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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에서 만난 사람들④] <오컬트 볼셰비즘> 다카하시 히로시 감독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8-07-25

극장에서 심령현상을 경험하시라

<여우령>(1996), <>(1998) 시리즈의 각본을 쓰며 세기말 일본 공포영화의 전성기를 책임졌던 작가 다카하시 히로시가 BIFAN을 두 번째 방문했다. 이번엔 심사위원 자격으로 방문했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공포 철학을 전파하는 세 번째 장편 연출작 <오컬트 볼셰비즘>을 한 차례 특별상영으로 소개하고 마스터클래스도 열었다. 그가 생각하는 공포에 관해 물었다.

-두 번째 장편 연출작 <공포>(2010)가 15회 BIFAN ‘J-호러 무서운 이야기 최종장’ 특별전에 초청된 이후 이번이 두 번째 초청이다.

=신작 <오컬트 볼셰비즘>의 형식이 워낙 낯설어서 한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거의 배우들의 대사로만 이뤄진 영화다. 사람들이 한밤중에 모여 괴담을 이야기하는 ‘햐쿠모노가타리’라는 문화에서 착안해 그와 유사한 형태를 영화에 담으려고 했다.

-<오컬트 볼셰비즘>의 원제인 ‘靈的ボリシェヴィキ’(영적인 볼셰비키)라는 제목이 독특하다. 이번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90년대부터 갖고 있었던 기획이다. 그 당시 옴진리교 사건이 발생했고 어느 오컬트 연구가가 이 사건을 가리켜 “영적인 볼셰비키”라는 말을 썼다. 나도 그 사건에 그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지금처럼 연극무대에서 이야기하듯 진행되는 영화가 아니라 개별 에피소드를 영화화려고 했다. 역시 제작비 때문에 일본에서도 무산됐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저예산 독립영화로 만들게 됐다. 전체 예산 규모가 150만엔(약 1500만원)이었다. 극단적인 저예산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이번 영화는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사건이 벌어지는,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지만 카메라를 마냥 고정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홍보 문구가 “극장에서 경험하는 심령현상 같은 영화”였다. 체험하는 영화로서의 본질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연극적인 상상력을 담아보고자 했다. 물론 연극을 영화화하는 것과는 달라야 했다. 스크린을 체험하는 영화처럼 구상했다, 가 맞는 표현이겠다. 실제로는 에피소드별로 이야기가 담긴 재현 장면을 찍으려다가 예산 문제 때문에 삭제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유아 납치살해범이 처형될 때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 교도관, 어릴 때 유괴 경험이 있었으나 기억이 사라져버린 ‘가미카쿠시’를 경험한 여성 유키코,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안도 등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폐쇄된 공간에서 실험하듯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어떻게 구상했나.

=꿈에서 어렴풋이 봤던 장면, 그리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실화 등을 바탕으로 참고했다. 내가 평소 무섭다고 생각했던 ‘의사 코난 도일의 가짜 요정 사진’ 같은 역사적으로 화제가 된 오컬트 이야기도 소재로 삼았다. <>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영매들을 취재한 적 있는데 실제로 유령은 2D 그림처럼 평면의 이미지여서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 사진의 분위기가 그랬다.

-극중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볼셰비키의 궁극적인 형태다”라는 대사도 나오듯 집단으로 모여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 공포영화 소재와 정치를 연결한 이유는 뭔가.

=1970년대 러시아에 좌익 혁명을 꿈꿨던 사람들이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게 됐을 때, 실제로 영적인 혁명을 이뤄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 영적 볼셰비키라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실험체로 사용하거나 인간을 희생시킨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세웠던 하나의 원칙은 부정한 것을 영화에 담자는 것이었다. 스탈린이 자행했던 학살에 대한 어떤 평가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여우령>이나 <>을 찍을 당시의 현장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과 내가 늘 싸우고 있었다. (웃음) 주로 공포의 표현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여우령>을 찍을 때 나는 귀신의 얼굴을 안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그는 스튜디오 출신 감독이라 그런지 그것은 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에 보여주지만 나는 그 장면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을 찍을 때는 아예 귀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로 정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감독이 이번에는 얼굴이 아니라 눈의 흰자위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기에 ‘이 사람 또 예전 버릇 나오는구나’ 싶어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얼굴이 보여도 괜찮다”면서 배우의 눈썹을 밀어버리고 찍은 거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 아무튼 현장에서 그와 나는 서로 멱살까지 잡을 정도로 엄청 싸웠다. 이치세 다카시게 프로듀서가 우리 사이를 늘 뜯어말렸다.

-한때 너도나도 일본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나 제임스 완 감독의 작품 등 새로운 공포영화의 스타일이 자리매김한 상태다. <컨저링>(2013)으로 대표되는 2010년대 공포영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제임스 완 감독은 세기말의 공포영화 테크닉을 집대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포의 개념과는 좀 다른 방향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나는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더 헌팅>(1963)이나 잭 클레이턴 감독의 <이노센트>(1961) 같은 영화들이 완전한 심령의 공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공포의 개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눈으로 봐야만 놀라게 되는 공포가 아니라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을 때 갖게 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 많은 공포심을 자극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중적인 공포란 결국 무언가를 봤을 때 갖는 무서움에 가까울 거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포란 좀더 마니악한 공포인 것 같다.

-차기작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현재 3편의 단편영화를 구상 중인데 제작은 이번 영화와 비슷한 방식과 규모로 이뤄질 것 같다. 언제 찍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내게는 단편영화가 굉장히 중요한 매체다. 단편소설 같은 영화를 지양하면서 장편의 요소를 집약하는 단편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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