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2002전주데일리]<삼인조 택시강도>감독 올란도 루버트 인터뷰
2002-05-02

선배들은 거대 서사에 매달렸지만 우리는 일상으로 역사를 말한다

칠레 감독 올란도 루버트는 57살의 나이에 비해 작품수가 적다. 이번 영화제에 온 <삼인조 택시강도>가 세번째 장편이다. 서른살이던 1975년 칠레 노동운동을 다룬 단편 <대포에 저항하는 주먹들>을 찍다가 피노체트가 집권하자 찍던 필름을 들고 독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79년에 아르헨티나와 독일 배우를 섞어 만든 <엘 파소>로 장편 데뷔했다. 단편영화들과 두번째 장편 <식민지>를 찍고 나서 96년에 칠레로 돌아왔다. 고국에서 만든 <삼인조 택시강도>는 2001년 산세바스찬영화제 대상을 받았고, 칠레에서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칠레전투>의 파트리스 구스만 등 망명한 칠레 감독들과 같은 세대로 봐도 되는지.

구스만이나 라울 루이스 등은 나보다 앞 세대로 봐야 한다. 그들은 칠레에서 영화감독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망명했다. 우리는 영화 한편 발표하지도 못한 채 아무 근거없이 망명했다. 내 세대는 잘 정리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망명해서 작업하다가 칠레로 돌아온 세대다. 구스만과 루이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구스만은 여전히 칠레인의 취향을 지니고 있지만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루이스는 취향이 프랑스적인 데다 스스로 프랑스 감독으로 생각하고 이름도 프랑스식으로 표기한다.

칠레로 돌아왔다, 오지 않았다는 것 외에 당신과 앞 세대 간에 차이가 있는가.

구체적으로 선을 그을 수는 없다. 7년전 구스만을 베를린에서 만났을 때 그도 언젠가는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때 칠레 밖에서뿐만 아니라 칠레 안에서의 작업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와 칠레의 정치 상황에 관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모두 같겠지만 프랑스에서 칠레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는 아직도 낭만적이다. 이데올로기를 부각시킨다거나, 칠레는 아직 정치적 격변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본다. 오류가 있다. 대신 칠레 안에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솔직하게 일상적인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칠레는 상황이 전투적이거나, 이데올로기가 화두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의 영화는 보다 일상적이고 사실적이다.

망명 직전의 단편 <대포…>는 노조와 조직적 연관을 맺고 찍었나.

그렇지는 않지만 당시는 모든 영화인들이 아옌데 정권과 노조에 연대의식을 갖고 있었다. 모든 예술인이 아옌데를 지지했고 영화인의 지지는 100%에 가까왔다. 사회 변혁이 최대의 화두였고, 영화가 거기에 헌신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칠레의 영화산업은 어떤가.

영화 산업이 부재한다. 영상 산업 전체로 보면 대부분의 인력이 광고 산업에 몰려있다. 그래서 인건비가 비싸다. 영화 만들 때 그 사람들을 써야하므로 제작비가 올라가게 된다. <삼인조 택시강도>를 만들 때는 운이 좋았다. 정부에서 예술가를 지원하는 폰다르트 재단으로부터,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7만달러를 지원받았다.

칠레를 비롯한 남미영화의 정체성을 말해본다면.

미국영화의 장점은 삶과 영화의 기술을 잘 조화시키는 데에 있다. 미국영화의 많은 부분이 중남미에 수용됐지만 본질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다. 그 건조한 시선이 중남미 현실을 바라보는 데 적절하다. 또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선배들은 거대 서사에 많이 매달렸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

임범▶ 씨네21 [2002전주데일리]홈페이지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