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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박광수 & 뉴 박광수 프로젝트 <방아쇠>
2002-04-20

3년간 젊은이들과 소통을 고민했다

박광수 감독이 돌아왔다. 비평적 양론 속에 대중과의 만남엔 실패했던 <이재수의 난> 이후 3년. 5월에 크랭크인할 박 감독의 신작 <방아쇠>는 얼핏 지극히 박광수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표현방식과 소재에서 모두 동세대 젊은 관객과의 전면적 소통을 기도하는, 중대한 변화의 모색이다. <방아쇠>은 어떤 영화일까, 또 3년간 익혀진 박 감독의 구상은 무엇일까. 편집자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이 개봉한 1999년 6월26일엔 <스타워즈>가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돌아와 함께 극장에 걸렸다. 두 영화는 모든 면에서 상극이었고, <씨네21>은 그리고 많은 매체들은 두 영화가 맞붙는다고 썼다. 그걸 굳이 시합으로 부른다면 시합은 <스타워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한 차이보다 더 컸다.

묘한 건, 지나고나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데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동안엔 팽팽한 승부가 벌어질 수도 있을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었다. 이건 그냥 단순한 착시효과였을까. 관성적인 민족주의가 작용한 탓이었을까. 꼭 그렇진 않다. 기획시대가 제작한 <이재수의 난>은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했고, 프랑스 자본과 스탭도 참여했으며, 무엇보다 심은하, 이정재라는 빛나는 투톱이 포진하고 있었다. 제작비 32억은 그때까지 한국영화 제작비로는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

<이재수의 난> - 분열적인, 너무도 개인적인말하자면 당시 한국영화가 가질 수 있는 거의 최상의 카드를 <이재수의 난>은 쥐고 있는 듯 보였다. 98년 11월13일에 열린 제작발표회 자리는 쉽게 오가기 힘든 제주도의 분지인데도 흡사 충무로를 옮겨온 듯 많은 영화인들로 붐볐다. 1996년에 만든 전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무거운 주제의식과 냉정한 화법이 무색하게 뜨거운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흥행감독이기는커녕 가장 고집센 사회파 리얼리스트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순간은 뭉클했고 <이재수의 난>은 그걸 재현하거나 혹시 더 큰 감동의 순간을 낳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변해 있었다. 역사는 어느새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 포섭됐고, 한국 현대사의 환부를 자기의 상처로 받아들인 가장 당당한 영화적 목록이었던 박광수의 필모그래피는 동시대 관객과 마주하기엔 너무 근엄하고 엄숙해져 있었다(어쩌면 3년 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쏟아진 뜨거운 갈채는 새 시대 이행을 위한 마지막 청산 제의였는지도 모른다. 전태일을 연기한 홍경인의 코믹 청춘스타로의 변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박광수 스스로가 변했다. 아니, 변화를 예감하고 그 비관적 예감을 영화 속에 심어버렸다. <이재수의 난>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음울하고 초월적인 시선이 역사적 사건과 민중 영웅을 압도해버린 기이한 이미지의 영화였다. 이건 불모의 역사를 재현한 게 아니라, 역사의 불모성을 독백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광수 감독은 최상의 산업적 후원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개인적이며 분열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이건 다시 충무로 시스템에서 일하지 않아도 좋다는 선언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 시기 전후에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디지털영화에 관한 관심을 종종 말했고 얼마간 실험하기도 했다. 충무로는 이제 이 고집불통의 사회파 작가를 더이상 감당하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이재수의 난> 제작에 쏟아진 막대한 물량과 화려한 진용은 그래서 이혼을 결심한 부부의 마지막 포옹처럼 보였다. 개봉 직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인터뷰해 108개의 질문을 던지고 총점검한 다음 다시 출발하겠다.”

<방아쇠> - 비무장지대의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가 돌아왔다. 3년 만이다. 그는 늘 2, 3년에 한편씩 만들어왔으니, 3년 만이라면 호들갑떨 만큼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90년대의 3년과 지난 3년은 다르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3년 만에 평균제작비는 제작비는 두배 가까이 뛰었고 신의 손만이 닿을 수 있었던 서울 100만이라는 고지는 1년에도 몇편씩 건드릴 수 있는 만만한 수치로 바뀌었다. 영화사들은 금융자본과 결합하면서 기업화했고 영화계는 가파른 속도로 산업화했다. 당연히 이윤논리는 훨씬 강력해졌다.

물론 충무로 제작자들은 감독의 미학적 욕망에 대해서 어느 나라 제작자보다 훨씬 우호적이지만, 그런 호의에도 일정한 패턴이 작용한다. 그 패턴은 주로 국제영화제와 아트하우스 중심으로 형성되는 서구의 세련된 관객과 소통할 만한 모던한 영화에 한정된다. 여기에 박광수 감독의 사회적 리얼리즘까지 포함될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다. 이 의문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풀리겠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그의 달라진 면모다.

23억 정도가 소요될 박광수의 신작 <방아쇠>는 여전히 박광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함께 들어 있다. 무대는 비무장지대이며, 주인공은 사병이다. 원치 않더라도 이 세팅으로는 거대한 현대사의 상처와의 대면이라는 부담을 피해갈 수 없다. 아니, 방법이 있긴 하다. 미스터리와 멜로를 혼용한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장르의 얼개로 이야기를 구성하면 역사의 무게와 직면하는 부담을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시나리오상으로 보건대 <방아쇠>는 그런 길을 택하고 있지 않다. 동료 사병들간의 갈등과 환상 속의 여인에 빠진 주인공의 내면적 균열이 이야기의 두축을 이루는 비장르 드라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시나리오만으로 많은 걸 판단하는 건 무리지만, <방아쇠>는 박광수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례적인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 상처의 우회적 표현이라 해도 <방아쇠>에는 멜로코드와 판타지가 있다. 주인공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극히 관능적이며, 그것이 주인공의 육체적, 정신적 결핍을 끝없이 자극한다. <방아쇠>는 극히 주관적인 판타지, 그것도 에로틱한 판타지가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박광수의 첫 영화다.

무엇보다 <방아쇠>는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시작되고 끝맺는 영화다. 다른 영화에선 당연해보이지만, 박광수 영화에서라면 이건 아주 흥미로운 변화다. <베를린 리포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에서 박광수는 주인공의 육체성과 이미지가 스크린을 압도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반드시 관찰자로서의 화자를 경유케 하는 간접화법을 썼다. 격렬한 영웅담이 차갑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화법 탓이다. <이재수의 난>에선 관찰자마저 무화시켜버리는 초월적 시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방아쇠>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며 나의 환상과 욕망과 갈증이 스크린을 채운다. <방아쇠>는 ‘비무장지대의 <그들도 우리처럼>’ 같아 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주관적인 색채가 강하다.

이 시도는 함정이 있다. 주관적 욕망에 치중하면 상황의 엄혹함이 탈역사화되거나 구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이편이 상업적으로는 안전하다). 주관적 욕망과 파멸을 역사적 소산의 차원에 가둔다면 세련된 계몽으로 빠질지 모른다. 시나리오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방아쇠>는 적어도 후자로 빠질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 갈등의 모티브가 개인적이며 성적 갈등에서 빚어지고, 여인의 정체는 끝내 아스라한 이미지로만 남는다. 롱테이크를 끈질기게 고수해온 박 감독이 이 영화에선 500컷 이상을 쓰겠다는 것도 명백한 변화의 조짐. “다른 영화들이 느려터진 걸 내가 보기 힘들더라”는 게 바뀐 선택의 이유다. 그는 “동시대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지난 3년동안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박광수 감독은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의무감과 강박증을 벗다그의 변화는 실은 재작년에 디지털단편 <빤스 벗고 덤벼라>를 만들었을 때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에로비디오 여배우가 진지한 영화에 출연한다고 기대에 부풀었다가, 여기서도 리얼한 연기를 위해 ‘빤스’를 벗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이 단편을 박 감독이 연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잘 믿겨지지 않는다. 더 놀라운 건 오프닝 크레디트에서부터 거리낌없이 야하고 경박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6대의 카메라를 쉴새없이 돌려 극의 안팎의 경계를 허문 분방한 상상력.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가벼운 마음으로 실험하기 위한 시도라 해도, 그가 새로운 소재와 표현을 찾아나섰다는 건 분명해보였다. 지난해엔 <아닌 밤중에>라는 귀신이 소재인 단편도 찍었다. 두 단편 체험이 정적인 자신의 화면스타일을 동적으로 바뀌놓았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그래도 <보일러>의 이야기는 너무나 박광수적이지 않은가.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재수의 난>을 찍기 오래 전부터 구상했다는 <보일러>는 변화의 와중에서도 그의 변신 시도가 탈역사적 유희로 흐르진 않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동시대인의 삶에 깃든 역사성은 박광수의 변함없는 영화적 주제다. 역사적 시야를 잃지 않으면서도 주관적 욕망의 동학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포착하는 것. 그게 달라진 박광수의 영화적 행로가 될 것 같다.

박광수 감독은 맏형 콤플렉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필요한 일인데 다른 사람이 안 한다면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증 같은 것. 혹시 그렇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하하, 그런 거 있다. 이런 영화를 아무도 안 만드니, 나 혼자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다. 이광모 감독이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었을 때, 그래서 신났다. 야, 이제 나는 그런 거 안 해도 되겠구나 싶어서(웃음).”

<방아쇠>는 박광수 감독이 그의 90년대를 이끈 지식인적 책임감의 소산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길어올려진 이야기를 낮고 다감한 목소리로 들려줄, 박광수 필모그래피 2기의 첫 작품이 될 것 같다. 뉴 박광수 프로젝트 <방아쇠>는 지난주에 오디션을 마쳤고, 5월에 촬영에 들어간다.

글 허문영 moon8@hani.co.kr·사진 오계옥

<방아쇠>는 이런 이야기나, 환상의 여인, 그리고 비무장지대

나(주일병)는 남한과 북한의 묵인 속에 비무장지대 안에 주둔하고 있는 비밀부대 즉 GP에 근무하는 사병이다. 어느 날 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하는 와중에 매혹적인 여인의 형체를 본다. 여인에 대한 환상은 점점 깊어져가 그녀의 육체까지 느끼게 된다. 그런 와중에, 동성애자 성향이 있는 양 일병, 가학적인 구 병장 사이에 낀 나는 점점 괴로운 처지에 놓인다. 뜻하지 않은 큰 사고가 터진 다음, 주 일병은 철책선과 함께 그 환상의 여인과도 이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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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