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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전주데일리]프로그래머 3인의 추천작
2002-04-26

서동진, 안해룡, 전승일

조용한 마을 The Town is Quiet

로베르 게디귀앙|프랑스|2000|133분

로랑 캉테, 알랭 기로디, 필립 르 게이, 그리고 로베르 게디귀앙,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자 계급의 세계를 향해 카메라를 조준한 프랑스 감독들이다. 물론 우리는 영국의 켄 로치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낭만적인 사회주의자, 소외되지 않은 공동체적 삶의 세계인 노동자 세계를 회상하는 감독이다. 로베르 게디귀앙의 <조용한 마을>은 몰락하는 산업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인다. 비상하게도 어판장에서 일하는 어느 중년 여성노동자와 그를 에워싼 노동자와 하층계급의 삶을 통해 게디귀앙 감독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이 작품은 여러 곳으로부터 지난 해 발표된 프랑스 영화 가운데 탁월한 영화란 평을 얻었다.

자유 Freedom

리산드로 알롱소|아르헨티나|2001|73분

현실로의 귀환이라는 세계 영화의 흐름은 무엇보다 남미 영화, 특히 아르헨티나 독립영화의 흐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의 현실이란 직접적인 사회적 현실에 한정되지 않는다. 리산드로 알롱소 감독의 데뷔작인 자유는 우리의 감각적 지각의 세계를 끌고나온다. 어느 벌목공의 한가로운 하루를 쫓는 그의 영화에서 우리가 사각의 프레임을 통해 보는 것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라 지각의 세계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이 따라다닌 친숙한 세계를 느닷없이 다른 것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벌목공의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기, 듣기, 걷기, 팔을 내젓기 그리고 똥누기와 같은 행동의 질을 느낀다. 그것은 물론 영화가 발견할 수 있는 현실의 차원이다.

볼리비아 Bolivia

애드리안 이스라엘 케타노|아르헨티나|2001년|75분

애드리안 케타노 감독의 <볼리비아>는 착취의 세계 속에 침몰하는 어느 노동자에 대한 엘레지다. 볼리비아 출신의 노동자 프레디는 아르헨티나에 불법체류하며 가족들에게 보낼 돈을 번다. 그가 일하는 곳은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작은 식당. 이 식당을 드나드는 노동자들은 프레디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나눠가지려 하고, 자기네 돈을 바깥으로 빼돌리는 적이기 때문이다. 식당을 드나드는 노동자들의 뜻모를 폭력과 조롱을 견디며 지내던 프레디에게 주어진 세상으로부터의 선물은 그러나 비정하고 부조리한 죽음이다. 마치 인화되길 꺼리는 음화같은 흑백의 화면 속에 감독은 현실의 완강함을 끄집어낸다. 물론 그 현실이란 어떤 환상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척박한 세계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pirited Away

미야자키 하야오|일본|2001|125분

은퇴 선언을 번복하며 다시 지브리 스튜디오로 돌아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의 전작들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연을 약탈하는 문명적 세계의 야욕과 상처받은 자연으로부터 들려오는 초자연적인 비명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생태주의적 세계관보다 그에게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일본의 근대성을 생각하는 그의 비범함에 있을 것이다. 허술하게 앞서의 그의 작품들을 인용하는 듯하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가 천착했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종합한다. 이는 그가 그려냈던 기이한 신비와 마법의 세계가 일본적인 근대의 이면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소녀 치히로의 마법의 온천장에서의 모험과 그 모험을 에워싼 도착적인 세계의 풍경은 곧 미야자키 하야오가 성찰하는 일본의 정신적 풍경인 셈이다.

고요한 곳 A Tender Place

나가사키 슈니치|일본|2000|201분

근년의 일본 영화가 몰두한 주제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바로 자신에게 알려진 삶의 세계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감춰진 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일 것이다. 나가사키 슈니치 감독의 디지털 영화 <고요한 곳> 역시 그런 모호한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폭력적 세계를 인식한다. 분명히 친숙하다고 할 화면에서 우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의 존재를 감지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조직하는 현실감 그러나 이를 배반하는 기괴함이 한데 맞붙어 우리는 감독이 이끄는 그로테스크한 악몽에 빠져든다. 이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우연한 불행과 재난의 궁극적 원인을 자신의 죄로부터 찾으려는 것, 그럼으로써 불행한 사고의 불가해함을 스스로에게 해명하려는 안간힘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형 Brother

얀얀막|홍콩|2001|90분

왕가위 감독과 함께 작업한 전력을 가진 얀얀막은 그녀의 장편 데뷔작으로 홍콩의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얀얀막의 <형>은 3년째 연락이 두절된 형을 찾아 티벳의 고원을 방랑하는 동생의 방랑을 쫓는다. 끊임없이 연기된 듯한 만남을 향해 머나먼 풍경 속으로 들어온 청년은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만나고 낙타를 만난다. 그러나 이 시적인 로드무비는 막연한 여정의 영화가 아니다. 이따금 멈춰선 카메라는 방랑자의 세계가 아니라 방랑하는 자의 내면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는 내면과 세계를 유려하게 드나드는 성찰의 영화를 만난다. 혹시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그 해 부쳐진 엽서는 중국의 분열과 통합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그들만의 월드컵 sachine

배리 스콜니크|영국·미국|2001|98분

영국판 교도소 월드컵 혹은 축구여, 우리의 세상으로 내려오라. <그들만의 월드컵>은 싱거우리만치 소박하고 또 뻔한 축구 드라마이다. 그러나 월드컵의 소란에 축구를 잊으려는 심술을 품었다면 축구를 사랑해야할 이유를 찾아줄 수 있는 좋은 처방이 여기에 있다.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인 대니는 승부조작 사건으로 유니폼을 벗은 후 망가진 삶을 사는 건달이 되어있다. 잡범이 되어 교도소에 들어온 대니에게 그러나 다시 축구가 기다리고 있다. 불공평하고 폭력적인 세계의 화신인 간수들 그리고 짓밟힌 채 살아온 죄수들 사이에 축구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들의 축제인 축구를 되찾으려는 자들에게 <그들만의 월드컵>은 배신하지 않는 선물이 될 것이다.

잊혀진 군대 The Forgotten Imperial Army

감독 오시마 나기사 등 |일본|1963|25분| 다큐멘터리

일본군 모자를 쓰고, 의수에 양쪽 눈을 실명한 전 일본군 출신 한국인이 하얀 상복을 입고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일본 천황’의 전쟁을 위해 전장터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재일본 한국인 상의군인들이 역전에서 보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보상은 없다는 일본정부의 공식해명. 법적 보상을 요구하는 가두 집회에서는 일본인 부랑자만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들의 플랭카드에 이렇게 써있다. “눈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고, 보상도 없다.” 패전의 상처를 딛고 경제 부흥의 가도에서 일본이 잊고있었던 전쟁 책임의 문제를 충격적인 영상으로 고발하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 노구치 히데오 감독이 공동 연출한 <잊혀진 군인들>은 2002전주국제영화제의 숨겨진 보물이다. 이 작품은 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만든 몇 안되는 다큐멘타리 가운데 하나. 방송 다큐멘타리로 제작된 <잊혀진 군인들>은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역사적 원죄 의식을 담고 있다. 씨네마 베리떼 방식으로 촬영된 이 작품은 세계 다큐멘타리사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작품.

실험 애니메이션, 어제와 오늘

올해 전주영화제는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만들어진 매우 독특하고 환상적인 추상실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실험 애니메이션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바탕으로 기존 예술에 대한 전복을 시도했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 시작된 아방가르드 영화의 한 흐름으로 점, 선, 면, 색채의 추상적인 움직임, 사운드와 이미지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낯설지만 새롭고 확장된 경험을 제공한다. 실험 애니메이션에서 필름은 기록매체가 아닌 드로잉 매체가 되었고, 사운드는 무브먼트가 되었으며, 상업영화의 반대편에서 이미지는 비로소 자유롭게 해방되었다. 초기 실험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작가 오스카 피싱거의 <술 속의 세상> <모션 페인팅 No. 1>등 그의 1920-30년대 작품과 다이렉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렌 라이의 <색채의 비명> <리듬> 그리고 최근 작가로 자그레브 영화제에서 최우수 추상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베벨 노이바우어의 <태양> 등이 상영된다.

페도르 키투르크 특별전

올해 애니메이션 비엔날레는 오토 앨더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천재의 영혼’이라고 칭송된 바 있는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거장 페도르 키투르크 감독의 특별전을 마련한다. 페도르 키투르크는 일찍이 칸느, 베니스 등 수많은 나라의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경력을 갖고있으며, 히로시마와 오타와 페스티벌에서는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그의 1962년 감독 데뷔작 <바실리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면적인 배경 이미지와 디즈니 같지 않은 캐릭터와 움직임으로 공존을 위한 서로간의 배려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프레임 속의 남자>는 그의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꼴라주 기법에 의한 독특한 시각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영혼의 움직임을 창조하고자 했던 그에 대한 헌시인 <다큐멘터리 페도르 키투르크>도 함께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