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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전주데일리]관객과의 대화 - <섹스와 사랑의 지도> 감독 에반스 찬
2002-04-29

\\\"제목보고 섹스장면 많이 기대하면 실망할 것\\\"

“제목만 보고 섹스장면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면 실망하게 될 거다.”

28일 씨네21극장에서 상영된 <섹스와 사랑의 지도>의 에반스 찬 감독은 영화 상영 전 관객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상영 시간이 2시간11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사실 감독이 경고한 그대로였다. 쏟아지듯 흘러나오는 나레이션과 세 인물이 되짚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감독의 말대로 “세 가지 비밀을 담고 있는” 사적이면서 공적인 홍콩의 현재였다.

홍콩 최초의 디지털 영화인 <섹스와 사랑의 지도>는 등장 인물 세 명의 상처를 따라 각각 ‘고무밴드’와 ‘벨그라드’ ‘나치 골드’라는 작은 제목으로 나뉘어 진다. 동성애자인 댄서 래리는 남자를 보고 욕망을 느낄 때마다 따끔하게 튕기라며 고무밴드를 준 상담 교사에게 상처받았고 상처를 줬다. 역시 동성애자인 다큐멘터리 감독 웨이밍은 과거 마카오에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가 나치로부터 흘러나온 황금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을 거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미미는 정신병자였던 어머니 때문에 미쳐 버릴 거라는 공포에 시달린다. 세 사람은 홍콩 외곽의 작은 섬 난야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함께 과거를 탐색한다.

에반스 찬은 관객과의 대화에 앞서 자신의 성장 배경을 설명했다. 비평가이자 극작가이고 독립영화 감독인 그는 중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떠안은 성장 과정을 거쳤다. 그는 마카오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이런 배경과 역사에 대한 관심 덕분에 “이미 1990년대 말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으로 반환됐지만, 지금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 역시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개인의 삶엔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층위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 역시 “이런 삶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고민하다 보니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가로지르는 지도가 생각났다”고 설명했다.

관객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웨이밍과 래리의 동성애였다. 두 사람이 동성애자를 위한 전용 공간에서 섹스를 나누거나 미미가 두 남자 모두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아직은 좀 낯설었던 것 같다. 에반스 찬은 “처음엔 래리만 동성애자로 설정했다. 하지만 웨이밍의 아버지가 연관돼 있는 나치는 동성애를 극심하게 탄압했고 예전 중국인들 역시 동성애자를 살해했다. 그들은 역사적 탄압의 상징이다”라고 관객의 의문에 답했다. 그런 파격과 끈기 있는 성찰이 공존하는 <섹스와 사랑의 지도>는 한동안 잊혀졌던 홍콩 독립영화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영화였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