스터와 샴페인을 즐기면서도 이들의 미소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특히 뭔가 숨기고 있는 쪽은 에밀리다. 이네스는 낯선 남자와 함께 춤을 추고, 즐기지 않는 술까지 마시는 에밀리의 모습이 낯설다. 영화는 초반부에 오랜 시간 서로에게 소원했던 자매가 속내와 다른 말을 내뱉을 때, 서로에게 친밀함을 표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어긋날 때의 고요한 긴장을 솜씨 좋게 조율한다.

이튿날 에밀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가자는 말로 이네스를 안내한다. 두 사람이 내린 곳은 외딴 숲의 초입. 에밀리는 자신을 마중 나온 정체불명의 이들과 인사를 건네고, 이들은 자매를 큰 정원이 있는 저택으로 안내한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무리를 따르는 이네스와 함께, 영화도 현실에서 판타지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기이한 평온이 감도는 여기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이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에밀리는 이네스에게 투병 사실을 털어놓고, 자신의 마지막에 이네스가 곁에 있길 바란다. 그러나 이네스는 존중을 가장한 외면과 방치를 견디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에밀리는 그동안 자신과 가족을 외면한 이네스에 대한 원망을 쏟아낸다. 영화는 기이한 고독 속의 충동과 긴장을 날카로운 현악기의 선율로 부각시킨다. 배우 에바 그린이 음울한 눈빛의 에밀리로 열연하고, <대니쉬 걸>(2015)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이네스 역을 소화했다.

<빛나는> Radiance

가와세 나오미 / 일본, 프랑스 / 2017년 / 101분 / 아시아영화의 창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 건널목을 지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혼잡한 도시의 아침을 묘사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스크린을 채운다. 그의 이름은 미사코. 영화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 해설을 입히는 일을 한다. 소수의 장애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시험 해설 자리에서 그는 나라모키라는 남자를 만난다. 나라모키는 미사코의 해설이 지나치다고 평가한다. 미사코는 결말의 많은 부분을 생략한 대본을 준비하지만, 이번에는 영화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 딱 잘라 말한다. 영화는 일상의 순간을 말로 재구성하는 미사코의 대사를 통해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너무 많은 설명은 상상력을 제어하고, 너무 적은 설명은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극중 대사처럼, 장애를 가진 이에게도 영화는 그저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감상이어야 할 것이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상실과 치유, 성장에 관한 영화다.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Marlina the Murderer in Four Acts

몰리 수리야 / 인도네시아, 프랑스, 말레이시아, 타이 / 2017년 / 95분 / 아시아영화의 창

인도네시아 내 성차별 문제를 서부극의 문법 안에 녹여냈다. 제목처럼 영화는 4막에 걸쳐 주인공 말리나의 여정을 따른다. 시작은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그의 집에 7명의 남자들이 찾아오는 장면이다. “과부에게 남자가 있다는 건 행운이야.” 이들은 말리나를 강간하고 그의 재산을 훔치려 한다. 말리나는 그날 밤 이들의 목을 벤다. 이때부터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그것과 닮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공기 속으로 접어든다. 말리나는 시신의 목을 들고 경찰서에 가는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여기서 임신한 몸으로 남편을 찾아가는 노바와, 조카의 결혼식에 가는 중년 여성을 만난다. 말리나가 손에 든 것을 보고 도망친 남자들과 달리 이들은 태연한 얼굴로 버스에 오른다. 시체를 보고도 꿈쩍하지 않는 세 여자의 동행은 이 영화가 여성들의 유대감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 로드무비를 통해 감독은 결국 인도네시아 사회를 겨냥한다. 남편에 대해 토로하는 노바의 대사에선 가정 내 건재한 불평등이 읽히고, 말리나가 경찰서에 가서 얻는 답은 그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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