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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호정이 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제작기
2002-05-03

스와 노부히로의 편지를 받고 미소로 소통하기까지

나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제의는 한통의 편지에 실려왔다. 편지를 받을 당시 나는 스와 감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었고, 그의 작품을 서둘러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고 난 뒤 나는 약간 당황했다. 영화의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했고 그런 모호함에 관해 영화들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당혹감 역시 일반적인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솔직함과 겸손함이 배어 있는 편지 한통에 나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과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나는 나의 연기를 한다… 나란…

작업을 함께하고 싶다는 답장을 띄우자마자 이틀 뒤에 스와 감독은 한국으로 나를 찾아왔다.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내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작 이번 영화의 진행 방법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스와 감독은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며 작업하는 과정과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기대한다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언급을 통해 이번 영화가 어떨 것인가에 대한 약간의 정보만 얻은 셈이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며칠 뒤 간단한 안부 편지와 대략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그 편지에는 “당신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저를 신뢰해주셨기에 이번 작품에 대해서 당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의 시나리오였다.

촬영을 위해 남은 일주일 동안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나로서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이 시나리오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채 나는 출국했다. 혹시 영화의 내용대로 내가 공항에 도착해 나오는 모습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잡는 것이 아닐까? 긴장으로 상기되어 공항에 도착하자 다행히도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스탭들이 마중나와 주었다. “나타나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첫인사를 했고 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차린 감독은 크게 웃어주었다. 스탭은 모두 열한명이었고 한두명을 제외한 스탭 모두가 스와 감독과 줄곧 영화를 같이해온 사람들이었다. 촬영 전날 영화의 전반적인 윤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와 감독의 방식은 배우와 스탭들과 언제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겐 촬영 못지않게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시간들이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The Letter from Hiroshima)의 스토리는 사실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김호정(나란 배우)이 스와 노부히로의 영화 제의를 받고 히로시마에 오지만 감독은 나타나지 않는다. 감독의 제안대로 히로시마를 둘러보고 스와 감독과 우연히 재회한다.” 이러한 간단한 줄거리를 기본으로 우리는 사전의 대화를 통해 영화를 만들어나간다. 촬영 때에는 배우가 즉흥적으로 내용을 만들어간다. 그렇지만 그 즉흥성이란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상황 속에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감독과 배우의 상호합의하에 이루어진다.

그건 내게 그리 생소한 작업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나비>라는 혹독한(?) 작업을 통해 즉흥적인 방식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는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에 반응하는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가 기습적으로 생생하게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 하여금 사전에 모든 것을 먼저 느끼게 하고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연기하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첫날 촬영은 첫 장면부터 순서대로 찍었다. 첫 촬영을 마치고 두 번째 장면을 찍기 위해 스와 감독에게 준비해온 의상들을 보여주며 선택해달라고 요청했다. 내게 돌아온 대답은 “아무 거나 입으세요”였다. “이번 영화에서 호정씨는 호정씨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니 호정씨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만약 의상을 결정한다면 그 의상에 맞추어 이미 캐릭터에 갇힐 수 있으니 본인이 선택하세요.” 나는 그때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리잡았다. 배우는 어떠한 인물을 표현해내기 위해 나름대로 관찰과 연구를 통해 인물을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신에 대해 연기해야 된다고 하니 애매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순간 과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어쨌거나 내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리라는 다짐으로 촬영에 임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촬영장에 간 그 다음 순간 나는 큰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첫날 촬영을 망치고 ‘히든 카드’를 쓰다

첫날 두 번째 촬영지 ‘평화 기념관’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감독은 내게 카메라로 이곳을 둘러보는 호정씨의 모습을 찍기 전에 먼저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기를 권유했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본 뒤 내 느낌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 기념관은 3층으로 되어 있고 동관, 서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피폭자의 유품 및 피폭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 등이 전시돼 있었고 히로시마의 피폭 전후 모습이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박물관을 구경하러간 심정으로 한곳한곳을 거닐다 발을 멈추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그처럼 참혹한 모습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마음이 흔들리고 하염없는 오열을 느꼈다. 둘러보는 것을 포기하고 건물 앞 공원 벤치에 스탭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앉아 있는 나를 추스리려 노력했다. 제정신을 차린 뒤 스탭들 앞으로 돌아가자 그들은 내게 무엇을 느꼈는지, 오늘 촬영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이런 것들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어요. 그러나 장소 섭외를 했으니 찍어야겠지요. 제게 조금 시간을 주세요.” 그러자 뜻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중요한 건 당신의 감정 상태지요. 장소 섭외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다른 날 찍지요. 오늘 촬영은 더이상 하지 맙시다.” 모든 스탭들은 별 반응없이 그날 촬영을 접었다. 나는 나의 기대와 예상과 다짐과는 어긋나게 첫날 촬영을 망쳐버렸다.

그날 저녁 감독, 조감독, 통역, 나 이렇게 넷이 만나서 나의 느낌과 내일 촬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도 혼돈에 빠져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독은 내일 촬영할 부분에서 내가 받게 될 편지 한통을 건네주었다. 내용은 피폭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십여년이 지난 뒤 죽은 자식에게 보낸 편지였다. 나는 한번 얼핏 본 뒤 내일 현장에서 읽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좋습니다. 나도 여기 대응할 히든 카드(?)를 내일 보여드리지요. 이 영화가 명작이 될지 졸작이 될지는 내일 촬영 뒤에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고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촬영을 접었다는 자책보다 더욱 나를 괴롭힌 것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시나리오에 간단히 적혀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이 영화에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는가, 라는 문제였다.

다음날 촬영장에서 나는 밤새 고심하며 준비한 ‘스와 감독께’라고 적혀 있는 편지 한통을 내놓았다. 촬영의 진행 방식은 그랬다. 모든 주어지는 상황을 내 느낌대로 표현해 나갔고 그 반응들 위주로 감독은 매일 밤을 새워가며 시나리오를 조금씩 고쳐 나갔다. 어느덧 내겐 실제의 나로서 연기하고 스탭들과 토론하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처음 감독이 내게 말한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즐거운”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디지털로 작업을 하니 부수적인 준비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준비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촬영시간을 배우가 자유롭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활용할 수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 나와 스와 감독은 40여분이 넘게 연기하곤 했다. 그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디지털이 갖는 무례함(?), 다시 말해 카메라가 끝없이 배우를 쫓아다니며 나의 치부까지 포착하는 작업 방식에서 받은 상처를, 디지털영화가 지닌 또 다른 언어로 치유할 수 있었다.

연기자를 뛰지 않게 하는 미덕이란

일주일이라는 촬영기간이 촉박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모든 것이 수월히 진행된 덕분에, 그리고 많은 준비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기에 나는 기대 밖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는 큰 프로젝트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합리적인 작업 방식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먼저 시간을 쓰는 요령. 정말 한치의 착오도 없었다. 식사시간, 촬영시간, 토론시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지켰다. 예를 들어 한회의 촬영이 끝나고 다음 촬영까지 1시간이 남는다면,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며 약간의 시간이 내게 남는다. 이들은 나를 차 안에 방치해두지 않는다. 어느 배우의 해외 작업 경험은 내게도 와 닿는다. “우리 영화를 찍다 보면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혹시 내가 거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근 구멍가게 화장실 빌려쓰고 길거리에서 벽에 기대어 도시락 먹고….” 그는 할리우드 프로덕션이 배우의 정상 조건을 확보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히로시마에서 온 편지>의 팀에는 배우를 위한 배려 공간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차에서 옷을 갈아입게 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촬영이 끝나고 다음 촬영지로 가기 전 나를 어김없이 호텔로 데려가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히고 단 10분이라도 현장을 떠나 쉬게 했다. 내가 아는 배우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연기를 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들다고. 연기자란 기다림의 직업이라고. 그리고 그 기다림을 잘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되묻게 된다. 그것이 정말 미덕이란 말인가? 내가 사는 동네(가회동)에서는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촬영이 이루어진다. 우리집 창가를 통해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우리집 앞에 배우들이 와서 촬영을 위해 몇 시간씩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스탭들이 촬영 준비를 마치고 소리지른다. 빨리 누구누구 오라고 해! 하루종일 기다리며 연기를 위해 긴장하고 있는 배우로 하여금 단 몇 미터를 천천히 걸어나오게 해주지 않고 뛰게 만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연기를 위해 집중한 것, 저렇게 뛰어가다 다 까먹지.” 때때로 나 역시 촬영장에서 주변의 어수선함과 소란 때문에 홀로 구석에 가서 그 소란함에 무디어지려고, 연기에만 집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것이 오히려 연기보다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스와 감독의 현장에서 시스템에서 줄 수 있는 배려를 충분히 받았다. 그것은 그리 많은 경비가 드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세심하고 꼼꼼한 일 처리와 존중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스와 감독의 스탭들은 모두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스와 감독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촬영 현장에서는 스와 감독과 통역자의 소곤거리는 말 소리밖에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고요와 민첩성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눌리지 않고 때로는 카메라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준비한 동선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나의 자세하지 않은 동선을 보며 삽시간에 모든 세팅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이 좀 무리한 요구라 느껴져도 당황하는 일없이 최대한 내가 연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상황에 대처해나갔다. 한편 나의 연기에 대한 감독의 주문은 아주 정확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길거리를 걸어오는 장면이 있으면, “사람들의 걸음에 맞추어 걸으면 빨라서 카메라로 잡을 수 없고 너무 천천히 걸으면 어색하게 보이니 빠르지 않게 천천히 사람들과 적당히 톤을 맞추어 걸어오세요”라고 지시했다.

국적 다른 사람들이 아닌 그저 한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과 미소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스탭 중 가장 연세가 많은 한분은 내게 “서로의 교류에 있어 언어는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한국말로 말해라. 나는 일본말로 대답할 터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실제로 내가 식사하셨어요, 라고 한국말로 여쭈어보면 네 식사했어요, 당신도? 라고 일본말로 대답했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는 빙그레 웃곤 했다. 스와 감독 역시 어느 날 촬영을 끝내고 이런 말을 했다. “오늘 호정씨가 한국말로 연기하는 것을 보다가 문득 호정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우리는 서서히 국적 다른 배우와 스탭이 아닌 그저 한팀이었다. 촬영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드디어 모든 촬영을 마치고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공항에서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들의 사인과 말 한마디씩이 담긴 롤링 페이퍼를 선물로 받았다. 내 주변을 둘러싼 그들을 보며 나는 말했다. “여러분과 작업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슬픕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느 곳에서 어떤 작업을 하든지 관심있게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느낀 소중한 기억들을 언제나 간직하겠습니다.” 그들은 내 모습이 보일 때까지 끝까지 출국장 구석 벽에서 머리를 내밀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한편의 영화를 찍기 위해 히로시마에 다녀왔지만 그들과의 작업과 히로시마는 마치 두고두고 기억될 특별한 하나의 ‘여행’으로 내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 배우 김호정이 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제작기

▶ 스와 노부히로 감독과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