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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배우 박정민·김민재 - 우리 이웃의 얼굴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8-01-23

“실제로는 이중에서 저희가 가장 오래 알고 지냈고 또 친할걸요? (웃음)” 극중에서 사이가 나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모였다고 농담 섞은 인사를 건네자, 박정민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박정민과 김민재는 각각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09학번과 06학번으로, 서로의 공연을 보러가기도 했던 선후배 관계다. <몽유도원도>라는 단편영화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도 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연기할 필요가 없었는데.”(김민재) “내가 형한테 많이 맞았지.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고.”(박정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푸는 모습은 <염력>에서 두 사람이 맡은 역할과도 닮아 있다. 그들은 <염력>의 윤활유 같은 존재다.

강제 철거 명령에 저항하는 치킨집 사장 루미(심은경)와 10년간 떠나 있다 돌아온 아빠 석헌(류승룡)의 이야기를 그린 <염력>에서 박정민은 루미를 돕는 인권변호사 김정현을 연기한다. 열과 성을 다해 상가 주민들을 지킨다는 그의 설정은 자칫 정의롭고 멋있게만 비칠 수 있다. “연상호 감독님이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주셔서 함께 밥을 먹었다. 내가 생각했던 변호사가 아니더라. 그래서 기존에 변호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다.” 법적으로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변호사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예고편에서 석헌이 초능력을 쓰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코믹한 장면은 “모든 구멍을 다 열어서 연기하라”는 연상호 감독의 디렉팅의 결과였다고. 비주얼적인 변신도 감행했다. “감독님이 저의 ‘못생김’을 한껏 꺼내주시고 마음껏 이용하시더라. 원래 팔다리가 가늘어서 남자답게 보이지 않을까봐 반팔을 잘 입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그냥 반팔도 아닌 반팔 남방을 입는다. 양복에 운동화를 신고, 등산 가방도 멘다. 정말 아무런 사심도 없는, 정의만 아는 사람처럼 보일 거다. (웃음)” 박정민이 말하는 도중 “여자들이 싫어할 것 같은!” 등의 추임새를 넣던 김민재가 “시나리오에서 정민이랑 (류)승룡 형이 걸어가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아니, 그냥 그렇다고…”라는 고백을 툭 던졌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민이 연기하는 변호사 김정현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은, 그가 말하는 희망을 빤하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다.

김민재가 맡은 용역업체 대표 민 사장은 루미를 비롯한 상인들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 캐릭터 역시 죄 없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기능적인 악역과는 거리가 멀다. “나쁜 캐릭터지만 이웃에서도 볼 수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사람이 무조건 선한 부분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영화를 볼 때는 불편할 수 있지만 극장을 나서면서는 내 속에도 저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초반에는 연상호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에 귀가 빨개질 만큼 당황했지만, 촬영이 이어질수록 그런 디렉팅이 캐릭터의 확장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좋았다고. 선배의 인터뷰를 조용히 경청하던 박정민도 “민재 형 나온 분량을 많이 모니터링했는데 진짜 웃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악역이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는 존재는 어떤 거대한 빌런만이 아니다. 사람들을 편하게 웃길 수 있는 이웃도, 심지어 우리 자신도 악역이 될 수 있다.

<염력>은 홍보 과정에서 노출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동시에 가족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나 기분 좋은 코미디 또한 녹아 있다. 절대선이나 절대악에서 벗어난 서포터로서 영화를 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드는 두 사람에게 곧 공개될 <염력>에 대한 기대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현실과 강력하게 조우한다”는 의미에서 <염력>이 스스로에게 평생 두세편 있을까 말까 한 작품이라고까지 표현한 김민재가 제목을 빌려 인상적인 소망을 비쳤다. “현실에서는 큰 폭력만큼이나 작은 폭력도 넘쳐나지만, 누군가가 작은 것에 상처받고 마음이 파괴되는 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많이 보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염력>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영화다. ‘염력’이라는 제목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 선택에 대한 어떤 변화도 내포한다고 본다. 관객이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큰 게 아니더라도 각자의 염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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