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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 남연우 감독 - 온전히 한 인물을 집요하게 좇았다
곽민해 사진 오계옥 2017-10-05

<분장>은 극중에서 연극 <다크라이프>에 트랜스젠더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 송준(남연우)의 심리 변화를 좇아가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 송준은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친구에게 인권을 운운하며 깨어 있는 사람인 척하지만, 정작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송준의 사연을 통해 영화는 이해한다는 말에 숨은 위선을, 진정성이란 말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가시꽃>(2012)으로 제1회 들꽃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남연우는 <분장>을 통해 첫 장편 연출에 도전했다.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작품이지만, 송준의 심리에 밀착해 밀도 높은 감정선을 쌓아가는 덕에 만듦새는 단단하다. 예고편도 직접 작업했다는 남연우 감독 겸 배우는 인터뷰 당일에도 <분장> 사운드트랙의 뮤직비디오 편집을 하다 달려왔다며 작업용 노트북을 들고 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로 영화가 좋은 반응을 받아왔다. 같은 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선택’상을,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서 ‘핑크머니’상을 수상하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을 예상했나.

=감독으로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혼자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기는 했지만 정말로 영화제에 진출하고 상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다.

-매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성실하게 경력을 채운 배우다. 출연 스케줄을 소화하며 연출까지 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단편 <그 밤의 술맛>(2014)에 이어 장편 연출까지 도전했다.

=배우로 상업영화 현장에 갔을 때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었다. <가시꽃>에 출연한 뒤로 많은 상업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단편영화에서는 온전히 한 인물을 연기할 수가 있었는데, 상업 장편으로 오니 이미지 중심의 단역만 맡게 됐다. 아무리 인물 전사를 준비하고 연기해도 화면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인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틈틈이 작업한 이야기로 단편을 찍었고,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영화를 좋게 본 제작자와 연이 닿아 <분장>을 준비하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투자가 잘 안 됐다고 들었다.

=남연우가 감독으로 증명한 것이 없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제작자 분이 끝까지 투자를 받으려고 하셨는데, 예상보다 수개월이 지나게 됐다. 스스로 작품에 대한 소신이 바뀌기 전에 영화를 찍고 싶어서 혼자 힘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현재도 도움 없이 직접 다 하고 있는 상태인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직접 하려 한다. 그래서 영화 예고편도 직접 편집했고, 뮤직비디오(오도이 음악감독이 작업한 <분장> O.S.T 앨범이 최근 발매됐다)도 편집하고 있다. 오늘도 근처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외장하드에 옮겨 담는 중에 달려왔다. (웃음)

-제작비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극중 <다크라이프> 공연에 수백명의 관중이 객석을 채운 장면이 나오지 않나. 빠듯한 제작비에도 공연 장면을 고수한 이유가 있다면.

=<다크라이프>가 세계적인 연출가 작품이라는 설정이라 공연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산 안에서 찍을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그러던 중에 학교 동기인 강기동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에 초대받았는데, 무대를 보고는 ‘여기다’ 싶었다. 공연 보는 내내 집중을 못하고 극장 빌릴 생각만 했다. (웃음) 다행히 그 친구가 다리가 되어서 좋은 조건에 극장을 빌렸고, 촬영 열흘 전부터 배우와 스탭 가릴 것 없이 지인을 부르고, 당일에도 대학로 길거리에서 모객했다. 객석이 다 차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나더라.

-연극 <다크라이프>에서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던 송준은 정작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갈등한다. 그런데 송준이 자기 내면에서 배역과 괴리될수록 주변 사람들은 송준의 연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칭찬하는 아이러니가 신선했다.

=극중 김태백 연출가가 “진정성은 시대가 만들어낸 단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는 정말 그런 말을 쓰지 않았더라. 행동에 ‘영혼이 없다’거나 ‘진정성이 없다’는 말은 최근에야 나온 것 같다. 트랜스젠더 역을 맡은 배우라는 설정은, 송준이 서로 다른 심리 상태에서 같은 대사를 내뱉어야 할 때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어서 가져왔다.

-많은 독립영화가 소수자 문제를 가져오지만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틀에 박히거나 폭력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텐데,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궁금하다.

=사실과 다른 부분을 왜곡해서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다. 성소수자인 친구에게 초고 때부터 시나리오 자문을 받았는데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는 대부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해 말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에서 재밌다”고 해줘서 용기를 얻었다. 그 친구가 트랜스젠더 분을 소개시켜줬고, 트랜스젠더 이나를 연기한 홍정호 배우와 함께 그들의 말투나 행동, 은어들을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동생의 연애 사실을 알고난 송준은 자신이 맡은 배역과도 멀어지고, 사랑하던 친구와 동생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전반부는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인데 반해 후반부는 스릴러에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유머러스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태도가 보인다.

=영화는 반드시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코믹한 장면만이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 유머는 인생의 중요한 모토다. 평소에도 개그 욕심이 많은 편이다. (웃음)

-송준이 자신의 연기와 내면에 괴리를 느끼며 갈등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배우로서 캐릭터의 깊이에 신경 쓴다고 밝혔는데, 연출가로서 인물을 그릴 때는 어땠나.

=의미나 상징을 잘 다루는 감독은 아닌 것 같다. 송준이라는 한 인물을 집요하게 좇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송준은 자기가 위선적인 인물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한다. 이때 그 인물은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할지, 그런 그의 행동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될지에 집중했다.

-감독과 배우를 병행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감독 남연우가, 배우 남연우에게서 끌어내고 싶었던 모습은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좀더 거침없고 외향적인 인물을 떠올렸다. 평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조용한 편이라서. 그런데 현장에서는 배우보다 연출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커서 캐릭터의 세심한 면모들을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송준이라는 인물이 원래 가져야 했던 모습보다 남연우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 것 같다.

-차기작에서 배우로 만나게 될지, 감독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냈는데 운 좋게도 선정이 됐다. <내 나이 열네살>이라는 작품이고 아직 준비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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