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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①] 류이치 사카모토,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8-10-17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원하는 걸 만들어간다"

개막식에서의 피아노 연주,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의 상영과 전시 그리고 핸드프린팅까지. 세계적인 음악감독 류이치 사카모토가 올해 부산영화제를 찾은 이유는 이토록 많다. “지난해엔 <남한산성>(2017)의 영화음악 작업을 했고, 올봄 서울에선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 전시를 했고, 이번에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 월드 프리미어 상영에 맞춰 영화제에 참석하게 됐다. 최근 한국과 관련된 일들을 할 기회가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기쁘고 즐겁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최근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며 “반갑습니다” 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아시아영화 발전에 기여한 영화인들에게 수여하는 부산영화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 음악상(<마지막 황제>(1987)) 등 지금까지 여러 상을 받았지만, 그것은 모두 음악 작업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은 ‘아시아’ 그리고 ‘영화인’ 두 단어에 담긴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국적 혹은 국가의 차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해왔는데, 아시아에서 아시아인으로서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하다. 또 영화음악감독인 내게 상을 줬다는 것은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을 중요하게 평가했다는 것인데, 영화음악의 의미를 알아줘서 기쁘다.

-시즈노 고분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엔 어떻게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됐나. 보통 영화음악 작업을 의뢰받을 때 어떤 기준으로 작품 참여를 결정하는지도 궁금하다.

=영화의 관련 자료를 받고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한·중·일 공동 제작 영화에 참여한다는 것도 의미 있었고, 데즈카 프로덕션이 제작한다는 점도 결정하는 데 큰 요소가 됐다. 데즈카 오사무의 팬이지만 감독님과는 잘 알지 못한다. 대신 데즈카 오사무 감독의 자녀들과 인연이 있어 괜히 데즈카 프로덕션에 대한 친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즈노 고분 감독이나 한국의 강상욱 프로듀서 등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열정을 보고, 나도 음악감독으로 함께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 이후 30년 만의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이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작품들, <아키라>(1988)나 <공각기동대>(1995),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은 꽤 봤지만 애니메이션 자체에 크게 흥미를 가지고 있진 않다.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거의 처음 같은 느낌이었다. 감독에 따라 음악 작업의 방식이 다를 텐데, 시즈노 고분 감독의 요구는 캐릭터별로 테마음악을 만들고 그 테마음악을 장면마다 변주해달라는 거였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이게 일반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신선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실사영화의 음악을 작업할 때와는 그 방식이 달랐나.

=많이 달랐다. 실사영화의 경우 아무리 미리 계산을 해도 영화를 만들다보면 우연이 생긴다.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생기고 생각지 못한 장면이 들어간다. 그래서 실사영화는 100% 사람이 컨트롤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100% 컨트롤할 수 있다.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는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대중적인 영화다. 곡 작업을 할 때도 영화의 보편적 정서를 고려했을 것 같다.

=확실히 보편적인 음악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타협하지 않고 나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중요했다. 내게 이 음악 작업을 의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원했을 테고, 동시에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듣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원했을 것이다. 그런 점을 모두 충족시키려니 개인적으로는 허들이 높은 작업처럼 느껴졌다. 평소엔 이런 방식의 작업은 잘 맡지 않는다. 이번이 예외였다. (웃음)

-다양한 것들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는 것으로 안다.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의 음악 작업에도 영감을 준 것들이 있을 텐데.

=실사영화는 영상 자체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실사영화 작업을 할 때 가능하면 영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음악을 만들려 한다. 음악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초창기에는 음악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음악이 영화에 방해가 되든 안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웃음) 반면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상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 상상을 많이 해야 했다. 시나리오도 여러번 읽고, 미야니시 다쓰야의 원작 그림책인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도 여러권 쌓아놓고 펼쳐보면서 작업했다.

-영화제 기간에 전시 <IS YOUR TIME–BUSAN VERSION>도 열린다.

=영화제 개막 한달쯤 전에 부산영화제에서 이번 기회에 전시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실현이 되면 멋진 일이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전시가 실현됐다. 앞서 서울에서 열린 전시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 때도 준비 기간이 6개월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이 정도 규모의 전시를 6개월 안에 하는 건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멋지게 전시 준비를 끝마쳤다. 한국인들의 추진력에 감탄했고,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영화제 개막식 밤에 있었던 행사 소식이 다음날 아침 바로 <씨네21> 데일리로 나오는 걸 보고도 감탄했다. (웃음) 어쨌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부산에서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쁘다. 듣자하니 부산이 고리원자력발전소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 원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쁘게 생각한다.

-올해로 음악인생 40주년을 맞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적 실험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작업들을 계획하고 있나.

=젊은 시절에 생각한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피카소와도 같은 삶의 방식이었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삶. 지금은 자유가 주어져도 그렇게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웃음)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 나이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경력이나 작업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원하는 걸 만들 수 있는 삶이라면 행복하고 좋을 것 같다. 지난해 발표한 앨범 《async》는 음악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만족하는 앨범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거의 100% 음악에만 집중했다.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 무언가를 만들 땐 여러 고민을 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렇게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async》 작업을 할 때는 그러지 않았다. 《async》 작업의 소중한 경험을 발전시키고 싶다. 무대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일반적 의미의 오페라가 아니라, 빛이 있고 소리가 있고 퍼포먼스가 있는, 복합적인 것들이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현대적인 오페라 작업을 해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async》의 발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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