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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 7인⑦] <밤치기> 정가영 감독 -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7-10-30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감독상 /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박종환)

‘이렇게 웃긴 영화를 봤나.’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권해효가 심사 후 내내 <밤치기>의 장점을 말하느라 바쁘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뉴 커런츠 부문 등 심각한 사회 반영으로 ‘몸살’을 앓는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하루에 자위 두번 해본 적 있어요?’ 같은 말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대는 <밤치기>는 한마디로 ‘골 때리는’ 영화였다. 감독 이름은 볼 것도 없이 정가영이다. 전작 <비치온더비치>(2016)의 독특한 대사와 화법은 그대로. 사비를 털어 만든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투자자로 나서 ‘3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열배로 뛰었다. 어디 제작 규모의 확장뿐일까. 속속 내놓는 단편에 이어 두편의 장편으로 정가영의 세계는 보다 또렷하게 관객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밤치기’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려고 했다. 가영이 하룻밤 사이에 진혁(박종환)과 진혁의 선배 영찬(형슬우) 등 두명의 다른 타입의 남자를 만나서 자려고 하지 않나. 그래서 ‘히트 더 나이트’(hit the night), 즉 ‘내가 그날 밤 밤을 쳤지’ 하는 회상조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제목을 정하고 검색해보니 밤치기가 ‘제사 때 밤을 치다’라는 뜻으로 쓰이더라. (웃음)

-전작에 이어 당신이 직접 연기하는 ‘가영’이 다시 등장한다. 상대 남성을 향해 더 집요하게 섹시함을 들이대는 캐릭터다.

=결국 가영은 같은 인물이다. 열심히 살아가려 하고, 멋진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여자다. 또 내가 좋아하는 것, 행복한 것에만 집중하는 인물이다. 스스로 내가 더 멋진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그게 작품 속 가영에게도 반영되고 있다고 느낀다.

-가영은 좀체 마음을 열지 않는 진혁과 밀당을 하다가 반대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남자 영찬을 만나면서 갈등에 놓인다.

=등장하는 남자는 둘이지만, 둘이라고 할 수 없다. 영찬은 일종의 상황을 주기 위해 넣은 인물이다. 시나리오 쓸 때는 다음 장을 모르고 썼는데, 너무 둘만 나오니 새로운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싶더라. 그날 밤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가영의 목표는 당연히 진혁이다. 하룻밤 사이에 자고 싶은 남자(진혁)와 잘 수 있는 남자(영찬)를 만나는데, 가영은 그 밤의 끝에 어떤 선택을 한다. 나는 지금의 결론이 가영에게 큰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 밤에 이루어지는 대화는 주로 ‘자위는 몇번 해봤나’ 같은 도발적인 내용의 문답이다. 시나리오 취재가 빌미지만 가영은 그 질문에 적극적이고, 당황하는 남자의 반응을 즐긴다.

=섹스는 사람들이 하도 많이 입에 올리니 쿨하고 쉽게 말하는데, 마스터베이션은 아직 감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스터베이션에 대해 말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려주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걸 물어요’라며 발끈하는 남자들도 있겠지만, 진혁이라는 캐릭터는 당황해하면서도 착하게 다 말해주려고 하는, 취재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인물이다.

-단편 <내가 어때 ㅎㅎ>(2015), <비치온더비치>에 이어 이번에도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를, 소위 말해 ‘떠보는’ 과정, 윤리적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게임’을 벌이는 구조다.

=내가 하수라서 그렇다. 그런 제약으로 극적 긴장감을 주는 거다. 윤리적인 잣대를 자꾸 언급하는 것은 사실 사람들은 아무리 잘 살려고 해도 이따금씩 조금씩 흔들린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렇게 느끼지 않을까. 이런 갈등을 만들면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 정가영의 연애, 에피소드가 얼마나 들어갔을까 모호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옴니버스 중 한편을 만드는데, 정가영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GV) 하는 내용이다. 이거 실화냐, 실제와 똑같냐는, 매번 듣는 질문을 극중에 옮겨왔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 이태경 배우가 정가영을 연기하는데, 거기 반전이 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와이드앵글-한국단편경쟁 부문)도 초청됐다. 톱배우 조인성을 섭외하려는 무명감독의 한나절을 그리는데, 실제 조인성을 캐스팅(목소리 출연)했다.

=시나리오를 써서 조인성씨 소속사로 보냈다. 매니저분이 연락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 조인성이에요, 감독님.” 언제 촬영할 거냐고 해서, 그길로 일사천리로 노개런티로 촬영이 이루어졌고, 술도 마셨는데, 술값도 내주셨다. (웃음) 다음엔 직접 출연해주면 좋겠지만….

-일상의 날것의 대사와 상황을 가공하지 않고 스크린에 구현한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커다란 사회문제를 다루지는 못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는 작가다. 그때그때 내가 재밌고, 어쩌면 남들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확신만 있으면 이야기를 진행한다. 워낙에 홍상수, 우디 앨런 감독을 좋아하고, <> <마녀사냥> 같은 TV프로그램을 많이 봐서 그 영향을 꽤 받은 것 같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배우들과 진행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재밌는 생각이 떠오르면 망설임 없이 한번에 쓴다. 단편은 30분, 장편은 2~3주정도 작업한다.

-감독 연출작에서 쭉 주연을 맡고 있는데, 다른 영화에서도 배우로 캐스팅 섭외가 있었나.

=연기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격려하고, 조금 맘에 안 들어도 시무룩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직 다른 감독님의 제안은 없었는데, 내가 연기 디렉팅을 잘하고 있나 생각해보면, 경험을 쌓을 겸 다른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어떤 캐릭터가 좋을 것 같나.

=시나리오 보고 결정해야지. (웃음)

-또 다른 작품 계획도 있나.

=올해 세편을 찍어서 아직은 없다. 사실 완성도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데다, 일단 찍어보고 ‘재밌어하겠지’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한다. 이제 투자를 받기 시작했으니 좀더 고민도 많아져야겠다.

<밤치기> 시놉시스

시나리오 자료조사를 핑계로 가영(정가영)은 호감 있는 남자 진혁(박종환)과 만난다. 남녀간의 솔직한 성행위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하에 가영의 질문은 점차 수위가 높아진다. ‘하루에 자위 두번 한 적 있어요?’ 같은 민망한 질문이 이어지던 중, 가영은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라며 추파를 넘어선, 진심을 전한다. 룸카페, 노래방 등 갇힌 공간 안의 두 남녀. 여자친구가 있는 진혁의 난처한 표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고스란히 가영의 몫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진혁의 선배 영찬(형슬우)을 만나게 되는데, 갈등하던 진혁과 달리 영찬은 가영에게 적극적이다. 한정된 밤, 소위 ‘발동’걸린 여자 가영은 누구와 잠자리를 하게 될까. 뚜렷한 목표를 향한 남녀의 노골적인 ‘밀당’이 코믹과 극적 긴장감을 오가며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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