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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⑤] <주디와 펀치의 위험한 관계> 미라 폴크스 감독, “영화를 만드는 여성에게 흥미로운 시기다”
임수연 사진 박종덕 2019-07-10

<주디와 펀치의 위험한 관계>는 꼭두각시 인형극을 하는 부부, 주디(미아 바시코프스카)와 펀치(데이먼 헤리먼)의 관계 역전을 다룬다. 재주는 주디가 부리고, 명성은 펀치가 누리던 구도는 남편에게 맞아 죽을 뻔한 주디가 복수를 위해 마을로 돌아오면서 뒤집힌다. 기본 설정부터 뚜렷한 메시지가 읽히지만, 영화를 연출한 미라 폴크스 감독은 “정치적인 것은 이차적 요소고,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첫 장편영화 <주디와 펀치의 위험한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나.

=4년 전쯤, 내가 연출한 단편의 판권을 구입했던 미국 영화제작사 바이스필름에서 <펀치와 주디>라는 아이템을 개발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줬다. <펀치와 주디>란 제목의 오래된 영국 전통 인형극이 있다. 펀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화가 나면 자신의 아내를 때리고 급기야 아기도 죽인다. 여성 혐오와 폭력성이 전면에 부각된 이 작품이 어떻게 어린이가 보는 인형극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는지 궁금했다. 영화는 이를 뒤집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주디와 펀치의 위험한 관계>로 제목을 바꿨다.

-여자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읽히지만 후반의 전개는 ‘군중심리’를 다룬다.

=힘을 가진 인물이 군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동시대 정치 상황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군중을 휘두를 수 있는 게 신기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탐구하고 싶었다. 원래 폭력이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다. 역사적으로 그 폭력은 여성을 향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태생적으로 젠더 메시지를 안을 수밖에 없는 거다. 또한 소외계층과 성별·인종·장애 등 차별 이슈도 함께 다루고 싶었다.

-17세기, 시사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근처에 바다가 없는 어느 가상의 마을이 배경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고증을 거쳐 정확한 디테일을 구현하는 시대극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대신 어떤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되 환상적이고 사람들이 본 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여러 원칙이나 규칙을 깼고, 특히 언어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배우들에게는 유럽 어딘가의 출신이 할 법한 영어 억양을 주문했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영국, 데이먼 헤리먼은 아일랜드 억양을 구사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펀치는 극 안에서 아웃사이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아이리시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전반적으로 영화의 톤이 기이하게끔 연출했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 역시 극적이고 연극처럼 느껴지게 주문했다. 다만 너무 만화처럼 보여서는 안 됐다. 캐스팅 단계부터 염두에 둔 부분이다. 실제 촬영은 제작비 문제로 인해 고향이기도 한 호주에서 진행했다. ‘아티스트 콜로니’라는 예술가들의 공동체 마을을 로케이션 헌팅 중 찾아냈다. 50~60년대 지어졌지만 중세 유럽 건축물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다양한 문화가 섞여서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다.

-미아 바시코프스카, 데이먼 헤리먼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원래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였다. 제작 초기 단계부터 캐스팅이 결정됐다. 데이먼 헤리먼은 내가 배우였을 당시 함께 작업한 적 있는데,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다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인지도를 갖춘 사람은 아니라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 데이먼 헤리먼은 오디션을 본 어떤 배우보다도 펀치 캐릭터의 어려운 대사를 독보적으로 잘 소화했다.

-지금 한국은 어느 때보다 젠더 논쟁이 뜨겁다. 여성감독과 여성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에 대한 반발이 혼재한다. 첫 장편영화를 완성한 호주 여성감독에게 지금 호주의 상황에 대해 묻고 싶다. 더불어 여성감독이기에 당신의 작품에 대한 포커스가 젠더 이슈에 집중되는 것이 아쉽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을 듯하다.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 같다. 어느 때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중이고 그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나서면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 나의 경우 정말 운 좋게도 감독이 되기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네가 여성이니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너는 영화를 꼭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데뷔작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주위에서 응원해줬다. <주디와 펀치의 위험한 관계>는 젠더 이슈를 다룬 페미니스트 영화이지만 단지 그것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난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페미니즘이란 레이어를 걷어내고서도 관객에게 즐거운 영화적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지금은 어느 때보다 영화를 만드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흥미로운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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