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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속의 외할머니
2002-04-19

김선주, 박평식, 김의찬의 3인3색 <집으로...>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에서 한 걸음 떨어져 뒷짐만 지고 서 있는다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힘들다. 꺼슬한 손, 굽은 허리, 할머니의 느릿한 몸짓은 때묻은 유년의 문지방 안으로 어느새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 풍경에서 우리는 한때 상우였던 자신을 본다. 김치를 찢어 밥 위에 얹어주는 할머니에게 입을 삐죽이며 앙탈하고, 마른 가슴팍을 끝내 밀쳐내던 못된 아이를. 이 영화를 흐뭇한 추억에 젖어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 넘치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고 함부로 대했던 죄책감과 되갚을 길 없는 쓸쓸함 때문일 것이며, 극장 문을 나와서도 ‘내 할머니·외할머니’께로 향한 길은 각자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결국 응석을 그치는 손주가 밤새 써서 건네는 크레용 편지처럼,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는 이정향 감독의 헌사처럼, 여기 <집으로…>를 본 평론가, 작가들이 보내온 글은 그 꼬불꼬불한 마음의 길을 타박타박 따라가며 쓴 엽서다. 편집자

학식높고 교양있는 내 친구들은 모성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해진다고 한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 위대하다는 모성애를 자신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실을 누군가 알까 두렵고 특히 자식에게 들킬까봐 무섭다는 것이다. 딸 혼사를 준비하다가 딸이 시댁어른을 자신보다 더 존중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팽 토라져 해줄 것도 안 해주고 싶은데, 이게 정상이니라고 묻는 친구도 있다. <데미지>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남자주인공이 맨발에 샌들을 신고 비닐주머니에 먹을 것을 조금 사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펑펑 울었다는 친구는 곁에 있던 딸이 엄마 왜 우는 거야 하는데 정떨어지더라고도 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이 아이를 낳자 손자보는 일이 내 차지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친구도 있다. 벌써 30년 전에 대구에 사시던 내 친정어머니의 친구 한분은 외손자 돌상을 차리다가 서울 친구들이 설악산에 놀러가자고 전화를 하니까 못 간다고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한 뒤, 손에 낀 고무장갑을 착착 벗어 접어놓고 딸들에게 너희들 나도 예순이 넘었으니 나 죽은 셈 쳐라 하고 서울로 도망왔다고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용담을 털어놓았던 기억도 난다.

점심약속도 많고 교외, 수영장, 찜질방행으로 바쁜 내 친구들은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좋은 엄마가 되긴 틀린 건가봐. 우리 어머니나 시어머니들을 봐도 그렇지. 교양있고 배운 어머니들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어딘가 거치적거리잖아. 일자무식에 자식과 손자들이 가면 맨발로 뛰어나오고 고쟁이에서 코묻은 돈을 내주고 자식이라면 그저 엎어지기만 하는 그런 노인네가 부모로서는 최고인 것 같아라고.

<집으로…>는 봄비처럼 소곤소곤 말을 걸듯 다가와 가슴을 적셔주는 영화이다. 나에겐 외갓집도 외할머니도 없었다. 북쪽에 외할머니를 두고 온 친정어머니는 추석날마다 둥글게 뜬 보름달을 가리키며 우리 엄마도 저 달을 보고 있겠지 말씀하시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끝나면 친구들은 외갓집에 다녀왔던 것을 천국에 다녀온 것마냥 자랑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외갓집 풍경의 중심에는 항상 얼굴 가득한 주름살 사이사이에 웃음을 담은 외할머니가 있었다. 참외, 수박, 옥수수를 대청마루나 원두막에 늘어놓고 손자들이 먹는 모양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보름달을 쳐다보며 그려본 내 외할머니의 얼굴은 바로 교과서에 나온 그 얼굴이었다.

딸이자 며느리이자 어머니면서, 외할머니이기도 친할머니이기도 한 친구들을 갖고 있는 나는 <집으로…>를 보며 내 친구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에게 모성애의 제곱의 제곱 같은 사랑을 요구하는 것 같아 지레 겁을 집어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모성애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내 친구들은 이제 좋은 외할머니 콤플렉스에 시달리겠지.

인터넷 사이트 <집으로…> 촬영노트와 180일간의 다큐멘터리는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기록이다. 촌사람들 모두 다 어딘가 있었을 외할머니같고 외삼촌 같았다. 영화찍는 일에 흥분하기도 열없어하기도 하면서 농사일이 바쁜 것을 걱정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늘 이런 더러운 옷을 입고 영화찍냐”고, “서울사는 아들 우세시킬 일 있냐”며 언짢아하는 모습의 주인공 할머니가 더욱 현실감이 있다.

<집으로…>를 보고 내친 김에 <로얄 테넌바움>을 보았다. 할머니이기도 한 엄마 테넌바움의 헝클어진 머리에 언제나 꽂혀 있는 지우개가 달린 노란 연필비녀에 <집으로…> 할머니의 은비녀가 겹친다. 구혼하는 남자에게 18년 동안 남자와 자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쩔 줄 몰라하며 고백하는 엄마 테넌바움이 나에겐 더욱 우리시대의 할머니와 어머니에 가까워보였다.

아흔의 치매 걸린 어머니를 오빠 내외에게 맡기고 바쁘다 바빠하며 1년에 두세번 허겁지겁 찾아보고 돌아오는 나는 문득문득 엄마생각을 하며 눈물짓는다. 아무리 바빠도 갈곳은 다가고 할짓은 다하면서도 정작 엄마에게 가게 되지 않는다. 피와 살이 있는, 욕망과 노여움과 설움이 가득한 어머니와 외할머니들이 바로 곁에서 밖에는 꽃바람이 한창인데 가슴속을 후비는 찬바람에 지금지금거리며 울고 있는데도, 그것을 돌아보기보다 영화관에 가서 ‘액자’ 속의 외할머니를 보며 눈물짓는 것은 나나 내 친구들이나 내 아들 딸들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래 우리 모두는 상우였지 외할머니는 아니었어.

지금은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지만 여전히 투사인 백기완 선생은 언젠가 이렇게 쓰셨다. 고향은 그리움이라고. 그리움이 사람의 고향이라고. 사람들은 모두 그리움 한자락씩을 품고 산다. <집으로…>는 저마다 그리움을 찾아가고 싶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다. 김선주/ <한겨레> 논설위원▶ `액자` 속의 외할머니

▶ 마침내 망막에 남은,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이여!

▶ 상우는 반드시 큰 돈을 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