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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우리' 이난 감독 - 알려지지 않은 시민운동가의 현재를 보여주는 영화
배동미 사진 백종헌 2020-05-30

“이전 영화들은 자의식이 강한 감독의 결과물이었었다.(웃음)” <테우리>는 비선형적인 독립영화를 작업해온 이난 감독이 만든 가장 친절한 영화다. 민주화 세대의 현재와 과거를 재현한 극영화 <테우리>는,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두환을 연기한 배우 서현우가 국가폭력의 피해자 짱구를 연기해 삼촌의 시민운동 동지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을 민주화 세대에게 발견할 수 있는 징후들을 섬세하게 살펴보고, 과거사를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영화적 시도는 일찍이 이난 감독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어쩌면 그것은 “딸에게 과거 사건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영화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진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넘나들면서도 “제일 재밌는 건 영화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신작을 부디 많은 관객들이 알아봐주고 이야기해주길. 여기 이난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이난 감독

-전작 <비치하트애솔>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기이한 끌개>란 작품으로 트리트먼트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CF) 극영화 제작 지원을 받았는데 잘 안 써졌다. 고민하던 중에 <테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번뜩 떠올라 2015년 트리트먼트를 쓰고 2016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른바 남영동 이야기인 <테우리>를 영화화하고 싶었던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 또래 감독들이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하지 않았다. 시민운동가 중 많이 알려진 이도 있고 아닌 이도 있는데 나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과거 학생 운동을 했나.

=나 자신은 운동권에 몸을 담은 적이 없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끝나고 집에 갈 때마다 항상 밤마다 아주대학교 학생들과 전경들이 길에서 항상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고는 풍경을 익숙하게 봤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에는 투석전과 시위에 참여하긴 했다.

-직접 각본을 썼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도록 정교하게 각본을 설계했다. 장르적 쾌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테우리>는 과거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영화다. 과거의 사건을 영화 안에 잘 배치해야 잘 이해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세대에게 익숙한 얘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효과적인 전달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스릴러라는 형태가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영화의 시간을 대과거, 과거, 현재로 나누고 이들을 조합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국가폭력의 가해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데, <테우리>는 가해자 차 형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다.

=어렸을 때 겪었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 들어선 뒤 과거가 소환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 생겼던 ‘명박산성’(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 측이 컨테이너 박스 용접해 광화문 도로를 막은 것을 두고 시민들이 '명박산성'이라고 이름 붙였다.-편집자 주)이 그것이다. 당시 청계천에서 딸아이를 목말 태우고 산책하고 돌아가는 길에 전경들에게 저지당했다.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중·고등학생때 많이 봤던 풍경이었다. 목말 태운 아이의 다리를 꽉 잡고 양쪽을 둘러봤는데 육체적인 감각으로는 10분 뒤에 투석전이 일어나고 최루탄이 오갈 것 같은 느낌이 훅 끼쳤다. 공포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왜 겁을 먹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과거사적 인물이 다시 나타나는 일들이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김기춘 전 검찰총장이 다시 나타나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했다. 나는 과거를 다시 불러내는 사람들을 차 형사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이난 감독

-어느 날 짱구, 복순, 장 반장, 김 선생에게 편지가 도착하는 도입부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궁금하다.

=짱구, 복순, 장 반장, 김 선생은 각자 조금씩 다르게 과거를 다르게 생각하거나 망각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물리적인 억압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후유증으로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내가 아이를 목말 태우고 시위 한가운데 있을 때 느꼈던 공포감이었다. 20년 전에 느꼈던 공포감이 한순간에 돌아오는 것처럼, 편지를 통해서 공포와 기억이 다시 나타나길 바랐다. 그리고 짱구라는 캐릭터가 연관된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결국 본인 안에 있던 후유증까지 깨볼 수 있길 바랐다. 그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이 차 형사라면 좀 더 극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두환을 연기했던 서현우가 국가 폭력의 피해자 짱구를 연기한다.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에 마련된 ‘독립영화인의 밤’ 행사에서 배우 서현우를 만났는데 이렇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하게 되어서 신기하다. 우리 둘끼리는 되게 신기하고 놀랍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테우리> 시나리오를 매니지먼트사에 보낸 상황이었는데 배우가 읽은 상태였고 꼭 하고 싶다고 하더라. 다만 일정 때문에 서현우를 6개월 기다려서 촬영에 들어갔다.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데, 영화의 처음과 끝에 제주 들판을 뛰어다니는 말을 슬로우모션으로 담은 장면이 있어서 관객의 숨통이 트이게 한다. 영화의 서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어떤 무드를 만들어낸다.

=군 생활을 제주도에서 했다. 군 생활하면서 과거 있었던 4.3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테우리> 시나리오에서 대과거에 속하는 이야기는 6살 미취학 아동인 춘배가 제주도에 살면서 할아버지와 겪었던 일에 대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겪은 4.3사건이 춘배에게 무의식적으로 전도됐고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의 춘배는 말을 돌보는 테우리라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설정을 입혔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말과 제주도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과거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관객과 그 시대를 통과한 중년 중 누구를 주요 관객으로 삼고 영화를 만들었나.

=첫 번째 관객은 딸이다. 과거 시민운동이 있었다는 걸 딸에게 얘기하지 못했다. 아마 내 안에 검열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딸이 종종 “아빠는 왜 내가 볼 수 없는 영화만 만드느냐” 질문하곤 했다. 그동안 나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화만 만들어왔다. 전작 <평범한 날들>은 15세 관람가였는데 당시 아이가 어려서 못 봤고, 그 이전 영화들은 보편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이야기의 구조이거나 영상이 중심인 형태였다. 자의식이 강한 감독의 결과물이었었다.(웃음) <테우리>와 같이 아이가 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서 기쁘다. 아이가 볼 수 있으면, 내 부모 세대도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딸은 이제 몇 살이 되었나.

=중학교 3학년인데 <테우리>에도 출연한다. 장 반장에게 돈 달라고 따지는 어린 소녀가 딸이다. <테우리>가 12세 관람가를 받아서, 자신도 볼 수 있다고 좋아한다.(웃음)

-차기작은 무엇인가.

=차기작 생각보다 <테우리>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됐으면 하는 바람이 훨씬 크다. 영화제를 통해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고, 개봉도 했으면 좋겠다. 한명의 감독이 꾸준히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혹은 ‘내 방식이 옳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모두 지나왔다. 그 사이 아이가 생기기도 했다. <테우리>란 영화를 통해 나의 영화 세계가 다른 단계로 나아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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