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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전주데일리]프로그래머 서동진 인터뷰
2002-04-26

\"주목! 남미영화에 영화의 미래가 있다\"

올해 행사의 특징을 꼽아본다면, 또 관객들이 가장 눈여겨 봤으면 하는 부분은.

지금까지 두차례 행사를 치른 만큼 이번에는 영화제의 틀을 다져야 할 시점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준비를 시작했다. 주요 국제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영화들을 모은다든가,이미 인지도가 높아져서 이론이 없을 것으로 간주되는 작가에게 의존하든지 하는 편의적인 프로그램 방식은 피하려 했다.전주영화제에 걸맞는 과감한 선택이나 발견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나서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프로그램 방식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든다. 어쨌든 모아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정리한 결과는 이렇다.

올해 영화 지형의 변화 경향을 찾아보면 남미와 프랑스 영화다. 이렇다할 붐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영화제를 다니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영화가 주로 남미영화였다.90년대 남미에 민주화의 바람이 분 뒤, 독재시절에 외국으로 나갔던 감독들이 다시 돌아오고 대학내의 영화 서클 활동 같은 게 활성화되면서 잠재력을 쌓아갔던 것 같다. 그게 이제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아직 남미영화의 정체성이 이런 거다 라고 정의내리기는 힘들지만,미래의 영화를 이끌어갈 잠재력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지금 온 5편의 남미영화를 눈여겨 봐달라.

프랑스어권 영화들도 마찬가지다.최근 프랑스 영화 특징 하나가 소장 감독들이 만든 노동영화의 대두다.거장들이 이전부터 보여온 작가주의의 반복을 보여주고 있다면, 로랑 캉테,알랭 기로디,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조용한 마을>의 로베르 게디기엥 같은 소장 감독들이 노동자 계급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이는 사적인 세계로의 퇴행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영화들이 만들어진다는 전조가 아닌가. 이들의 영화는 전통적인 리얼리즘도 아니고,모더니즘도 아니면서 그들만의 새로움을 지니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안양의 고아> <물고기와 코끼리> <천진두> 등 주목받던 중국영화 세편의 상영이 취소됐다.

<안양의 고아>와 <물고기와 코끼리>는 중국 심의기구인 전영국 쪽에서 심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상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 만약 상영을 강행할 경우 다른 중국영화 출품작 7편의 상영을 어렵게 하겠다는 뜻도 전해왔다. 영화제 직전인 19일에는 갑자기 <천진두>에 대해서도 상영불가 방침을 통보해왔다. 이 영화는 심의도 받았고 중국에서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다. 그런데 작품 내용 가운데 일부다처제가 중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를 삼았다. 우리쪽에서도 ‘중국 내에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기를 소망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중국쪽에 전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논의 중이다. 중국영화와 관련해 이번에 오는 <농부와 춤을>의 우웬광 등 디지털 다큐멘타리 영화감독 6명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지하전영 사람들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상업영화가 호조를 띠고 있다. 그래서 흥행을 쫓는 영화와, 전통적인 5, 6세대 감독의 영화, 그리고 이 둘로부터 벗어나려는 젊은 세대들의 영화라는 세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우웬광 등이 마지막에 속한다.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겪었고, 반골기질이 강하다. 상업영화를 접고 내키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한 이들이다. 이번에 초청된 이들의 영화에는 중국 여학생들의 매춘 같은 사회문제가 다뤄진다. 다행히도 디지털영화에 대해서는 심의제도가 없다고 한다.

크리스틴 버천 회고전은 무척 신선하다. 마련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90년대 이후 미국 독립영화의 연대기가 상당히 회자됐음에도 실제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게 영화제의 몫이라고 판단했다. 거기에 더해 이번에는 작가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한국 독립영화도 성숙한 시점이고, 장편이 나와야 할 때가 됐다. 독립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관념적인 논의를 넘어서자는 차원에서, 그러기 위한 하나의 자료로 프로듀서인 크리스틴 버천을 중심에 놓게 됐다. 그러나 버천은 토드 헤인즈의 신작 준비 등 맡고 있는 게 워낙 많은 사람이다. 또 뉴욕과 서울이 좀 먼가. 처음에 여러차례 거절당했다.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하고, 마지막에는 생떼를 쓰다시피해서 이 행사를 마련했다. 아쉬운 건 지난해 미국 독립영화 가운데 베스트로 꼽히는 토드 필드의 <인 더 베드룸>과 로즈 트로체(<고 피쉬>의 감독)의 신작 <세이프티 오브 오브젝츠> 등 두편을 적극적으로 섭외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를 원하는 바람에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영화’ 부문에 영미권 작품이 없다.

미국영화는 배급사의 마케팅 논리에 너무 좌우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우선적으로 선호한다. 그쪽이 보기에 우리는 아직 신생영화제인 모양이다. 반면 유럽쪽은 자기들끼리의 네트웍이 있는 것 같다. 입소문이 한번 나면 금방 돈다. 유럽쪽 배급사는 전주영화제를 호의적으로 보는 것 같다. 영국 독립영화들은 눈여겨 봤다. 레인댄스영화제의 주요 작품을 일별해 봤는데 특별히 화제가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몇개 골랐더니 칸영화제 쪽에서 제의가 와 출품이 어렵다고 했다. 마이크 피기스의 <호텔>은 ‘디지털의 개입’ 부문으로 가져왔다.

극장 사정을 개선했다는데.

주요 행사장을 전북대 문화관에서 올해 새로 지어진 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으로 바꿨다. 2200석의 대형 극장에 시설도 좋다. 큰 행사 치르기에 문제가 없다. 고사동 쪽은 몇몇 극장이 개보수를 하고 있지만 아직 크게 개선되지 못한 상태다. 상영작 중에 오래된 필름이 많은데 그쪽의 영사기 시설로 잘 소화가 될지 걱정이다. 또 이번에 온 파졸리니 특별전의 프린트가 너무 오래 된 것이어서 영사기에 걸고 돌리다가 필름이 끊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파졸리니 재단 쪽에서 온전한 프린트는 절대로 해외에 내보내지 않고, 이처럼 낡은 걸 보낸다. 지금 필름 중 특히 낡은 곳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상영중에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임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