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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의 <데드 맨>이 보여주는 ‘미국 개척 신화’에 대한 냉소와 비판

<데드 맨> Dead Man 감독 짐 자무시 / 상영시간 121분 / 제작연도 1995년

한장의 사진이 일주일째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아스팔트에 엎드린 한 흑인의 목을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는 사진이다. 흑인은 백인의 무릎에 깔린 채 9분 가까이 바둥거리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저 폭력성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한참을 자문했다. 어쩌다 돌연변이처럼 자라난 한 개인의 특별한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제복을 입은 백인이 별 생각 없이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한 사회의 내재된 폭력성 때문인지…. 불현듯 짐 자무시의 <데드 맨>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영화가 이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턴에 의한, 웨스턴 신화의 해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영화를 발표할 당시 자무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거의 유일한 미국의 독립영화 감독이었다. <천국보다 낯선>(1984)으로 전세계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게 된 이후로도 자무시는 상업영화 제작 시스템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제작 방식을 고수해갔다. 그런 그에게 미국의 언론과 평단은 대부분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단번에 둘로 갈라진다. 소수의 열렬한 지지와 다수의 혹평 또는 비난. 영화를 보고 나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해외의 반응과 대조를 이루던 미국 내 반응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기차를 타고 여행 중인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의 모습이 보인다. 동부 클리블랜드 출신의 회계사인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서부의 한 도시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러나 긴 여행 끝에 도착한 회사에서 그는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퇴짜를 맞는다.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그녀의 전 애인을 총으로 쏘아죽이게 된다. 그 역시 총상을 입은 채 허겁지겁 도망쳐 나오지만, 이내 현상금이 걸린 채 쫓기는 신세가 된다. 황야에서 ‘노바디’(게리 파머)라는 한 인디언이 기절한 그를 구해주는데, 그의 몸에서 총알을 빼내진 못하고 임시방편의 치료만 해준다. 이후로, 두 사람은 추적자들을 피해 거친 산과 황야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건을 겪는다. 그러다가 윌리엄이 다시 백인이 쏜 총을 맞고 쓰러지자, 노바디는 그를 배에 태워 인디언 마을로 데려간다. 거기서 그의 장례를 준비하고, 다시 카누에 태워 바다 멀리 띄워 보낸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웨스턴‘ 장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세기 미국 서부가 배경이고,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있으며, 잦은 총싸움이 있다. 또 웨스턴의 주요 공식 중 하나인 황야에서의 이동이 있고,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는 여인이 있으며, 인디언과 보안관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그럴듯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웨스턴의 본성과 목적을 하나씩 배반해간다. 보통은 극악무도하기 마련인 현상범은 총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고, 야만과 미개의 상징인 인디언은 다정하고 현명하며, 모든 총싸움은 어설프기 그지없다. 또 활기 넘치는 백인들의 도시는 알고 보면 소, 말, 돼지가 함께 뒹구는 더러운 진창이고, 인디언들은 백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문명을 이루며 조용히 살고 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웨스턴 장르의 근간인 ‘미국 개척 신화’에 대한 철저한 냉소와 비판이다. 마치 영화 자체가 개척 신화의 허상을 드러내기 위해, 혹은 감독의 말처럼 “미국이 대량학살을 통해 세워진 나라”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백인들은 더없이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폭력적이다. 그들은 도시에서나 황야에서나 끊임없이 서로를 배신하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총을 겨누며, 심지어 서로를 죽여서 먹기까지 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야만인들인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인디언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는데, 인디언의 멸종을 위해 그들의 식량인 버펄로를닥치는 대로 쏘아죽이기도 하고, 일부러 오염된 담요를 팔아 천연두와 결핵 같은 질병을 퍼뜨리기도 한다.

사이키델릭 웨스턴 혹은 죽음으로의 긴 여로

영화의 제목을 번역하면 ‘죽은 사람’이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이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라는 걸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하게 흘러가면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한편으로 총상을 입고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죽은 이의 영혼이 떠돌며 겪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다. 후자와 관련해 여러 단서들이 있다. 영화 전반, 노바디가 주인공에게 “자네를 죽인 백인을 자네가 죽였나?”라고 묻자, 그는 웃으며 “나 안 죽었어요”라고 답한다. 영화 후반, 노바디는 신성한 환영을 보게 해주는 약초를 먹고 주인공을 바라보는데, 그의 얼굴이 순간 해골로 변해 나타난다. 또 숲속에서 총을 맞고 죽은 새끼사슴을 발견한 주인공이 그 곁에 똑같은 모양으로 눕는 장면은 죽은 사슴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무시 스스로도 이 영화를 ‘사이키델릭 웨스턴’이라 불렀다. 환각적 혹은 몽환적 이야기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뜻이다. 사실, 영화의 성격과 더 깊은 관련을 맺는 시인은 주인공과 동명이인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아니라 영화 맨 처음에 인용되는 앙리 미쇼다. 미쇼는 평생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닌 유랑의 시인이자 화가이며, 인간 내면의 심층을 탐색하기 위해 환각제인 메스칼린을 복용하고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중간 노바디가 먹는 약초도 북미 인디언이 종교의식을 위해 섭취했던 메스칼린이다.

어찌됐건, 영화의 내용은 그 자체로 죽음으로 가는 긴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이건, 이미 죽은 사람의 이야기이건, 영화는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가는 한 영혼의 쓸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직 사후 세계에 이르지 못한 영혼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돌듯 산과 황야를 떠돌다가, 마침내 전령(노바디)의 안내를 받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다. 여기에, 다양한 전설과 신화에서 가져온 모티브들이 뒤섞인다. 자무시는 인디언 전설을 블레이크의 시구로 변형해 삽입하기도 하고, 그리스 신화의 일부를 차용하기도 한다. 특히 노바디가 젓는 배를 타고 주인공이 강을 따라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은, 뱃사공 카론이 젓는 배를 타고 아케론 강을 건너 죽음의 세계로 이르는 그리스 신화의 한 부분을 상기시킨다.

사족. 영화에서 노바디가 끊임없이 내뱉는 ‘멍청한 백인들’이라는 대사를 듣다가 자무시의 <미스테리 트레인>(1989)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미국 남부 소도시 멤피스, 엉망으로 술에 취한 세 친구가 사고를 치고 낡은 호텔방에 숨어들어 있다. 그중 흑인 한명이 신세를 한탄하며 “백인 머저리 둘하고 이런 데 숨어 있다니!”라고 소리치자, 백인 한명이 정색을 하고 응수한다. “한번만 더 인종 운운하기만 해봐. 누군 백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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