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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때 우린 그랬지, <접속>
2002-05-15

108신. 카페

수현 : 당신을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일지 다 알 것 같았는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가는군요.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죠. 당신처럼.

109신. 카페 밤거리(밤)

수현을 향해 달려가는 동현. 수현을 잡아 세운다. 돌아보는 수현.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향해 마주서며 얼굴을 자세히 보는 동현과 수현. 활짝 웃는 동현. 고개를 숙였다 다시 동현을 올려다보는 수현. 표정이 밝아질 듯 미소를 머금으며 고인 눈물이 넘친다. 화면 그대로 멈춘다.

1997년 영화 <접속>의 최종 시나리오의 마지막 신의 대사와 지문이다. 며칠 전, 지금 막 프로듀싱을 끝낸 <후아유>가 완성되고 시사회가 진행될 즈음, 책꽂이 한켠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접속>의 시나리오를 꺼내보았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PC통신으로 알게 된 두 사람. ‘당신을 본 적은 없지만, 어떤 사람인지 다 알 것 같았는데…’라고 고백하는 여자. 그러나, 둘은, 지하철에서, LP 가게의 계단에서, 마주보고, 스치고, 지나간다.

그토록 현실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해도 나타나지 않는 남자 때문에 여자는,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죠. 당신처럼”이라고 살짝 울먹인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친구가 떠나고, 연인이 떠나고, 홀로 남은 외로운 젊은이들이, 자신의 알 수 없는 미래와 다시 올지 모를 사랑에 두려워하면서도 같이 만날 수 있기를, 소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남자와 여자.

2년여를 조명주 작가와 김은정 작가, 장윤현 감독이 끌고 끌면서 고치고 다듬고 만졌던 시나리오다. 모두 109신짜리 이 시나리오는 총 25번 정도의 버전업을 거쳤다. 말 그대로, 109신짜리 최종고엔 <접속>에 참여한 감독 이하 작가들의 땀이, 그리고 제작사에 던졌을 원망이, 그들이 회의하면서 마셨을 커피나 담배가, 칼국수가, 밥의 양이 실로 엄청났다.

힘든, 지난한 시나리오 과정이 지나고도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캐스팅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지난 몇년간 나의 언니 심재명 프로듀서와 나의 형부 이은 프로듀서 겸 감독이 여기저기서 외치고, 떠들고 다녀 알 터이니 그만하고….

한석규라는 배우가 캐스팅 제의 1년이 흐른 뒤, OK 사인을 보냈을 때 이 낭보(!)를 전해 들은 투자자가 극장 앞에서 ‘아이고’ 하며 무릎을 쳤던 그 얼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해 <접속>은, 사라 본의 를, 모 컴퓨터 통신회사의 이름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몇 가지 대사를 유행시키면서 신세대를 삼켜버렸다!(요건, 내 주장이 아니다. C일보 문화면의 기사다).

지금, <접속>의 시나리오 작가 조명주씨는 새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시나리오와 몇편의 TV드라마를 썼고, 김은정 작가는 <텔미썸딩>과 <후아유>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무릎을 치며 기뻐했던 투자자 김승범씨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이고, 영화음악 및 선곡을 맡았던 조영욱씨는 무수한 유수의 영화음악을 맡고 있고, 그리고 장윤현 감독은 씨앤필름의 대표로 있다.

<접속> 이후, <접속>과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네트워크 시대의 무수한 ‘기호’ 속에 자신을 가리고 숨기면서도, 또한 나를, 너를 알고 싶어하는 청춘을 그린 영화 <후아유>를 제작하면서, 아주 많이 <접속>을 생각했다. 그때를 함께했던 사람들도 많이 생각났다. 새삼 고맙기도, 보고 싶기도 했다.

대중영화의 매력을, 대중영화의 힘을 고민할 때, <접속>은 내 머릿속 한켠에 항상 저장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접속>은 영원한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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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보경/ 디엔딩닷컴 이사·<후아유>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