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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회고전
2002-04-19

동성애, 가톨릭, 맑시즘, 그 분열된 영혼

스쿠터를 타고 로마를 돌아다니며 <나의 일기>를 찍은 좌파 감독 난니 모레티는 문득,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살해된 장소를 찾는다. 그가 평생을 따라다닌 수난의 정점을 마주했던 그곳에는 이제 하얀 햇살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시인이고 영화감독이었으며 고집센 좌파였던 파졸리니가 죽은 그곳에서, 모레티는 20여년 전엔 선명했을 어떤 흔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도 그 흔적은 파졸리니가 살아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미친 듯이 되살아날 것이다.

파졸리니는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보병대위였던 그의 아버지는 오랜 귀족혈통을 자부했지만, 어머니는 농민의 딸에서 학교 교사까지 어렵게 올라간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맏아들은 그중에서도 어머니를 사랑했고, 어머니가 뿌리를 두고 있는 농촌 문화를 경애하게 됐다. 세살 때 이미 소년들의 다리에서 관능을 발견한 파졸리니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됐으나 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그의 동생 귀도는 전쟁을 피하지 못하고 파르티잔 내부 분쟁에 휘말려 죽었으며, 형에게 상처이자 짐으로 남았다. 교사가 된 파졸리니는 공산당에 들어가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시와 산문을 써냈다. 그가 당에서 축출된 직접적인 원인은 10대 소년과의 스캔들 때문이었지만, 파졸리니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하지 않고 부르주아 취향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좌파와 우파 양쪽에 시달린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파졸리니는 1961년 로마에서 내놓은 첫 영화 <걸인>에서부터 이미 눈물이나 수난과 타협하지 않는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바닥을 지탱하는 이들을 관찰했고, 그들에게 성실했으며, 이념을 모르는 사람들이 간직한 혁명의 가능성을 믿었다. 동시에 그는 성(性)을 권력과 결부시켜 격렬한 비난을 받은 감독이기도 했다. 신화의 세계로 거슬러 올라간 <오이디푸스 왕>과 중세 르네상스 시대 문학을 에로티시즘의 축제로 해석한 ‘생의 3부작’ 시리즈 등 과거의 시간을 떠돌 때도, <테오라마>처럼 현대 부르주아를 비아냥거릴 때도, 그는 섹슈얼리티를 놓지 않았다. 그 절정에 해당할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을 발표한 1975년, 결국 그는 해변의 쓰레기장에서 한 청년에게 구타당해 목숨이 끊긴 시체로 발견됐다. 얼굴이 부풀어오르고 손가락을 꺾이거나 잘렸고 심장은 파열됐다.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삶은 우리가 무엇인지 말해준다”고 했던 파졸리니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었지만, 그의 시간은 결코 그 자리에서 정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태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1964

이탈리아 농민에게 종교는 문화의 원천이자 삶의 기둥이다. 그 피를 이어받은 파졸리니 역시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종교를 공격하는 대신 자신이 바라본 예수의 모습을 경외로 창조했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택했지만 정서마저 증발시키지는 않은 <마태복음>은 복음에서 잊혀진 예수의 인간적인 흔적을 발견한다. 서른두살의 섬세하고 심약한 청년이었으나 죽어야할 만큼 위협적인 선동가이기도 했던 예수. 그가 준비한 최후의 만찬과 유다의 배신에 집중하며 간소하게 축약된 이 영화는 파졸리니에게 가톨릭-마르크시스트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테오라마 Teorama 1968

밀라노의 부유한 기업가 가정에 한 매력적인 젊은이가 찾아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방문자는 어머니와 딸, 아들, 하녀를 차례로 유혹해 정복하고 집을 떠나기 며칠 전에는 아버지까지 무너뜨린다. 그가 사라진 뒤, 남겨진 가족들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이 드러나며 홍수 같은 변화에 휩쓸린다. 이 영화는 마르크시즘과 가톨릭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동성애의 금기를 깨뜨려 <살로, 소돔의 120일>과 함께 파졸리니의 가장 악명 높은 영화 중 하나가 됐다. 비극적이면서도 풍자적이고 도발적이고 깊게 감정을 파고들고 몇 마디로 압축할 수 없도록 풍부한 영화. 파졸리니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요소는 그대로 가져온 동명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데카메론 The Decameron 1970

르네상스 시대의 위선을 경쾌하게 풍자하며 재미있는 음담을 풀어놓는 보카치오의 원작 중 10가지 이야기를 골라 느슨하게 연결시킨 영화. 벙어리인 척하면서 수녀원의 모든 수녀들과 관계를 맺는 정원사와 남편이 있는 집안에 애인을 숨기는 유부녀, 부모를 속이고 처녀성을 잃은 처녀의 이야기들이 초점없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따라 펼쳐진다. <데카메론>은 친숙하고 자극적인 원작을 택해, 지식인 관객을 대상으로 했던 파졸리니의 60년대 영화들과 분명한 선을 긋고 출발한 영화였다. 자세한 설명 없이 에피소드를 관객에게 맡기고 낯선 형식을 택한 부분도 있었으나, 부담없는 섹슈얼리티 덕분에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화가 지오토로 출연한 파졸리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메데아 Medea 1970

상상력 풍부한 그리스신화 속에서도 메데아는 유독 눈에 띄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마법사였고, 그 때문에 배신당한 연인이자 남자들이 혐오하는 마녀로 남았다. 파졸리니는 카리스마가 있고 신비한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를 메데아로 기용해 경박한 영웅 제이슨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 죽음을 피해 양부에게 보내진 제이슨은 장성한 뒤 삼촌이 빼앗아간 왕국을 되찾고자 한다. 왕은 그에게 황금 양털을 가져와야 한다고 요구한다. 양털이 있는 곳은 젊은 청년을 도살해 곡식의 양분으로 삼는 왕국. 종교적 권위로 처녀들을 지배하는 메데아는 동생의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양털을 훔치고 제이슨에게 사랑을 바치지만, 그에게 버림받고 복수를 맹세한다.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 1971

토머스 베켓 무덤을 참배하러 가던 순례자들은 긴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돌아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로 한다. 그 이야기들을 엮은 제프리 초서의 원작 <켄터베리 이야기>는 여러 계층 사람들의 경험을 담으면서도 비슷하게 교훈적인 결말을 맺곤 했다. 그러나 파졸리니는 그런 원작을 노골적인 성(性)의 풍속화로 바꿔놓았다. 불손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 초서는 바로 파졸리니 자신. <테오라마>에도 등장하는 에트나 화산에서 지옥 장면을 찍었지만, 다른 70년대 작품에 비해 시각적으로 단조롭다는 평을 받았다.

아라비안나이트 Arabian Nights 1974

<데카메론> <켄터베리 이야기>에 이은 ‘생의 3부작’ 마지막 작품. 당대 사람들은 파졸리니가 아랍세계로 옮겨간 데 의문을 품기도 했으나, 신비한 전설과 이국적인 풍광을 융단처럼 펼치면서도 특유의 직설적이고 기교없는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천하루의 밤 중 열개의 이야기를 뽑은 이 영화는 사랑하는 노예가 납치된 뒤 그녀를 찾아 떠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에로틱한 이야기들을 듣지만 연인을 잊지 못한다. 아랍의 고전 <아라비안 나이트>는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신의 선물로 생각하고 성기를 찬미하는 등 20세기 도덕과 동떨어진 세계를 담고 있다. 동성애자이면서 마르크시스트였던 파졸리니는 그 세계를 향한 매혹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보인다.

살로, 소돔의 120일 Salo, or The 120 Days of Sodom 1975

유럽을 경악에 몰아넣은 영화이자 파졸리니의 유작. 영화 못지않은 스캔들을 일으켰던 사드 후작의 원작소설을 파시스트 치하에 있던 현대 이탈리아로 옮겨 각색했다. 1944년 어느 날 파시스트 네명은 한 저택에 모여 강제로 데려온 10대 소년, 소녀들과 함께 타락에 몰두한다. 각각 지옥의 대합실, 망상의 주기, 똥의 주기, 피의 주기로 이름 붙여진 단락들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관객은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악의 지경에까지 몰리게 된다. 엉긴 나체와 똥을 먹는 기괴한 쾌락, 항문에 대한 집착, 고문과 처형을 참혹하게 담은 이 영화는 가장 충격적인 형태로 파시즘에 반기를 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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