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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전주데일리]28일 추천영화 두편
2002-04-29

울리히 사이들의 밤, 안녕, 테레스카

울리히 사이들의 밤 Ulrich Seidl 's Night

전주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오스트리아의 울리히 사이들(50)은 현대인들의 파편화된 욕망과 삶을 에누리없이 일러바치는 것으로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영화제작을 후원해온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는 그의 작품을 두고서 “그처럼 곧바로 지옥으로 뛰어드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울리히 사이들은 인간들이 고립되고 뒤틀려 해괴한 짓을 해대는 걸 찾아내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매저키스트 같지만, 가끔씩 그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깃들어 있음이 읽히기도 한다. 20대 후반부터 만든 10여편 가까운 다큐멘타리와 세미다큐멘타리도 그랬지만, 50살이 다 돼 만든 첫 극영화 <개같은 나날>(Dog Days 2001년, 114분)은 야멸찬 풍자의 정점을 선보인다. 비엔나 외곽의 한 마을을 무대삼아 스트레스에 가득찬 세일즈맨, 자신을 학대하는 남자를 떨치지 못하는 노년의 여성, 반쯤 미친 히치하이커, 사실상 부부관계가 실종된 중년 부부 등 여러 인물들이 펼치는, <숏컷>처럼 일그러진 삶의 이어달리기이다. <숏컷>보다 적나라하게 난교파티, 사도매조키스트적 성행위가 거침없이 등장하지만, “인간을 따듯하게 보듬는 영화”라는 감독 자신의 말처럼 인물들에게 보내는 연민이 <숏컷>보다 깊다. 다큐멘타리 <애니멀 러브>(Animal Love 1995년, 114분)는 사람에게 못다 얻은 애정을 개, 토끼, 햄스터 등 애완동물에게서 구하는 유별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동물들에게 매일같이 설교를 해대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견디질 못하고, 더러는 동물과 성적 접촉을 하는 등장인물들이 기이하면서도 슬퍼보인다. 다큐멘타리에 일부 인위적 연출을 섞은 <모델>(Models 1998년, 118분)은 여자 모델 지망생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살을 빼고 남자와 관계를 맺고 하는 일들을 중립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상실시대>(Loss is to be expected 1992년, 118분)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국경지대를 찾아가, 유럽 동서분할이 이 시골사람들의 생활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짚어본 다큐멘타리이다.

임범

안녕, 테레스카

로버트 글린스키 폴란드 2001 | 86분 | 디지베타

색깔을 잃은 도시에서 두 여자아이가 헤매고 있다면, 그리고 두 아이가 의식하지 않는 카메라가 그 곁을 쫓을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영화가 나올 것이다. 폴란드의 중견감독 로버트 글린스키가 연출한 <하이, 테레스카>는 어른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냉정하게 피해 가는 영화다. 카메라는 때로 가깝게 때로 아주 멀리 거리를 조절하지만, 감정은 단 한 번도 넘치지 않는다. 차가운 디지털 촉감과 온기 없는 도시. 글린스키는 뜨겁게 올라오는 습기가 없어도 이곳은 충분히 정글이라고 설득한다.

열 다섯 살 먹은 테레스카는 실업자인 아버지와 TV만 쳐다보는 어머니, 영악한 여동생과 함께 산다.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패션 스케치. 아버지는 어머니를 설득해 그녀를 재봉학교에 보내도록 한다. 기쁜 마음으로 들어간 학교는 테레스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단조로운 기술만 가르치는 학교에서 불량소녀 레나타를 만난 테레스카는, 음주와 흡연, 절도, 때 이른 키스를 배우며 급속도로 비행에 빠져든다. 레나타와 함께 있지 않을 때, 테레스카는 죽은 감각을 일깨울 단 한 번의 키스를 애걸하는 중년의 불구자 에덱을 만나곤 한다.

이 영화의 두 주연은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으며 실제로 소년원 출신이다. 두 소녀는 되바라지지만 세상을 두려워하는 모호한 표정으로 잊혀진 나라 폴란드의 현재를 깜짝 놀란 바깥 세상 사람들 눈앞에 가져다놓았다. 그것은 TV나 알코올로 상처를 마비시키는, 잔인하도록 무력한 공간이며 외면할 수 없이 사실적인 공간이다. 2001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은 아마 그 동의이자 인정의 표시일 것이다. <버라이어티> 지가 "99년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로제타>와 함께 드라마의 깊이를 가진 드문 청춘영화"라고 찬사를 보낸 수작이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