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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전주데일리] 사카모토 준지 감독 인터뷰
2002-04-26

\"제작 전 내가 살해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카모토 준지(44)는 <멍텅구리-상처입은 천사> <의리없는 전쟁> 등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일본의 중견 감독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을 약속했다가 영화 촬영일정 때문에 방한하지 못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4월 22일 그가 서울에 왔을 때 인터뷰한 내용과, 2월16일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의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케이티>를 만들게 된 배경은.

요즘 들어 만들어진 한·일 합작영화들은 주로 러브스토리다. 나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기획단계에서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더니 차가운 반응 일색이었다. 이웃나라의 대통령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봤자 일본 관객이 공유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위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일수록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내 열망은 뜨거워졌다.

사실과 픽션의 비율은.

사실과 픽션의 비율이 몇 대 몇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도미타 소령과 미시마 유키오의 이야기는 픽션이다.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KCIA) 요원을 도왔던 자위대 장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DJ납치사건 3년 전인 70년, 미시마 유키오가 자살했던 육상자위대의 방 앞에 한 장교가 국화꽃을 가져다 놓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하나의 인물이라는 것은 나의 상상이다. 그 외에 KCIA의 김차운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던 것 등은 이들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없었나.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의 발언을 들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도 국회 차원의 조사가 있었지만 자위대원의 증언은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가설만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미행과 도청 등 위험한 일도 많았다. 일본에선 제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카모토 준지라는 사람은 살해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일본에선 정치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케이티>는 본격적인 정치영화를 지향한 것인가.

이 영화가 정치영화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겠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터부를 깨고 싶었다. 천황제나 자위대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려 했다. 이 영화는 정치적 경향을 띠거나 정치적 발언을 하려 했다는 점에서 기존 일본영화계에선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파는 이 영화를 좌파식으로 볼 것이고, 좌파는 우파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의문만을 제기하고 있다.

극중 인물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극우파부터 진보주의자까지 다양하다. 본인은 어떤가.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온건한 좌파적 사고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우파에 속하는 친구들도 많다. 일본에서 스타일로 굳어진 게 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또 행하면서도 애매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교과서 문제에서나, 도미타가 속한 자위대에서도 그러한 부분은 드러난다. 그의 말마따나 자위대는 군대도 아니고 은자도 아니다. 이런 점들에 상당히 염증을 느낀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루면서 주인공은 한국과 일본의 가해자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무거운 테마를 다루는 이 영화는 개인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30년 전 사건을 관객에게 전달하려면 개인들이 겪어왔던 고통이나 어려움을 영화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이렇게 하면 메시지가 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개인들이 조직에 의해 희생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메시지 말이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