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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차버린 스파이>를 씹어먹는 케이트 매키넌은 누구?
김소미 2018-08-23

혼자서 다 하기 있나요?

뛰는 클리셰 위에 나는 케이트 매키넌 있다. 매키넌이 연기하는 모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영화 속 대사와 마찬가지로 ‘과한’(too much) 캐릭터다. 여러 영역에서 적절히 과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스파이로서 치명적인 지점 중에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국제전화를 걸어 부모에게 생존 보고를 하는 극진한 효심도 있다. 여하간 매키넌은 일련의 전형들과 기싸움을 해서 영화 내내 이기고야 만다. 영국 비밀정보부에 붙잡혀 취조실에 갇힌 장면에서, 드라마틱한 태도로 농담을 늘어놓는 모건과 주변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매키넌의 애드리브에 긴장한 생방송 크루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은 심정이 된다. 달리 말하면, 역사가 유구한 가상의 약속들 사이로 케이트 매키넌만 현실 세계에 한뼘 발을 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나를 차버린 스파이>가 스파이물인 척 폼을 재다가 어느새 B급 코미디에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케이트 매키넌의 어쩔 수 없는 존재감 탓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이하 <SNL>)의 주역 중 하나이자 <고스트버스터즈>(2016)를 곧잘 소화해낸 개성파 배우 정도로 그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분기점이 되어줄지 모른다. 수잔나 포겔 감독의 첫 영화 <라이프 파트너스>(2014)의 조연을 따내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한 케이트 매키넌이기에 이번 영화에서의 존재감은 유의미한 비교를 이룬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뼛속부터 건조하고 쿨한 농담을 ‘막’ 내뱉는 재능으로 <SNL>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모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쇼 진행자 엘런 드제너러스와 독일의 메르켈 총리, 힐러리 클린턴 등이 특히 유명하다(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SNL>에서 트럼프와 힐러리의 설전 장면을 연출한 것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출연해 매키넌과 독대하는 살벌한 그림을 만들기도 했다).

<나를 차버린 스파이>를 보고 나면 “매키넌은 프란 레보비츠(특유의 호쾌한 유머로 이름을 알린 미국 작가이자 연설가)로 빙의한 베티 데이비스다”(<버라이어티>)라는 과장 섞인 표현에 은근히 동의하게 된다. 매키넌의 이미지 또한 고전적인 구석이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어두운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서커스 무대를 누비는 모건에게서 어렵지 않게 1940~50년대 배우들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데뷔 초부터 배우 엘리자베스 뱅크스와 닮은 외모로 언급되곤 했지만, 뱅크스가 한결 도시적인 이미지라면 매키넌은 <선셋대로>(1950)의 글로리아 스완슨 같은 카리스마형에 가깝다. 한편 공개적으로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매키넌은 <SNL>에서 <원더우먼>의 갤 가돗과 키스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된 적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나를 차버린 스파이>에서는 밀라 쿠니스와 보다 건전한 우정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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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누리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