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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적인 캐릭터의 코믹액션물 <신종횡사해>(<오우삼의 미션특급>)
2002-05-08

`오버`는 힘이 세다

컬트가 ‘일정 소수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여기에 한 가지 조건사항을 달면 더 금상첨화다. ‘악조건 속에서도 일정 소수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오우삼이 바다 건너가서 제일 처음 한 것은 극장용 영화보다도 TV영화였다. 그것도 미국이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합작품이었다. 미국의 20세기폭스와 캐나다의 알리안스가 합작한 이 작품은 <신종횡사해> 또는 <오우삼의 미션특급>(Once a Thief)이었다. 오우삼이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 <종횡사해>(Once a Thief)하고는 남자 둘 여자 하나라는 설정 빼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코믹액션물이었다. 알리안스에서는 이 액션물을 TV시리즈화하기로 결정했고, 단 한개 시즌으로 끝나고만 불행하고도 귀여운 24편짜리 시리즈가 바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신종횡사해>(<…미션특급>)이다.

의 ‘쥐새끼’ 크라이첵, 니콜라스 리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리즈를 처음 봤는데, 정말 폭탄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설프고, 좋은 말로 오버액션 까고 말해 후까시, 뭔가 나사빠진 듯한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런데도 보다보니 점점 중독이 되기 시작했다. 안 보면 섭섭하고, 보면 어이없다. 이 기기묘묘한 조화는 도대체 무엇일까?

<신종횡사해>는 일종의 캐릭터 잔치다. 한때는 홍콩 갱단에 있었다가 이제는 범죄자를 소탕하는 비밀기관에서 일하는 맥, 맥의 옛날 애인이었던 리안, 리안의 지금 애인인 전직 경찰 빅터. 그리고 이 셋을 총괄하는 국장(KBS에서는 부장), 이렇게 넷이 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신종횡사해>에 등장하는 뜬금없는 악당과 어설픈 비밀기관은 전부 만화적이고 극단적이다. 보다보면 ‘깔깔깔 웃기보다는 푸훗- 하고 웃는’ 일이 비일비재한다. 매번 사건마다 허를 찔러댄다. 무기가 없는 가난한 테러리스트는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싸운다. 스너프필름 찍으려고 쇼걸 불렀는데 그 여자 데리러 오는 부하들이 안 오자 그 악당 왈, “왜 불렀는데 안 오고 지랄이야!” 어떤 가족(입양아 포함)은 도둑질하는 것을 가족애로 알고 살아가고, 아버지 뒤를 이어 조직 대부가 된 10대 망나니는 그저 멋져보이려고 다른 갱단을 박살낸다. 이 막나가는 시리즈를 보면 캐나다가 본래 이런 나라였나, 싶다. <신종횡사해>는 말이 코믹액션이지, 24편 중에 실제로 총을 총답게 쓰는 에피소드는 반이 채 되지 않는다. 모 성우의 표현대로 ‘쟤들은 총은 안 쏘고 이빨만 까나’ 싶다. 액션보다도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들의 향연과 대책없는 패러디와 ‘변태국장’의 기행과 오버액션이 이 시리즈를 만들어나간다.

이제 케이블의 <신종횡사해>와 KBS <…미션특급>의 차이에 대해서. <…미션특급>은 출발부터 순탄치 못했다. 이승연의 출연 불발로 펑크난 드라마(이름 잊어버림) 시간을 메우려고 월·화요일 10시에 방영한 것은 정말 사건이었다. 그 화려한 출발 이후로 수요일 밤 12시20분이라는 심야시간을 지킨 <…미션특급>은 정말로 컬트로서 역할을 다했다. <…미션특급>의 우리말 성우진은 환상적이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기반으로 딱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한 성우진의 화려한 말발은 정말 특급이었다. 구자형, 오세홍, 정미숙의 3자 플레이에 성병숙의 카리스마 넘치는 ‘변태국장’의 압도감은 매 주일을 즐겁게 했다. 우리말이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마치 우리말을 위해 만든 드라마 같았다. 연륜 쌓인 성우들이 토해내는 오버액션은 그 자체로 감격이었다. 캐릭터에 딱 맞는 목소리의 향연, 이것 때문에 이미 케이블로 본 <신종횡사해>임에도 <…미션특급>은 수요일 심야를 손꼽아 기다리게 했다. 어떤 영화는 어설픈 면을 우리말 녹음에서 다 보완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션특급>은 보완 정도가 아니라 빛이 나게 했다. ‘웬수버러지 마이클과 빙신졸개’들이 우리말 옷을 입고 나자 ‘캡샤프 마이클과 2류 졸개’들로 격상한 것은 정말 쇼크였다.

<신종횡사해>가 정말로 컬트라는 확신이 든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광적인 소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자기 인생의 중심으로 들어오며 크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닌데도 열심히 챙겨보는 자신에게 놀라는 순간을 경험케 하기 때문이다.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워했지만 사랑한다고 느끼지는 않았는데, 톰 웨이츠의 이 흘러나오는 KBS판 마지막회를 보면서 그 오밤중에 울 뻔했다. 이것이 정녕 이별이란 말인가? 이렇게 혼자 사랑하고 혼자 보내면서 혼자서 쇼하며 아파하는 게 컬트라는 것일까? 그러나 컬트는 혼자가 아니다. 종영한 지 오래인 이 시리즈 홈페이지를 아직도 운영하는 사람 중 하나가 “캐나다의, 캐나다를 위한, 캐나다에 의한!”이라고 자부심과 사랑이 넘쳐 커다랗게 써붙인 것을 본 순간은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이것이 오버액션의 힘이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