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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아홉 손가락의 피아노 - 닐스 프람 <Empty>

독일의 피아니스트 닐스 프람은 친구 베누아 트루몽드와 만드는 단편영화 <Empty>의 음악 작업에 한창이었다. 큰 산은 넘은 상태였고 곡도 어렵지 않게 나왔다. 그런데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던 그 시점에 사고가 났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높은 침대에서 내려오다 부상을 당한 것. 그것도 왼손 엄지손가락이 부러지는, 피아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인 사고였다. 하고 있던 모든 작업은 중단됐고 의사는 당분간 피아노를 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과 강제된 휴식 가운데에서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홉 손가락으로만 연주한 피아노 음반을 만들어보자.’

2012년 발표된 그의 솔로 피아노 앨범 《Screws》는 트랙 리스트에서부터 당시 상황을 짐작게 한다. ‘도’부터 ‘시’를 제목으로 한 7곡이 나란히 담겨 있는 걸 보면 그는 아마도 피아니스트로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그때, 가장 기본이 되는 무언가를 떠올렸으리라. 초심으로 돌아가 불편한 손으로 한곡 한곡 써내려가며 그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치유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아홉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이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독특한 사운드를 듣고 많은 음악 팬은 환호했고, 결과적으로 이 음반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뻔했던 《Empty》의 존재는 닐스 프람이 보내는 강력한 응원가가 되어 돌아왔다. 갑작스런 사고로 중단해야 했던 프로젝트가 8년이 지난 지금 전 지구적 위기 상황과 맞물려 의미를 되찾았다고 해야 할까. 앨범은 그 자체로 그가 겪었던 불행과 행운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각자의 ‘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노이즈 반, 피아노 소리 반으로 믹스한 사운드에 귀를 맡기다 보면 텅 빈 공간에 홀로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여기서 숨을 고르고 가라고,당신의 아홉 손가락이 만들어낼 앞날을 기대해보라고, 닐스 프람은 《Empty》를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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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프람 《Felt》

모직이나 털을 압축해 만든 부드러운 천을 뜻하는‘펠트’는 닐스 프람의 음악을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말로, 그가 만든 특유의 사운드를 ‘펠트 피아노’(Felt Piano)라고도 한다. 피아노 소리를 작게 내고자 할 때 가운데 페달을 밟는 것에서 착안, 해머와 현 사이에 천을 끼워 달그락거리는 해머 소리는 키우고 타건의 세기는 약화시켰다. 피아노의 세계를 확장시킨 기념비적인 앨범.

팻 메시니 & 라일 메이즈 《As Falls Wichita, So Falls Wichita Falls》

ECM의 대표 뮤지션 팻 메시니가 얼마 전 타계한 그의 오랜 파트너 라일 메이즈와 함께 1981년에 만든 앨범. 광활하고도 황량한 풍경을 잘 포착한 커버 이미지가 압도적 스케일의 음악과 어울려 시너지를 낸다. 특별한 앨범 커버로 ECM의 가치를 올리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이 사진의 작가는 닐스 프람의 아버지 클라우스 프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