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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④] 독립예술영화 시장 10년을 되돌아보며 ‘무엇으로부터 독립할 것인가’를 묻다
송경원 2019-08-28

예상된 위기 끝에 마주한 새로운 시대, 그리고 가능성들

<그날, 바다>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는 존재는 하되 유령처럼 희미해져가는 중이다.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 흥행의 어려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의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2018년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개봉편수는 113편으로 총관객수는 110만명 수준이었다. 관객수 시장점유율로 따지면 한국영화 관객 전체의 0.51%에 불과하다. 2015년부터 1%선을 유지해오던 관객점유율이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4년 2.61%였던 점유율이 2015년에는 1.13%로 떨어졌고, 2017년에는 0.96%를 기록했다가 2018년 들어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급감했다. 해마다 관객수 및 매출이 반 토막이 난 셈인데 2018년 평균 관객수는 9774명이었다. 이 수치는 몇해 전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훨씬 피부에 와닿는데 가령 2014년의 평균 관객수 4만 92명에 비해 2018년 관객수는 20%에 못 미칠 정도다.

독립예술영화가 사라졌다?

반면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제작편수는 그렇게 줄어들지 않았다. 2014년 114편이었던 제작편수는 꾸준히 100편 이상을 유지했으며 107편이던 2017년에 비해 2018년에는 오히려 몇편 늘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수치들은 하나의 결과를 시사한다. 제작 환경 자체가 열악해진 것이 아니라 배급과 상영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는 있는 상황이지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독립예술영화 제작이 수월해진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시장 환경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영화 제작, 연출자들이 각자도생으로 여러 방식을 시도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전통적인 제작방식이나 열악해진 독립영화 진영 바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이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09년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2012년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2013년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 그리고 2018년 김보라 감독의 <벌새>까지 지난 10년간 의미 있는 결과를 남긴 작품들 대부분이 각자의 분투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꾸준한 시도와 각자도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독립영화 시장은 관객이라는 최종 고리를 잃고 무너져가는 중이다. 어떻게든 제작을 이어나가던 것도 지난해를 기점으로 한계에 부딪친 분위기다. 독립예술영화 관객수는 2013년부터 2억명을 넘어선 전체 영화 관객수와 정반대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2014년 4%대를 유지하기는커녕 갈수록 시장 전체의 크기가 줄어들어 현재는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10만 관객을 넘긴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단 3편에 불과했고 2018년에는 <그날, 바다> 한편만 10만 관객을 넘었다. <그날, 바다>의 경우 정치적인 이슈와 결합하여 54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이례적인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18년 한국 독립영화 흥행 3위가 관객 5만9천여명을 모은 <소공녀>였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소공녀>의 기록은 2017년 기준으로 흥행 9위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1년 만에 전체 관객수가 눈에 띄게 급감한 것을 알 수 있다. 1만 관객을 달성하기 어려워진 이러한 분위기는 산업이 기능을 유지할 최소한의 관객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충성도 높은 관객층이 사라진 당장의 수치도 암울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새로운 관객 개발과 다양성 확장을 위한 시도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관객이 빠져나가는 만큼 새로운 관객이 유입될 필요가 있는데 제작 인력이 새롭게 유입되는 것과 달리 이 부분은 연구와 분석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현 시점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건 이 때문이다. 2008년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가능성을 알린 <똥파리> 이후 10년, 마찬가지로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평단의 인정을 이끌어내고 있는 <벌새>가 등장했다. 현상은 비슷해 보이지만 주변을 둘러싼 환경은 완전히 바뀐 상황에서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여전한지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소공녀>

다양성영화라는 그림자와 독립영화의 위축

독립예술영화 시장 진단에 앞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개념 정의다. 어떻게 보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개념에서 독립영화는 ‘자본과 상업영화 제작시스템으로부터 독립’을 통칭하지만 시장 분석을 위해선 좀더 엄격하고 협소한 정의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수치와 통계에 잡히는 독립예술영화들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38조 1항과 2항에 의거, 독립예술영화 인정 등에 관한 소위원회가 독립, 예술영화로 선정한 영화들을 말한다. 이는 지원과 관리를 위한 기준이며 이러한 영화들이 해를 거듭해 축적되면 이른바 ‘독립영화진영’이라는 귀납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요컨대 기존의 독립영화에 대한 접근은 독립영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2007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워크 사업계획안’을 발표하며 ‘다양성영화’라는 용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때로 언어는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다양성영화라는 용어 안에 기존의 독립, 예술, 다큐멘터리, 저예산영화들을 모두 포괄하여 적용하자 환경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독립, 예술, 저예산영화는 각각의 고유한 태도와 방향성이 있다. 때로 이것이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제작하는 영화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저예산은 말 그래도 예산의 크기에 따른 구분이고, 예술영화는 (다소 자의적이지만) 작가의 예술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놓는 영화를 말한다. 독립영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업영화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여 감독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영화들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개념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 뒤섞어버리면서 독립영화들도 고유한 색을 잃기 시작한다.

다양성영화의 의도와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상업영화에 비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영화들을 지원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독립예술영화의 시장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9년 300만 관객을 동원한 <워낭소리>, 2014년 48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폭발적인 흥행작들에 관심이 모아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영화들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도외시되었다. 흥행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을 지원하는 것이 독립예술영화의 기본 취지였던 것에 반해 다양성영화의 경우 다양성영화라는 또 다른 시장 안에서 내부 경쟁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독립예술영화의 자생적인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흥행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영화에만 지원을 모을 경우 반대로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다양성 보호라는 목적과 경쟁력 고취라는 방법이 역전되어버린 셈이다. 그렇게 다양성영화 시장은 결국 단지 예산이 적을 뿐인 또 다른 상업영화 시장으로 변질되었고, 끝내 각자 다른 카테고리의 영화들을 경쟁시켜 서로의 다양성을 깎아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영진위가 정책 방향을 선회해 다시 독립예술영화의 배급과 유통 지원을 위한 준비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는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재차 강조하건대 때로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변화의 바람은 독립과 예술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독립영화는 지난 10년간 승자 독식의 게임, 정치적 메시지의 억압 등 여러 방식으로 억제되어왔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놓지 않고 버텨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18년 한국독립영화협회, 인디스토리 등 독립영화를 지켜온 곳들이 20주년을 맞이했다. 물론 위기의 징후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1996년 시작되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제인 인디포럼은 재정적인 문제와 운영상 문제를 이유로 2019년 한해를 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영화계는 꾸준히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아토ATO나 광화문시네마처럼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 독자적인 색깔을 내는 제작사들이 생겨났고, 산업적인 어려움과 별개로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처럼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젊은 감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새로운 독립영화 세대의 출현 방식이 그야말로 각자도생, 그러니까 시스템이나 선배 세대의 유산에 기대지 않고 맨몸으로 시대와 부딪쳐 얻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실로 독립영화답다. 어쩌면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 욕망이야 말로 독립예술영화의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환경 속에서도 제작편수가 줄어들지 않는 건 시대 변화와 무관한 창작에의 열망 그 본질적인 에너지를 대변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를 받쳐줄 제도적 장치다. 창작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제작에 대한 지원보다 공급망과 배급에 대한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의 설계다. 다행히 영진위 등 관련기관에서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2019~22한국영화발전계획(안)’을 통해 독립예술영화의 중요 방안으로서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종합지원센터’의 신설 운영을 제시했다. 개별 영화에 대한 지원을 넘어 유기적인 유통·배급망을 통해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 독립예술영화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 방안일 것이다. 특히 극장 플랫폼의 관객수에만 철저히 의존했던 기존 수익모델에서 벗어나 관객과의 접점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크리에이터에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영상 콘텐츠 소비자들의 접근 통로도 다변화되었다. 실제로 온라인 기반 VOD와 OTT(Over The Top) 시장의 확장은 독립예술영화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대에 따라 개념은 바뀌기 마련이고 영화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도 마찬가지다. 변화한 시대에 독립과 예술의 개념을 명확히 하여 ‘무엇으로부터 독립할 것인가’ 혹은 ‘독립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자문해볼 때다. 그 고민에 답을 내놓는 과정에서 ‘어떻게 독립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길이 열릴 것이다.

자료제공: 영화진흥위원회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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