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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마늘> 한귀숙 인터뷰
2002-05-03

“여성을 무시하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

한귀숙씨는 타고난 글쟁이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극장에 가는 대신 비디오로 보는 걸 즐긴다면서도, 글 쓸 때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10시간을 훌쩍 넘긴다고 한다. 어깨 인대가 늘어나서 병원을 드나들어야 할 만큼이다. 지나온 직업도 모두 글을 쓰는 일이었다. 다큐 작가, 대필 작가, 구성 작가 등등. 방송사 일을 그만두고 시나리오 쓰겠다고 집에 들어앉은 것이 2년 전 일이다. “내 인생에 계획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삼십줄에 들어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함을 달았고, 영상작가 교육원에서 작가수업을 받으면서, 장단편 10편의 습작을 남겼다. 관객으로서는 <중앙역> <천국의 아이들> <집으로 가는 길>처럼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지만, 작가로서는 장르와 스타일 가리지 않고 더 많은 훈련을 쌓아야 할 때라고. <마늘>은 처음 시도한 스릴러지만, 낙방해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공을 들인 작품. “당선이 끝이 아니라, 고생의 시작이라는 걸 잘 안다”고 말하면서도, 사서 하는 고생, 그 고생의 출발선에 서서, 못내 감격스러운 눈치다.

당선 소식 듣고 어땠나.

전화통화로 짐작했겠지만, 목이 잠겨 있었다. 컨디션상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 없었다. 이전 시나리오로 7번 정도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 안 되면 다음은 없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준비도 오래 했고, 수정도 꼼꼼히 했다. 하지만 제출하면서 마음을 비워서, 당선 소식 듣고 실감이 잘 안 났다. 예비군 훈련간 남편에게 전화로 알렸더니, “민주당 경선에서 누가 당선됐다구?” 하고 되물었다.

<마늘>은 어떻게 구상한 이야기인가.

평소에 신문기사 사회면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언젠가부터 살인사건이 부쩍 많아졌다. 유행처럼. 그런 사건들을 야기시키는 인간 본성의 야수성, 사회모순 같은 문제들을 시나리오로 풀어보고 싶었다. 초안은 사랑과 배신 등을 골자로 한 멜로드라마였지만, 지루한 느낌이 들어 장르 혼합을 시도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한 장르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 복잡 미묘함, 우연성을 살리면서, 이야기 속에 인간의 희로애락, 생로병사애오욕을 모두 담고 싶었다.

제목이 왜 <마늘>인가.

마늘의 어감이 좋았다. 정지우 감독 단편 <생강>을 듣고 ‘필이 왔다’. 마늘은 극중에서 주인공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계기를 주는 매개물이다. 마늘은 몸에 좋지만, 매우 독하기도 한데, 주인공의 연약한(줄 알았던) 자성에 은밀하고 독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는 데 대한 은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그렇고, 이 영화의 장르가 그렇듯, 인간이란 존재도 하나의 캐릭터로 명쾌하게 정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섹스 비디오, 출생의 비밀, 다중성격 등 여러 소재가 활용되고 있다.

2년 전 초안을 썼을 때만 해도, 이 시나리오의 시작은 단순한 멜로였다. 캐릭터도 사건도 없었다. 캐릭터를 살리고, 사건을 총명하게 만들려면, 어떤 ‘족쇄’ 같은 장치가 필요하겠더라. 그래서 가미한 것이 현재의 살인사건, 어린 시절의 불운, 그리고 정신착란 같은 요소들이었다.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복수하고 항변하고 실패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놓인 족쇄를 주인공 스스로 풀어가는 데 중점을 두고자 했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킨 구성이 돋보인다.

회상 기법을 자주 쓰면 지루하고 맥이 끊긴다. 그래서 회상이라도 회상이라고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의 구분을 명확히 두지 않은 것, F.I과 F.O를 거의 쓰지 않은 건 그런 이유였다. 쉬어서 보거나 연결해 보거나, 관객 스스로 다양하게 보고 해석했으면 싶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코미디에 약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로맨틱코미디도 쓰다 보니 재밌었다. 아직 엄두를 못내는 액션 말고는 다양하게 하고 싶다. 여성을 무시하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맞는 소리다. 여성의 사상과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들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쪽으로 내가 할 몫이 생긴 것 같다. ▶ 제4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Girls, Be Ambit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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