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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의 `시대코드 따라잡기` 속타는 변신 몸부림에 착잡
2002-05-03

문화부 기자로 일하는 기쁨이자 권리 가운데 으뜸은 일반 대중보다 먼저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화 행위 결과물들을 맛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 전에 미리 보는 혜택도 그중 하나로, 많을 때는 하루 서너번의 시사회로 해가 진다. 월급 받으며 공짜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 건 현대판 `음풍농월' 격이라 할 만한데, 사실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남보다 앞서서 영화를 볼 때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 정보를 널리 알리고 입소문을 내기 전에 정확한 감상과 비평이 뒷받침 돼야 한다.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나, 일이 된 영화보기는 괴로울 때가 더 많다. 시사회에서 본 영화를 다시 개봉관에서 보거나 비디오로 볼 때 훨씬 즐거워지고 작품평에서도 후해지는 경우가 꽤 된다. 비판을 위해 곤두세운 신경을 끈 마음이 훨씬 느슨해지기 때문이지 싶다. 시사회장 풍경도 편하게 영화보기를 방해하는 한 요인이랄 수 있다. 새 상품을 출시하는 제작사로서는 좋은 평, 재미있다는 기사 한 줄이 아쉬우니 읍소라도 하고픈 심정일 터이다. 그래서 영화를 틀기 전에 출연한 남녀 주인공들과 감독을 무대로 불러내 고개를 숙이며 한마디씩 하는 순서를 연다. “열심히 했으니 재미있게 봐주세요”, “소중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같은 무난한 인사로부터 “재미있게 만들었으니 열심히 보라”는 패기 넘치는 말솜씨까지 등장한다. 가끔 넙죽 큰 절을 하는 제작자가 있어 관객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싶은 그 심정을 헤아리게 만든다. 1일 오후에 열렸던 <일단 뛰어> 시사회장은 최근 한국 영화가 달려가고 있는 현실을 짐작케 하는 제작자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았다. 기획시대 대표인 유인택씨는 여균동 감독의 <미인> 이후 2년 만에 만든 <일단…>을 내놓고 “지금 변신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입을 뗐다. 역사와 현실을 꽉 움켜쥔 사회파 감독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이재수의 난>을 제작하며 10년 넘게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유 대표는 “막 지옥터널을 빠져나왔는데 누군가는 지옥터널이 또 있을 것이라 하더라”며 “일단 한 번 도와달라”고도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기 출신인 조의석 감독을 소개하며 76년생임을 거듭 강조했다. “젊고 밝은 20대의 감성을 부담없이 즐겨달라”는 주문도 곁들였다. 돈벼락을 맞은 고3생으로 분한 송승헌, 권상우, 김영준씨의 풋풋한 자태가 푸석한 유씨 얼굴 곁에서 싱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날 시사회장 풍경을 종합하면, `지옥터널'을 탈출하는 `변신'의 핵심어는 `젊음'과 `부담없이'고, 이 코드에 목맨 영화목록이 하반기까지 줄서 있다는 말도 된다. 너무나 빠르게 바뀌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시대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제작자의 속타는 얼굴이 각기 사연따라 돈을 좇아 죽어라고 달리는 영화 속 인물들과 자꾸 겹쳐 보여 심란한 영화 감상이 되고 말았다. 정재숙 기자j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