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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③] '정말 먼 곳' 박근영 감독 - 이미지로 쓴 시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0-12-08

“공간에서 이미지를, 그리고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2020’ 선정작인 <정말 먼 곳>은 화천에 자리 잡은 한 유사 가족의 삶을 응시한다. 서울에서 겪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지친 진우(강길우)는 딸 설이(김시하)와 함께 화천으로 이주한다. 양떼 목장에서 일하는 진우의 삶이 안정될 즈음 그의 연인 현민(홍경)이 화천에서 시 강의를 시작하고, 행방이 묘연했던 진우의 동생 은영(이상희)이 갑작스레 찾아오면서 진우의 일상에 큰 파장이 인다. 박근영 감독은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된 화천을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공간”으로 정의한다. “지인 방문차 자주 들렀는데 서울이랑 굉장히 가까운데도 외국처럼 낯설게 느껴지더라.”

박근영 감독은 화천의 풍경 사진들을 보며 강길우 배우와 대화를 나눴고 이를 토대로 <정말 먼 곳>의 인물들을 구상했다. “강길우 배우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과묵한 진우에게 어떤 외형이 가장 어울릴지, 머리도 밀고 수염도 길러보며 긴 시간을 고민했다.” 또한 진우가 화천으로 오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전사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홍경 배우의 경우 시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도록 여러 자료를 공유했다. 그밖에도 “일면 유약해 보이기도 하는 현민의 부드러움이, 외부의 날 선 차별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거란 점도 이야기했다.”

영화를 제작하며 박근영 감독이 가장 중요시한 건 ‘거리감’이었다. 가깝고도 낯설다는 화천의 특성이 자연스레 ‘거리감’이란 주제로 이어졌다. “거리감이란 테마와 맞물리는 영화의 제목은 박은지 시인의 등단작에서 인용했다. 시가 자신들의 정착지를 꿈꾸는 “진우와 현민의 감정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먼 곳’의 의미를 되짚어볼 때마다 박근영 감독은 “내가 꿈꾸는 안식처가 내게서 얼마나 멀리 있을까란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한 줄기 빛처럼 안식처가 자리할 거란 믿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양의 죽음과 탄생이 각각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위치한 것도 “절망 속에도 희망이 존재할 것이란 의지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문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시를 접해온 박근영 감독은 영화와 시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시도 중이다. “영화에는 말보다 이미지로 감흥을 생성시키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그럴 때마다 영화와 시가 닮았다고 느낀다. 국문과를 다닐 땐 주로 문장으로 상황을 떠올렸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이미지로 상상하게 됐다. 공간에서 계속 영감을 받는 것도, 공간을 바라보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정말 먼 곳>

감독 박근영 출연 강길우, 홍경, 김시하, 이상희 제작연도 2020년 상영시간 119분 본선 장편경쟁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박근영 감독은 유독 “기적처럼 만난 순간”들이 잦았다. 제멋대로 움직이던 양들이 오프닝 신에서처럼 기가 막힌 동선을 그려주고, 트레일러 촬영을 위해 들른 곳에서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대한 눈구름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 순간이 너무 경이로워 바로 카메라를 돌렸다. 다시 만들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순간들. 이런 기적 같은 순간들을 담고 싶어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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