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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포이즌> 정현주 인터뷰
2002-05-03

“이 유례없는 악녀를 보십시오”

자칭 ‘페미니스트’ 작가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다. 최근 한 여성 평론가가 한국영화 속에서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그건 정현주씨가 나타나기 전의 일이다. 시나리오를 배우고 쓰기 시작한 지 올해로 2년째인 정현주씨는 역대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당선자가 남성뿐이었다는 사실에 주춤거려지기도 했다지만, “한국영화 사상 유례없는 악녀”를 만들고 싶어 구상했다는 시나리오 <포이즌>으로 보란 듯이 ‘등단’에 성공했다. 정현주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업주부’였다. 물론 지금도 주부이고, 매인 직장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시나리오 쓰는 걸 ‘업’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니, 큰 변화가 생긴 셈이다. 정현주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이른 결혼 뒤에 한동안 가정을 돌보는 일에 묻혀 살았다. 틈틈이 소설 습작을 하고, 극장을 드나들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 두 가지 취미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으니, 바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었다. 잔잔한 드라마 <집으로…>에도 살인게임극 <배틀로얄>에도 열광하는,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을 지닌 그는, 작가로서도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태세다.

<포이즌>의 스토리는 어떻게 구상했나.

내가 좀 투사적이다. (웃음) 여자는 말야, 남자는 말야,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대화는 거부하곤 한다. 기존 영화에서 남성이 여성을 보는 시각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가보고 싶었다. 금괴라는 상징을 통해 여자들의 권리를 밖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안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시장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쉽게 오가는 공간인 시장에서, 왠지 음습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봤다. 낮 동안에는 시장이 활기차지만, 밤엔 으스스한 것이 꽤 무섭다. 그런 공간의 이미지가 인간의 욕망, 그 이중성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했다.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필름누아르에서 영향받았나.

영화를 다양하게 보고 좋아하는 편이다. 특별히 한 장르만 고집하진 않았다. 굳이 꼽자면, 필름누아르보다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독창적이고 강렬해서 좋아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에는 늘 화가 났다. 이 영화의 중심에 악녀를 세운 건, 그런 불만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 것이다.

“치명적인 러브스토리”라 소개했는데, 그 속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메시지를 꼭 주자는 생각은 없었다. 영화는 공동 작업이고, 또 보는 사람의 것이니까. 너무 강렬한 메시지는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공격적인 성향의 페미니즘을 담고 싶었고, 한국영화사에 없는 악녀를 만들어 보이고 싶었다. 그 캐릭터에 카리스마를 주고 싶었다.

누아르나 스릴러를 특별히 좋아하나.

그런 건 아니다. 4편 정도 습작을 쓰긴 했지만, 장르가 다 다르다. 스릴러도 재밌었다. 나한테 맞는 장르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여러 방면으로 모험을 해 보고 싶다. 경력이 더 쌓이면, 어떤 한 방면에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 작가로서 품고 있는 꿈이 있다면.

글을 쓰는 것,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에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꼭 그만큼의 희열과 자기 만족이 따르는 것 같다. 여성 작가가 액션을 쓰는 건 힘들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래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협객이든 전사든, 여자가 하는 액션을 써 보고 싶다. SF로 갈지, 시대물로 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 제4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Girls, Be Ambit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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