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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도움받는 기분>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21-04-20

백은선 시집 / 문학과지성사 펴냄

시를, 그 시를 감싸고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시인의 사정, 시인이 쓴 다른 산문을 빌려와 함께 읽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백은선 시인이 그걸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백은선의 세 번째 시집 <도움받는 기분>을 읽기 전 우연찮게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먼저 읽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자기 시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썼다. ‘나는 알레고리로 가득 찬 내 시가 징그럽고 무서워. 부릅뜬 눈들이 싫다.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내 시집 <가능세계>가 피해자의 거대한 진술서 같아서 진절머리나게 싫을 때가 있다.’(67쪽) 그가 세 번째 시집은 통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통독하지 못했다.

<도움받는 기분>(30쪽)을 읽다가는 한 10대 여성의 지옥도 속에 같이 사는 것 같아서 잠시 쉬어야 했고 <연결 지점>(34쪽)에서는 ‘꽃도 열매도 없이 오래 살자/ 누구의 꽃도 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의 비장함에 사로잡혀 입으로 되뇌었다. 그래, 오래 살자. 살아남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다정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양경언 평론가는 해설에서 “첫 시집 <가능세계>에서 ‘발악의 현장성’(조연정 해설, <소진된 우리>)을 개시했던 백은선의 시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서는 후일담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의 결기를 조금 더 명료하게 드러낸다”고 정의한다. 나는 발악보다는 비명을 여러 번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만히 있음으로 반을 얻는 사람은 싫어/ 허점투성이 요동치는 파도 속 비명의 숲이 더 좋아/ 가장 중요한 질문은 계속할 수 있을까와 괜찮냐는 것’(<졸업>, 148쪽)에 언급되듯이 침묵보다는 촉수를 뻗어 질문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이 시집의 비명이다.

그리고 특이한 4칸 7줄 표로 그려진 형식의 시 <픽션다이어리>(166쪽)의 마지막 빈칸은 비어 있다. 그 옆에 시인은 이렇게 쓴다. ‘마지막 칸은 당신이 직접 채워주세요. 당신의 시작도 끝도 반복도 절망도 좋아요.’ 빈칸에 나는 힘주어 쓴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킬게, 함께 있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문장을 숨기기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많은 말속에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그냥 두는 거야 제자리에 그러면 풍경이 되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거야 우리 듣자 같이 이 노래를 듣고 또 듣자 손을 잡고 한밤의 거리를 쏘다니자 차에서 식탁에서 길에서 어디서든 듣자 들려오지 않을 때는 직접 부르자 소리 지르자 다 끝날 것처럼 소리치자(97~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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