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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캥거루 연대기' 코로나19 속 흥행 선전

공산주의 캥거루가 1인 예술가를 만났을 때

<캥거루 연대기>

지난 3월 5일 개봉한 <캥거루 연대기>는 나흘 만에 관객 37만5천명을 불러모았고 개봉주 독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대성공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다음주 코로나19 여파로 관객수가 줄면서 9만명을 기록했고, 곧 코로나19 확산 방지 조처로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2주의 상영기간 동안 총 54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캥거루 연대기>의 원작은 베스트셀러다. 마크 우베 클링이 2009년부터 팟캐스트와 민영 라디오에서 방송하다가 인기를 끌자 책으로 냈다. 정치풍자개그에 끌린 젊은이들의 인기를 얻어 2018년까지 네권의 책으로 출판되었고, 2018년 10월에 영화 제작에 들어갔으며, 원작 작가인 마크 우베 클링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은 말하는 캥거루다. 캥거루가 영화의 동선을 이끌며 관객을 기이한 상황으로 끌어들인다.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이 캥거루는 자칭 공산주의자다. <캥거루 연대기>는 현재 독일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퍼져가는 극우 신드롬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겨냥한다. 유머와 너스레로 가차없는 비판을 쏟아붓는 캥거루를 통해 현 세태를 되돌아볼 수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은 1인칭 화자이자 이 이야기의 창조자인 마크 우베 클링 자신이다. 그는 베를린에서 작은 무대를 전전하는 개그맨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등장한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 현관문을 열어보니 사람만 한 캥거루가 서있다. 팬케이크를 만들려는데 밀가루 좀 빌려달란다. 이렇게 캥거루와 처음 만난 마크 우베는 경찰에 쫓기는 캥거루를 숨겨주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동고동락한다. 캥거루에게 마크 우베는 1인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캥거루는 자신의 동거인에게 위트와 유머 넘치는 신랄한 비판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영화는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베를린의 크로이츠 베르크 공원을 매입해서 애국주의를 상징하는 기념물을 설치하려는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건축업자와 네오나치, 주인공들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다.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독일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원작의 섬세한 면이나 정치적인 통렬함은 떨어지지만 단순한 소동으로 그린 용기는 칭찬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보기 드문 언어의 재치로 무장한 이 영화는 나치와 평균적인 외국인 혐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보여준다. 귀엽게만 생기지 않은 캥거루 실사 애니메이션도 성공적이다”라고 했다. <캥거루 연대기>는 오는 4월 24일에 열릴 독일 영화상에서 특수효과와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로 올랐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관에서 상영을 이어갈 수 없게 됐지만 현재 아마존 스트리밍과 DVD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