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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시네마가 낳은 거장, <비지터Q><고로시야 이치>감독 미이케 다카시
2002-05-10

“나는 아웃사이더, 훌륭하지 않은 것들이 좋다”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가 낳은 거장이다. 조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고등학생이 자신의 친위부대를 이용하여 야쿠자들과 싸우는 황당무계한 액션영화 <후도>로 시작하여, 영화판의 규칙을 지키면서도 모든 상식과 질서를 뛰어넘는 도발적이고 의미심장한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미이케 다카시는 카오스 그 자체이면서도, 결코 혼돈의 늪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미이케 다카시는 한계를 돌파하며 성장하고, 또 자신의 획기적인 스타일을 만들고 발전시켜왔다. 최종심급은 환경이 아니라, 결국은 감독 자신인 것이다. 이제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으로서, 일본 젊은 감독들의 ‘꿈’이자 ‘목표’가 된 미이케 다카시는 여전히 V시네마를 만들고 있다. 가끔 대작을 만들기도 하고, TV드라마도 만들지만 V시네마를 외면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V시네마는 비디오용 영화이기 이전에, 엄연한 영화이니까.

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에는 무엇을 했나.

나는 오사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때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했지만(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폭주족이었다는 말도 있다) 대학의 부속고등학교여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것도 싫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요코하마로 가서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에 들어갔다. 그 학교는 전문적인 것을 가르치지만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영화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여튼 학교를 마치고 놀고 있는데 한 TV 방송사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조감독으로 10년간 일했다. 그러면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조감독도 하고. 그러다가 <후도>로 데뷔를 했다.

<후도>를 만든 곳은.

재팬 홈비디오라는 곳이다. 완전히 비디오만 제작하고 배급하던 회사다. 당시는 버블경제 시기라 엄청난 돈이 사방에 굴러다녔다. 사람들은 돈이 수중에 있으면 무언가 만들어보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회사도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옛날 감독들을 만나니, ‘영화란 어쩌고 저쩌고’ 말이 많고, 일단 사람들끼리 가까워져야 하는데 사귀기도 힘들고 해서 아예 젊고 재기있는 감독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발탁됐다.

V시네마에 거부감은 없었나.

나는 처음부터 TV드라마로 시작했다. 드라마를 찍으려고 스튜디오에 가면, 영화쪽 사람들도 와서 영화를 찍고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1, 2류가 정해졌다. 영화는 1류이고, TV는 2류다. 분명하게 차별과 편견도 있었고, 드라마를 찍던 사람들은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었다. 드라마를 만들면서 보니까, 영화쪽 사람들은 늘 여유가 있었고 우리는 뭔가에 쫓기듯 조급했다. 식당에 가도 영화쪽 사람들은 막 떠들며 놀고 있고, TV쪽 사람들은 조용히 밥만 먹고 나갔다. 그때,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되돌려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당신은 V시네마로 출발하여,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

당시 일반적인 V시네마의 제작비는 4천만엔 정도였다. 1만개 정도만 팔면 이익이 남았다. 특정한 관객을 대상으로 창구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오히려 극영화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V시네마가 좋고, 지금도 여전히 찍고 있다.

지금도 드라마와 V시네마와 영화를 모두 만들고 있다. 매체에 따라, 연출 방향이나 스타일 같은 것이 바뀌는가.

주변 환경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 나에게는 똑같다. 늘 같은 기분으로 시작하고, 같은 스탭으로 일한다. 물론 극영화를 찍을 때 35mm로 찍고 스탭의 숫자가 많아지면, 그들을 인솔해야 한다. 그런 게 피곤한 정도다.

드라마에는 표현의 제약이 있지 않나.

TV보다 오히려 극영화가 더 제한이 많다. R12, R18, 이런 식으로. TV는 시청률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TV시청률이 올라간다면, 은밀하게 와서 말한다. 더 과격해도 좋다고.

데뷔작인 <후도>는 거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용도 그렇고, 액션도 과거의 닌자들을 환생시킨 듯한 기발한 발상의 연속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아름다운 배경,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그런 영화를 찍으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는 언제나 흐름 속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였다. 나는 그런 게 마음에 들고, 세상에는 훌륭한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소개되는 것은 이를테면 오락의 시간이다. 사람들이 많은 훌륭한 영화를 보고 지쳤다가 내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그러다 싫으면 일어서 나가버리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받을 때 꼭 그런 즐거운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리 가게 된다.

최근에 꼭 하고 싶었던 영화가 있는가.

<고로시야 이치>. 그런데 어떤 영화에 대해서, 내가 꼭 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면 주변에서 다들 ‘그런 거 하고 싶었구나’라는 식으로 보는 게 싫다. 곧 방영할 <사부>란 TV드라마를 만들었다. 야마모토 슈로 원작의 드라마인데, 폭력은 하나도 없고 우정만 있다. 그래서 더욱더 의미가 있다. 꼭 뭔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여러 작품들 속에서 나의 생각,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좋다. 나는 관객의 생각 같은 것은 모른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서로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이는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오히려 말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의 상처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욱 크다. 내가 보여주는 폭력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관객이 보기 바란다.

V시네마가 나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요즘 V시네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V시네마에 실망하고 있다. 자유롭게 저예산으로 연간 수십, 수백편씩 만들어지는데 10여년간 그 누구도 주어진 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작품을 봐도 상식을 뒤엎을 만한 작품이 없다. 그런 기회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이제 와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V시네마의 제작 환경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을 못 썼다. 인재 양성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영화인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부딪쳐서, 전혀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영화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기를 원한다.

상식을 뒤엎을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V시네마는 대단히 자유로운 영화다. 만들 때 정신적인 프레셔도 거의 없다. 그런데 노력이 부족했다. 야쿠자영화가 히트치면, 모두 따라갈 뿐이다. 이야기나 주연이 천편일률적이라면 조연이라도 튀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발상이 없다. 애니메이션이나 미국영화를 보면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한 사람보다는,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사람이 하나에 몰두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눈에 띄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도 그런 게 필요하다.

부천영화제에 소개된 <비지터 Q>는, 원조교제, 가정폭력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정말로 기발하게 풀어간다. 당신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나.

시나리오를 받으면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세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림, 영상으로 그걸 해석한다. 읽으면서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른다. 얼굴 표정이나 구두의 색깔 같은 것들까지.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내 머릿속에는 영화가 완성되어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도 그런 건 재미없다는 느낌이 조금씩 든다.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처음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간다. 끝나면 영화 두편이 나온다. 머릿속 한편, 실제 영화 한편. 나는 영화를 찍는 게 일종의 축제의 기간이다.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일본영화를 보는가.

감독이 된 뒤 거의 보지 않는다. 뭘 찍는지도 모르고, 영화를 보는 것도 별 재미가 없다. 뭐 전야제라도 하면서 놀자 분위기라면 즐기기 위해서 갈 생각이 있지만. 영화를 보는 건 해외영화제에 가서다. 일본말밖에 모르니까, 일본영화만 보게 된다. 그래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보다가 ‘구로사와 기요시가 이렇게 무서운 영화를 찍다니!’ 하면서 놀란다. 요즘에는 영화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좋은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스탭은 프로여야 하지만, 감독은 아마추어도 할 수 있다. 그게 더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타노 다케시처럼.

V시네마의 자유로움이 지금도 당신 작품에 관철되고 있는가.

그렇다. 그런 영향은 계속된다. 지금 생각하면 제약이 많은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극단적인 제약하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 안에서 어떻게 표현을 할지 생각하다보면 그것 역시 한없는 자유가 있다. 폭력의 경우, 때리지 않아도 그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그걸 생각하다보면 어딘가에 다다르는 것이다.

신작인 <고로시야 이치>는 어떤 영화인가.

야마모토 히데오 원작의 만화인데, 원본에 충실했다. 애정도 크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겠다는 생각도 있다. 이 만화는 역 근처의 서점에서 언제나 열어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그런 책들에는 건전한 책도 있고, 도움이 되는 책도 있고, 폭력적인 책도 있고, 때로 독이 되는 책도 있다. <고로시야 이치>에 독이 있다면, 원작자가 독을 집어넣은 부분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 ‘내 원작과는 다르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원작의 작품성을 살리고, 내 작품성도 살리는 것이다. 관객에게도 그런 점을 말하고 싶다. 서점에서 잠시 책을 들춰보는 것처럼, 보고 싶으면 와서 편하게 봐라. 보고 느껴라. 도쿄=글 김봉석/ 영화평론가·사진, 진행, 통역 김준모▶ B급영화광 김봉석, 일본 V시네마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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