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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만난 감독들③] <파도치는 땅> 임태규 감독,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8-05-23

지난해 <폭력의 씨앗>(2017)으로 전주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및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임태규 감독이 1년 만에 차기작을 들고 전주를 찾았다. <파도치는 땅>은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였던 아버지를 둔 아들 문성의 이야기다. 전작보다 구체화된 ‘폭력’을 그리면서 전작에 없던 희망적인 시선을 작품에 녹여낸 임태규 감독을 영화제 기간에 만났다.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

=지난해 초 <폭력의 씨앗>을 편집하고 있던 당시 <한겨레21>에 실린 납북 어부에 대한 특집 기사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다. 한 피해자가 법원 앞에서 울먹거리며 찍힌 사진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지더라. 그리고 그분뿐만 아니라 그분의 가족의 인생이 무척 궁금해졌다. 아마 그 아들은 40~50대 즈음의 중년일테고, 그 사람에게도 자식이 있을 텐데, 삼대의 마지막 자식까지도 온전히 국가폭력의 피해가 전이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아들 도진과 사귀는 윤아가 타로 카페에서 일하고 이미 낳은 자식이 있다는 설정이나 아버지 광덕을 보살피는 젊은 여성 은혜를 두고 이상한 상황이라며 문성이 펄펄 뛰는 장면은 사회의 ‘편견’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찍고 싶었던 장면이 바로 마지막 신이다. 삼대에 걸쳐서 아픔을 겪었는데 그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혹은 주인공의 선택에 대해 물음표로 극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에 어린이가 등장해야 했고, 그 아이가 아들이 만나는 애인의 자식이라는 설정을 만든 것이다. 또한 문성이 의심하는 은혜는 아이를 잃은 과거가 있는데, 이러한 미스터리한 컨셉들이 구조적으로 의미를 연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펼치게 해줄지는 우리의 몫이다. 어떤 피해를 안겨주기보다는 그 아이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확실히 전작에 비해 희망적으로 마무리됐다.

=전작에 대해 갖고 있던 몇 가지 아쉬움 중 하나가 결말이 너무 비관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전격적으로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은 하고 싶지 않았고,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었다. 친구들 자식을 보면, 나도 이렇게 살기가 힘든데 얘들도 나처럼 살면 어떡하지 걱정이 된다. (웃음) 세월호 때문에 목포를 몇번 방문했는데, 세월호가 거치되어 있는 장소에서 한 어린아이가 배를 바라보고 있더라. 저게 무엇인지도 잘 모를 만큼 어린 아이가. 저 아이가 저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런 세상을 물려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배를 만드는 장면을 넣은 것도, 다음 세대가 만들어갈 세상은 좀더 희망적일 수 있다는 시각을 의도한 거다.

-문성의 직업을 ‘학원 원장’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사실 이 영화에는 인물의 배경 스토리가 훨씬 많았다. 개발 단계부터 문성이 연좌제의 피해를 실질적으로 받았다는 설정을 염두에 두었다. 고등학생 때쯤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상경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 교육대학에 진학했는데, 연좌제 때문에 임용고시에서 자꾸 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학원을 하고 있다고 설정했다. 때문에 자신이 교육대학을 나왔음에도 선생님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학원 사업으로 성공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다보면 시나리오가 방대해질 것 같아서 걷어냈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 군산이다.

=원래 준비하던 다른 시나리오가 군산이 배경이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급하게 준비하게 됐는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군산을 자주 찾았기 때문에 그나마 잘 아는 공간이 군산이었다. 금강의 하류와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째보선창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다. 예전에는 강과 바다를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된 곳이다. 지금은 군산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가 됐는데, 전주의 객리단길 같은 곳에서 한 블록만 지나면 옛날 공간이 나온다. 그런 게 옛것과 현대가 혼재되어 있는 게 재미있었다. 옛 시절이 느껴지는 것들이 잔존하고 있는 그곳을 배경으로 삼으면 한때는 호황이었던 곳에 여전히 살고 있는 피해자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등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 초 군산시에서 째보선창 같은 곳을 관광특구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런 뉴스도 영화에 영향을 줬다.

-세월호라든지 간첩조작사건을 영화에 노골적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 그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비슷한 이야기로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굉장히 고민했던 부분이다. 이 정도로 슬픈 사연은 상징보다는 직접 이야기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또한 세월호 참사가 명백한 국가폭력이라는 것을 마지막에 분명하게 주장하고 싶었다. 납북 어부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이 마치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마음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라는 측면에서 무엇이 다른가. 그것들은 명백하게 같은 것이다.

-<폭력의 씨앗>은 핸드헬드 촬영이 많았다면, <파도치는 땅>은 카메라가 아주 오랜 시간 고정되어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파도치는 땅>은 풍경이 중요한 영화였고,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물들과 좀 떨어져 있는, 거리감이 있는 카메라를 사용해야 했다. 또한 굉장히 야심차게 준비한(웃음) 세번의 패닝과 두번의 돌리숏이 있는데, 거기에 힘이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다가,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순간에 음악과 함께 독특한 카메라워크가 등장해야 했다.

-차기작은.

=스릴러 장르 영화를 찍어보고픈 욕망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 정리하고 있는 아이템이라 공개하기는 좀 어렵다.

<파도치는 땅>은 어떤 영화?

여기저기 돈을 구하기 위해 손을 벌리고 다니는 문성(박정학)에게는 간첩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아버지 광덕(전영운)이 있다. 재심 결과 뒤늦게 광덕이 무죄를 인정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문성은 오랜만에 군산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는 낯선 젊은 여자 은혜(이태경)가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다. 문성은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화를 내며 은혜의 존재를 경계한다. 한편 문성의 아들 도진(맹세창)은 타로 카페에서 일하며 애까지 딸린 윤아(양조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2018년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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